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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pr 25. 2023

반성문

20대 때부터 난 인생을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해 왔다. 

40대에도 50대에도 사용했던 말인데 그렇다고 죽겠다거나 혹은 다른 삶을 추구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평안할 때였던 것이다.

물론 한없이 건방지고 물색없는 이 말을 던졌던 대상은 내 친구들이었다. 

보통은 대화 중에 친구들은 질문하곤 했다.  

    

“무슨 생각하셔? 뭔 꿍꿍이?”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조용히 해라.”   

  

“인생은 몇 번씩 정리하니? 어지간히 해라.”    

 

아마도 내가 단골말처럼 사용했던 이 문장이 친구들에게는 흰소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정리가 필요했었다. 

나의 삶이 마치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들개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직장이 자유로웠던 것도 아니고 가정이 없는 싱글도 아닌 일정한 시각에 출퇴근하는 주부 공무원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 정리’는 쳇바퀴 같은 삶의 궤적을 어떤 식으로든 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 맞을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에 대한 회한이며 애착이며 애증일 수도 있는.   

   

“정리가 끝났냐? 어때?”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은 반 호기심, 반 놀림으로 묻곤 했다.  

   

“정리가 끝났으면 이러고 있겠니? 뭔가 액션이 들어갔겠지.”


언제나 멀쩡한 나의 모습에 친구들은 진한 커피를 권하며 웃곤 했다.  


    

그렇게 인생을 몇 번씩 정리하려다 못한 나는 여전히 언제고 정리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숙제를 안 하면 불편한 아이처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숙제를 안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직장의 종료였고 혹은 선후배였다. 

그들은 인생을 정리하겠단 한 마디의 말도 없었지만 나의 삶과 아주 비슷하게 닮아 있었고 다른 듯했으나 큰 틀에서 같았다. 

나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나 각자의 생애주기에 맞게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뭔가 사람마다 그래도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오만한 오류였다.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겪어내는 일들은 아주 비슷해서 혼돈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아무 정리도 없이 실버기에 들어선 난 인생을 정리하기보단 반성하는 쪽을 택했다. 

반성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니 당연히 나의 잘못이 보였다는 의미이다.


나의 잘못이란 누구나 겪는 이야기를 마치 나만의 일인 듯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말의 가책 없이. (지금 보니 그렇다.)


60년이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선한 일 하나 없고, 잘못한 일은 양떼구름처럼 층층 한데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써 내려간 글들이 갑자기 모호한 기호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직까지 써 왔던 이야기들은 유난히 길 실버기의 시작에서 낯섦을 극복하기 위한 자가 치유적인 독백이었을 뿐이니 그 기호들은 결국 부끄러움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의 나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삶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빚진 삶이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정산을 어찌해야 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점점 더 늙어가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이 되어버릴 텐데 그 미래의 빚에 대해 미리 갚을 수도 없고 난감하니 그저 미안하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무익한 글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게 한 잘못도 인정하고 사과한다. 

    

이 한 장의 반성문으로 인해 나의 허물이 벗겨지리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너 참 잘못하더라.’라는 인식이라도 심어 놓아야 혹시라도 다른 글을 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끝까지 뻔뻔스러움을 견지하는 이 강력함이 나의 실버 인생이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버 일지를 읽어주신 소중한 분들께 정중하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기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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