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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란 Dec 24. 2021

김씨의 덕질일기 1 : 덕질의 시작

♪ UN - 파도

당신의 첫 덕질은 언제인가.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덕질에 트여있는 아주 선구적인 아이였다.


여섯 살이었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안양의 지하상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짧은 다리로 뽈뽈 걸어가던 애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랬다. 뭔가 싶어 보니 UN의 '파도'가 흘러나오는 음반 가게였다. “갖고 싶어?”라는 아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6년 인생 처음으로 앨범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조기교육이 이래서 중요한 거다. 아직도 파도 전주에 흘러나오는 쿵짝쿵짝 비트를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심장이 뛰면서 입에서는 “눈이 부시게-”라는 첫 소절이 자동 재생된다.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인데 오빠들 웃는 얼굴 보겠다고 아빠한테 DVD 재생법을 배우던 모습이나, 유치원 친구에게 이 노래 좋다며 알림장에 곡 제목을 적어주던 순간만큼은 생생하다. 현 최애의 노래가사는 다 외우지 못하더라도 파도만큼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완창할 수 있을 정도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덕질에 눈을 뜬 나는 그 이후 훌륭한 덕후로 자라났다. 가족들, 특히 부모님의 도움도 컸다. 고작 6살짜리에게 풀세트 음반을 사주던 아빠는 '브로마이드는 원래 천장에 붙이는 것‘이라며 자려고 누울 때마다 슈퍼주니어의 얼굴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줬고, 엄마는 딸을 위해 무려 관심도 없는 남정네 13명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웠다. (물론 내가 엘리트 브로마이드 펼쳐 놓고 가르쳐주긴 했음)


다른 집 애들은 아이돌 좋아한다고 하면 부모님한테 쓸 데 없는 짓 한다며 혼난다는데 나는 결단코 단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올어동이나 미로틱콘처럼 구하기 힘든 영상을 볼 수 있던 건, 티비에서 최애가 나올 때마다 말벌 아저씨처럼 호다닥 달려가서 본방 사수할 수 있던 건 모두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취향을 존중받는다는 건 무척 대단한 일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지받는 느낌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엄청난 힘이 된다. 좋은 걸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뭘 해도 부모님은 날 응원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숨기는 것 없이 시시콜콜한 일들까지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창피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도 내 취향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뒤따라온 소소한 행운들도 많았다. 이런저런 일들로 성격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내 사람들'에게만큼은 끝까지 솔직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애초에 덕질을 존중받았기 때문일 거다.


덕질을 하고 난 순간부터 후회는 없다. (내 나이가 어때서) 그 나이에 뭔 아이돌이냐며 유치하다는 듯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의치 않다. 우리 엄마아빠가 괜찮다는데 지가 뭔 상관이람? 그저 남 취향 존중하는 방법도 못 배운 그 사람들이 불쌍할 뿐이다.


아직도 딸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리모컨을 양보해주시는 부모님께, 부끄럼이 많은 딸 대신 "000 브로마이드도 주세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부모님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 엄청난 즐거움을 지켜준 부모님께 오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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