내 몸에 대한 도발적이고 발칙한 이야기들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 영화 <올드보이> 중에서 -
생후 1주차 첫 검진에서, 아이의 혀를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바 설소대 수술이라는데, 정확히는 혀 밑과 입 안을 연결하는 막 모양의 설소대를 살짝 잘라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멀쩡히 잘 울고, 타고나기를 건강한 아이의 혀를 구태여 잘라내야 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아 ‘왜’를 물으니, 그것도 모르냐는 듯 냉담한 의사의 시선에 아이를 싼 포대기를 꼭 껴안고 움츠러든다.
영어 발음이 좋아지고, 수유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욱 아리송하다. 나와 남편 모두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설소대라는 게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갓 태어난 신생아의 입 안에 칼을 들이대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시대가 오다니, 그것도 십수 년 후 잘 될지, 안 될지조차 알 수 없는 외국어 발음을 위해서 말이다. 유리구슬처럼 곱디고운 딸의 혀를 자르겠다는 의사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남편을 겨우 달래어 나는 일단 ‘더 생각해 보겠다’ 답하고는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고이 눕혀놓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린다. 혀와 입 아래를 연결해주는 저 가느다란 살이 설소대였구나, 처음으로 자각한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본 ‘이상적인’ 설소대 사진들과 비교해보니 내 것이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럼 내 외국어 발음은 어땠던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배워온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언어적 호기심에 일본어, 독일어 회화까지 꾸준히 배워왔지만 문법과 문장력은 꾸준히 혹평이었던 반면 발음만은 칭찬받아왔음을 떠오른다.
자료를 찾아보니 수년 전 강남권 일대에서 유행했던 수술이라고 한다. 물론 목적은 영어 발음 교정이다. 당시 연구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혀 길이와 영어발음 간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진리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소대가 너무 짧아 모우수유에 문제가 생기는 설소대단축증 같은 질환이 있긴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R과 L 발음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갓난아기들을 품에 안고 병원을 찾는 세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푸른색 조명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수술실, 차가운 수술대 아래 차갑게 반짝이는 칼과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아기의 모습이 그려짐에 내 혀가 잘린 듯 아려왔다.
결국 설소대 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R 발음과 L 발음을 상대적으로 못하게 된다고 한들 어떠한가. 대한민국 본토 영어 발음이라며 비판받았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도 문장력과 논리력으로 세계를 사로잡지 않았던가. 원어민들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곱게 구부러진 혀로 영어 단어들을 읊어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위축될 내 아이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까짓 거 귀족적인 영국 발음 대세설을 내세우면 그만이지 싶다. 다만 십수년 째 영어 발음에 집착해대는 세태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소통이라는 언어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 발음을 뽐내며 불특정 타인들에게 영어 실력을 전시하려는 허영심이 보이는 탓이다. 어른들의 세속적 허화를 쫓기 위해 희생당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다.
돌이켜보니 세월이 쏜살같이 달린다는 말은 진리이지 싶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말문을 연 내 딸도 세 살이 되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과감히 설소대를 잘라냈다는 주변 어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며, 나 또한 그 때의 내 결정이 틀린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그러다 가갸거겨 나냐나냐 한글을 외워대는 아이를 보며 아차-반성하곤 한다. 때론 어른들이야말로 감정의 성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