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백마들
울타리를 두른 넓은 뒷마당이 있다는 것 때문에 장만한 집이었다. 옹골차게 들러붙은 역마살을 누그러뜨리려면 희로애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책임이나마 분담할 누군가는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이 나이에 남자를 만나거나 자식을 두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고 (그럴 능력이 없었고), 강아지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데려와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자면 마당은 반드시 있어야 하겠고, 되도록이면 넓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당 넓은 집을 장만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한적한 외곽으로 자꾸 밀려 나오다 보니 자락동의 이 집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6년 전의 꼭 이맘때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녹색철망을 허술하게 두른 뒷마당이었다. 경사가 꽤 가파르기는 했지만 3백 평이 넘는 공간은 두어 마리 강아지들에겐 비좁지 않을 것 같았다. 나무 한 그루 잔디 한 뼘도 없이 비실비실 말라가는 회갈색의 잡초와, 울타리를 함부로 기어오르는 덩굴들이 스산한 걸로 보아 이 집 사람들도 참 무심한 것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시골집에서 어쩌면 나무 한 그루 안 키우느냐고 했더니, 낙엽 치우기 귀찮아서 있던 나무들도 다 잘라 버렸다는 대답이었다. 뒷집과 옆집에 덩치 큰 나무들이 여럿 있어서 여름에 뙤약볕을 가려줄 그늘은 충분한데 가을 되면 날아온 낙엽들 치우는 일이 정말 싫다고도 했다. 넘어오는 여름그늘은 좋지만 날아오는 가을 낙엽은 싫다는 그들에게 꽃이나 잔디는 왜 안 키우느냐는 질문은 차라리 꺼내지도 않았다.
뒷마당의 메 꽃
녹색철망의 울타리 다음으로 내 시선을 끌었던 건 오밀조밀 마당을 뒤덮은 연분홍 색깔의 메꽃이었다. 대부분의 잡초들은 제 삶을 다 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씨앗을 준비하느라 꺼칠하게 마르고 지쳐 보였는데, 메꽃은 싱싱하고 발랄한 모양새였다. 사방으로 얼기설기 뻗어 나간 연초록의 실넝쿨에는 사춘기 소녀처럼 홍조를 띤 작은 얼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가을의 입김이 스칠 때마다 간들간들 도리질을 했다.
어릴 적에 꾸었던 초원의 꿈이 생각났다. 사방에 야생화들이 자욱한 초원에 돌멩이와 통나무로 만든 오두막의 꿈이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읽으면서였던가, 자락동을 닮은 초원을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였던가, 어린 나는 자주 그런 꿈을 꾸었더랬다. 전문가가 꾸미고 손질하는 고급의 실내 정원이나 근사한 화원에 크고 화려한 꽃들이 사시사철 피고 지는 저택을 꿈꾸었던 적은 없지만, 작고 여려서 더 야무지게 보이는 야생화들이 싱싱한 바람을 마시며 자라는 들판의 꿈은 자주 꾸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 잠잠했던 꿈이었는데 말갛게 쳐다보는 뒷마당의 메꽃들이 느닷없이 그 꿈을 소환해 왔다. 다분히 충동적인 나는 야생화들 가득한 마당을 만들겠다는 환상에 쉽사리 붙들리고 말았다. 샛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토끼풀과 연분홍 메꽃들이 자욱하게 널린 마당이라니! 인위적이며 딱딱해 보이는 푸른 잔디가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닮은 정다운 풀꽃들이 오손도손 피어나는 자연의 마당, 그 환상의 포로가 된 나는 그날로 집을 계약하고 서둘러 이사를 왔다. 가을과 9월이 함께 시작되던 상쾌한 날이었다
자락동의 가을아침
꿈이란, 아침해가 떠 오르면 말끔하니 물러나는 밤의 어둠 같은 것이었다. 잠에서 깨는 순간 하얗게 물러나는 새벽빛깔의 신기루였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황홀한 꿈도, 죽을힘을 다해 벗어나고 싶은 끔찍한 악몽도, 잠이 깨면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사실은 동일했다.
자락동의 여름은 강렬하게 짧았고 성미 급한 가을은 다혈질의 무뢰한처럼 침입해 왔다. 아직도 구월의 꼬리가 걸려있는 언덕으로 왁살스레 밀려온 찬바람 된서리는 짧은 치마 민 소매의 옷들을 함부로 벗겨내고 회갈색 땅의 알몸을 드러나게 했다. 내 집의 마당도 그랬다. 풀이 죽고 메꽃이 지고, 이웃 나무들이 나누어 준 마른잎 속옷마저 강탈당한 마당은 영양실조에 걸려 죽은 노인처럼 칙칙하고 푸석한 맨몸으로 흙먼지 소용돌이를 신음처럼 뿜어 올렸다.
광대하게 펼쳐진 북서부의 평원은 바다의 파도보다 높고 긴 바람의 파도를 쉼 없이 일으켰다. 물결보다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멀리 달려가는 바람자락에 씻긴 하늘과 땅은 바삭하니 마르고 상큼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구름이 없는 날의 햇살은 한겨울에도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워 어지간히 두껍게 쌓인 눈이 아니면 그 섬뜩한 난도질에 한 나절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만 남기고 숨어버렸다.
석 달 배기 댕댕이 형제는 눈물에 버무려진 흙덩이들을 집안으로 묻혀 들이느라 바쁘게 신바람을 냈다. 무덥고 눅눅한 플로리다에 길들여져 작은 추위에도 과장되게 떨었던 나는 자락동의 눈물과 거기 범벅되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들 때문에 꽁꽁 얼어붙는 추위를 선호하는 북서부의 한녀寒女가 되어갔다. 햇살의 날이 무디어질 만큼 두툼하게 눈이 쌓인 날과, 눈물에 버무려진 흙덩이들이 꽁꽁 얼어 강아지들의 발이 맨송한 제 모양을 하고있는 날은 걸레를 들고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는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집 마당에 잡초가 아닌 잔디를 키워야 하는 이유도 그로서 알게 되었다. 잡초들은 계절을 타지만 잔디는 계절을 타지 않으며, 강아지들의 천방지축 또한 계절과 무관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때문이었다.
봄이 오고 언 땅이 풀렸을 때 서둘러 마당에 쟁기질을 했다. 오랜 세월 깊게 뿌리 내려온 잡초들은 발가락들만은 남겨두자고 안간힘을 썼다. 대여섯 번의 쟁기질에도 잡초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풀꽃마당의 꿈만 뒤집히고 파묻히며 스러져 갔다. 쟁기질로는 도무지 뽑히지 않는 길고 깊은 뿌리들은 삽과 괭이와 호미들을 총 동원해 온 힘을 다해 캐고 당기고 뽑아냈다. 그리고 잔디씨를 뿌렸다.
야생화 마당이 있는 초원의 꿈은 어느 가을밤에 꾸다가 만 짧고 허망한 꿈이 되었다. 그러나 아주 끝난 꿈은 아니었다. 어느 밤 설풋 잠이 든 나는 다시 초원의 꿈을 꾸다가 퍼뜩 잠에서 깰 것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꾸다가 깨고 또 꿀 꿈이었다. 영영 깨지 않을 잠을 자면서도 꿈은 계속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