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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pr 11. 2023

은퇴 부부가 사는 법

아이들이 다 출가하고 둘이 남은 식탁은 언제나 조촐하며 조용했다.

수저 소리만 달그락거리다가 식사가 끝날 즈음이면 남편은 전화기를 들여다보곤 했다. 

아직 그의 밥그릇에는 두 세 숟가락 분량의 밥이 남아 있으나 입맛이 없는 남편은 아주 천천히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놀부처럼 주걱으로 뺨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 시아버님이 앞에 계셨다면 숟가락으로 남편의 이마를 딱 때렸을 것이다. 

밥 먹을 땐 딴짓하지 말아야지. 

    

그러나 내 아들도 아니고 시어머니 아들인데 내가 밥을 집중해서 먹어라 말아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모습이 싫어서 먼저 숟가락을 딱 놓고 베란다로 나가서 식물들을 들여다보곤 했던 것이 우리 집 아침 풍경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모른 척 설거지를 놔둔 채 서재로 들어가서 앉았는데 거실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어느새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TV에 열중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헬스장엘 가는 날이 아니었다.

      

“여보, 저거 좀 봐. 백조 옷을 안 입었어.”     


느닷없는 백조 옷 이야기에 난 강아지 옷이 생각나 좀 의아했다. 

요즘은 강아지들처럼 백조도 옷을 입히나? 무슨 백조가 옷을 입어? 안 입지. 

백조가 옷을 입은 모습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각만 해도 여간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나와 보라니까.”  

   

남편의 성화에 겨우 나와 TV를 보니 발레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음악은 ‘백조의 호수’ 곡이 흐르고 있었고 발레리나들이 거의 평상복에 가까운 옷으로 춤을 추는, 누가 봐도 현대적인 해석의 공연이었다. 

     

”백조 옷이 뭐야?”

     

남편의 ‘백조 옷’이란 표현에 기가 막혀 웃다가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도리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백조가 입는 옷이지. 저건 백조가 아니잖아. 넝마를 입었어. 이상하잖아.” 

    

드디어 남편의 말을 이해했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뭔가 좀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이 남자가 다른 데 가서도 백조 옷 타령을 하면 어쩌나 싶은. 

    

“백조의 호수에서 꼭 흰 발레복을 입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래도 토슈즈는 신었네.”    

 

그러나 남편은 토슈즈건 발레복이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보아온 백조의 호수와 너무 달라서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클래식 채널을 왜 틀어서 백조 옷 타령을 한담?’ 

    

남편이 가지고 있는 발레복에 대한 개념은 ‘백조 옷’이란 걸 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호두까기 인형이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발레에선 뭘 입건 백조 옷 타박을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남편의 ‘백조 옷’은 백조의 호수에 국한된 표현일 것이었다. 

백조 옷이란 의미상 백조가 입는 옷인데 정작 백조는 깃털로 덮여있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남편의 표현이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용수들이 깃털로 덮인 짧고 하얀 발레복을 입고 있었다면 백조와 아주 비슷할 테니까. 


그래도 다 큰 성인이 발레복을 백조 옷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싶어서 고쳐주고 싶었지만 남편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다시 서재로 들어갔고, 잠시 후 남편은 다른 채널을 틀었는지 온갖 악기 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아유, 시끄러워. 


점심을 준비하려고 주방으로 가는데 남편은 신난 듯 내게 또 곡 이름을 알려 주었다.   

   

“거위 모음곡이었는데 재밌네. 끝났어.”     


“웬 거위? 거위 모음곡이 있어?”  

   

조금 전 백조 옷 사건이 있어서 남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맞아, 거위 모음곡이라니까? 왜?”    


남편은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다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나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 너무 웃겨서. 백조에서 거위라니. 오늘 클래식은 조류 특집인가?”   

  

다소 미심쩍게 TV를 보니 화면 귀퉁이에 ‘거쉰의 피아노 전주곡’이라고 씌어있는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굉장히 늙은 한 남자가 열중해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혹시 거쉰이란 작곡가를 거위로 잘 못 안 거 아냐?”   

  

“이 사람이, 거쉰이 아니라 거위라니까”


하긴 클래식에 있어서는 남편이 나보다 훨씬 나았다. 내가 아는 클래식은 학교에서 배운 몇 개가 다였다.

 그래 거위 모음곡이 맞겠지.

     

백조 옷과 거위 타령을 하다가 하루를 보내고 나니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은 어떻게 사나?

     

남편이나 나나 집에 머무는 시간은 많았지만 마주 앉아 대화하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TV 프로그램조차 보는 장르가 달라서 그나마 같이 앉아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무 일없이 편안히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갔다. 

사람들은 우리가 신기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루 종일 같이 있어요?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면 돼요. 그냥.”  

   

정말 은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적정한 거리의 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으면 정신적인 거리도 자연히 생기기 때문에 실제적으론 공간을 나누는 게 필요했다.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잔소리와 참견으로 피차 마음을 상하기 쉬운 게 함께 있는 노년의 삶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식사 때 휴대폰을 보든, 발레복이든 백조 옷이든, 거위든 거쉰이든 심각할 필요 없이 이웃처럼 웃고 지나가지 않는가.  

   

이러한 적정한 거리의 유지가 은퇴 부부인 우리에게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노년의 시작은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삶의 중요한 여정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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