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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Mar 23. 2023

노는 중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인 자리였다. 

대장암 수술을 하고 고생하던 A까지 이젠 외출이 제법 자유로워져서 매우 편안하고 화목한 분위기였다. 갑상선암을 치료하지 않고 같이 살고 있는 B는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했다. 

     

“벌써 5년짼데 그냥 잘 있더라고.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고 병원에선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 평생 약 먹을 생각해 봐. 아휴.”    

 

갑상선친구 B는 허리 디스크로도 수년간 고생을 하고 있는데 급격한 악화와 완만한 회복이 되풀이되더니 그 또한 괜찮아지고 있다는 미스터리한 친구였다. 

B는 1년 전에는 지팡이를 짚고 가까운 거리만 간신히 걷는 정도였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숱하게 수술을 권했지만 그녀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멋진 원피스 차림으로 꼿꼿하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인간 승리다. 대단해. 어떻게 병원을 무시하고 이렇게 멀쩡할 수 있지?”


A의 말에 B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병원에서 수술만 안 했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민간요법, 대증요법은 안 해 본 게 없어. 전국을 다니면서 해보니 뭐가 맞았는지 모르지만 괜찮아지더라고.”   

  

“그러게. 나도 수술 안 했으면 너같이 괜찮았을까? 대장암은 수술 이후가 너무 힘들더라고.”   

  

A의 말에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수상한 얘기 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다. 대장암 수술 안 하면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지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느냐는 둥. 이렇게 회복이 되었으니 감사한 일 아니냐. 너와 B는 완전히 다른 상태이고 다른 사람이라는 둥.   

  

하여튼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두 명 이상이 모이면 건강 이야기 일색이었다. 물론 자식 이야기도 빠지진 않았는데 젊었을 때 주로 자랑을 했다면 이젠 섭섭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도 이제 늙었나 보다. 맨날 노인네들 건강 채널만 보고 듣는다고 흉봤는데 우리도 별 볼일 없이 그렇게 됐잖아?”     


“하긴, 이젠 외국 영화 보기도 힘들어. 자막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그거 읽다 보면 화면 볼 시간이 없다니까? 복잡한 영화나 드라마도 신경 쓰며 보고 싶지 않고.”    

 

“그러다가 치매 온다. 우리 엄마 보니까 그 좋아하던 드라마를 언제부턴가 안 보시더라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줄거리가 이어지질 않았던 거야. 그러니까 재미가 없어진 거고. 우리 엄마 상당히 똑똑한 분이었는데 치매 시작되니까 답이 없더라.”   

  

“그러니까 계속 배우고 열심히 일하고 해야 하는 거야. 앞으로도 2,30년은 더 살 텐데 그냥 이렇게 놀아?”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리필해 온 C가 맥락 없는 수다의 중심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 모두 이젠 은퇴하고 노는 거잖아? 네가 제일 먼저 은퇴했는데 그동안 어땠어? 노는 게 어렵지 않았어?”


대장암 A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논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을뿐더러 다른 무엇인가를 해 볼 생각조차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외국어라도 배워. 악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뭐 방통대에 많잖아? 그런 거 수강해도 좋고. 베이킹이나 바리스타 배우는 사람은 좀 많으니?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특히 너 D, 제일 젊은 너한테 하는 얘기야.”


C는 우리 중 제일 젊은 D를 보며 얘기했다. 

조기 은퇴를 한 까닭에 D가 우리보다 많이 젊긴 했다. 몇 달 전부터 은퇴자가 된 D는 열심히 여행도 다니고 가족도 챙기며 사는 삶 이외에 무엇인가 더 할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고 했다. 한동안은 좀 놀아야겠다고.  

    

“그래, 한동안이다, D야. 그런데 시간은 금방 날아간다는 거. 내가 너보다는 강산 한 번 더 바뀌게 살았으니까 하는 얘기야.”


 사실 C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너무 열렬히 사는 나머지 난 C가 지쳐서 일찍 죽어 버릴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 C가 젊은 D에게 하는 충고는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그런데 말야.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만 의미 있을까? 그냥 멍하니 앉았기도 하고 주섬주섬 먹이도 주워 먹고, 아프기도 하다가 좀 괜찮으면 게으르게 동네 한 바퀴도 돌고 저녁이 되면 TV앞에서 졸다가 다시 밤이 되면 잠자고 그런 삶은 어때서?”


조용히 듣던 갑상선암 B가 나서서 천천히 얘기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일제히 B를 바라봤다. 

B는 무슨 일이냐는 듯 우리를 둘러보며 루이보스차를 홀짝였다.  

    

“아니, 뭐. 그렇지. 삶이란 게 다 각각이니까.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까 조금이라도 젊어서 뭔가를 시작했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후회가 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생각하는 맘으로 D한테 얘기한 것이고.” 


C의 커피는 또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쟤는 어쩌자고 커피를 물처럼 마셔대곤 잠을 자네 못 자네 하는가 하는 생각을 나는 잠시 했다.   

   

“알죠. C 언니가 얘기해 주는 게 뭔지 알아요. 고맙기도 하구요. 요즘은 좀 지루한 느낌이 있어서 피아노를 배워볼까 하고 등록했어요.” 


D의 말에 우리는 모두 손뼉을 쳤다.


“잘했어. 네가 비록 손가락 길이는 일반인의 70%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월드스타를 꿈꾸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모두 깔깔 웃었다. 마치 오랜만에 웃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은퇴한 이후의 삶을 살고 있었고, 그 삶 또한 만만치 않음을 서로 알고 있었다. 

대개는 한두 가지의 질병에 시달리고,  또 간간이 찾아오는 우울과 불면에 힘든 하루를 보내기도 했으며, 직장을 은퇴하고 아이들이 독립한 후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가끔씩 절망하기도 하다가 스스로 위로해 가며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 방법에 있어서 무엇인가 하염없이 뒤쫓는 친구가 있었고, 맥 놓고 있다가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친구도 있었으며 나처럼 하루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노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선택이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었기에 우리는 기탄없이 떠들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랬다.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각각 자신의 재능대로, 자신의 기질대로 열심히 삶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견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놀든 일하든 배우든 실패하든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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