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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Oct 07. 2021

허리

내 몸에 대한 도발적이고 발칙한 이야기들

…허리 부러진 흙의 이야기…. 

-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중 -     



도수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비용은 회당 6만원,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진행해야만 한단다. 기약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먹는 약까지 추가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보험을 통해 비용 환급이 이루어진대도 당장 통장에서 나가는 돈에 대한 부담은 무시 못 한다. 병원 진료시간에 맞춰 병원까지 왔다갔다하는 것도 고역이다. 심지어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더더욱.      


허리 디스크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고령층 단골질환인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2020년 기준으로 166만 명에 이른데다, 30대 직장인은 물론 10대 청소년들마저 긴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있는 탓에 허리 통증으로 인한 병원 방문 비율이 늘었다고 한다. 이 뉴스의 주인공 중 하나가 나라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평소 다리 꼬기, 의자에 기대어 앉기 등 척추에 나쁜 생활만을 유지해 온 과거를 되돌아보니 자업자득이 따로 없다.      


온갖 내장들이 들어있는데다 신체의 정중앙에 위치한 허리는 흔히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뜻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른바 중심이요, 기둥이란 이야기이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몸을 숙일 때마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마다 이 몸의 중심에서 우지끈, 뚜둑 소리와 함께 엄습하는 통증이라니, 한 번 고통이 일어날 때마다 삶의 질은 그 몇 배로 떨어짐을 느낀다.      


일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직속 상사가 허리 디스크 탓에 쓰러진 일이 있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활발히 지시를 내리더니, 자리에 앉은 후 허리를 틀자마자 단발마의 사자후를 내질러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한참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흐느끼며 너무 아프다,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119 구급대원들이 그를 이송해갈 때까지 사무실은 비명과 울음,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대혼란이었다. 이 경험은 사무실 직원들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다들 부랴부랴 정형외과 검진을 예약했으며, 조금만 삐끗해도 너나 할 것 없이 과민반응과 호들갑으로 하루를 날렸으니 말이다. 

     

척추 엑스레이를 찍어볼 때면 기분이 착잡하다. 책 속 삽화나 사진으로 본 척추들은 곧고 길게 뻗어 있던데, 내 척추는 제멋대로 춤을 춘다. 뱀 척추가 따로 없다. 고속도로 커브 길도 내 허리보다야 곧고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한 번 휘어진 허리는 평생 회복하기 힘들다던데, 내 과거 생활 습관을 원망해봤자 현재진행형이니 딱히 할 말은 없다. 내 몸은 한평생 내가 살아온 흔적일지니, 그냥 감내할 수밖에.      


통계학적으로 허리 통증은 인류의 80% 이상이 경험하는 가장 흔한 질환이라고들 한다. 심지어 동서양의 내로라하는 역사 속 위인들마저 고통 받은 사례들이 즐비하고 있다. 조선시대 제일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강직성 척추염으로 평생 고통 받았으며, 이집트 람세스 2세 또한 척추골절과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고통을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했다지 않는가. 세상 제일의 부와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도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해결할 수 없었다는 데에서, 당시 의료적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계층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상상하며 괴롭다. 또한 앞으로 내가 평생을 안고 갈지도 모르는 통증과 (일어나지도 않은)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도 밀려온다.      


최근에는 남편마저 허리 디스크 발발로 몸져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착잡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설 때마다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고,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니 설상가상으로 다른 근육들까지 경직되어 첩첩산중이다. 나이가 들수록 하늘만을 우러러보던 고개가 땅을 향하며 겸손해진다던데, 이는 사실 닳고 닳아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척추의 고통을 정신적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려던 성현들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우리 두 부부 또한 이대로 가다가는 20년 후쯤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은 탓에 본의 아니게 겸손한 사람들이라며 칭송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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