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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Apr 03. 2024

#2. 군인 손님

    매일 같은 시간대에 일하다 보면 역시 같은 시간대에 오는 손님이 눈에 익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런 손님들은 매번 사가는 품목이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상품이 팔리면 '이거 손님이 찾으실 텐데 어쩌지.'하고 걱정이 되고 언제나 오는 시각에 오지 않으면 '왜 오늘은 오시지. 바쁘신가.'하는 궁금증이 절로 든다. 물론 내향적인 성격에 "오셨네요."하고 먼저 아는 척을 적은 없다. 처음 보는 손님과 마찬가지로 군말 하나 보태지 않고 계산을 마친다.


    편의점 단골 손님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데 그는 매주 군복 차림에 큰 가방을 메고 왔다. 점심 시간에 와서 빵과 우유, 또는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산 뒤 파라솔 밑에서 먹고 쓰레기까지 말끔하게 치우고 갔다. 내가 그 손님을 오래 기억하는 까닭은 옷차림 때문이 아니다. 매장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가지 몸에 밴 예의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매장에 들어와서 바로 필요한 걸 찾으러 가지 굳이 계산원에게 인사하진 않는다. 나는 일단 문이 열리면 "어서 오세요."하고 맞이 인사를 건네지만 열에 아홉은 아무 반응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무응답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중엔 낯을 가리는 손님도 있을 테고, 마음이 급해서 내 목소리를 못 들은 사람도 있을 테고, 으레 하는 인사겠거니 기계적으로 느낀 사람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눈길을 주며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빼놓지 않았다. 정석으로 되돌아온 인사에 내심 깜짝 놀랐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인사는 바르고 정중했다.


    그는 뭘 살지 고민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2, 30초 남짓 매대를 쭉 훑어보고 덥석 물건을 집었다. 계산대에 가져와서는 내가 바코드를 다 찍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할인이나 적립이 있느냐는 질문에 귀찮은 내색 없이 "없습니다."하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가격을 말하자 그는 한 손으로 카드를 건네면서 반대손을 바로 뒤쪽에 갖다대어 가볍게 받쳤다. 내가 늘 손님들의 카드를 받고 드리는 방식이었는데 손님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하는 배웅 인사에도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나가고 나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주고받은 말만 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었지만 뭐랄까,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계산원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존중받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물론 전에도 나에게 음료수를 사주거나 따뜻한 안부 인사를 건네는 등 친절을 배푼 손님들이 있었다. 그 때는 감사한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대등한 관계에서 인정 받은 것 같아서 어깨가 펴졌다.


    그는 매주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했고 매번 흐트러짐 없이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를 기다렸고 그가 가고 나면 없던 기운이 생기고 일에 의욕이 생겼다.

'겨우 일이 분 만나더라도 누군가의 태도가 한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좌지우지하는데, 앞으로는 아무리 피곤해도 손님들을 절대 대충 상대하지 말아야겠어.'

이런 다짐을 하게 해준 게 고마워서 밖에서 제대로 된 도시락이라도 사서 드릴까 잠깐 고민했지만 관뒀다. 이성적인 관심으로 오해를 사기 싫었고, 무엇보다 끼니를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처지를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쪽으로 마음이 잘못 전달 될 것 같았다.


    그의 결곡한 성미가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인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해 본다. 그 또한 어딜 가든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받고 살아가길 지금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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