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명 Feb 10. 2024

카우보이와 야생마

자락동 스케치

   구글지도에 한국어로 표기된 지명들은 미국인들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발음들이 많다.

Junction=융티온, Papillion=빠삐옹, Edgemont=에드게몬트, St. Joseph=세인트 조지프, 등등.

산자락 마을의 한글표기도 그렇다. 현지인들이 못 알아듣는 이름이라면 아예 우리 한국식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산자락 마을이니까 '자락동'이라고.

     ‐  ------------------------------------------------------'  

   자락동에서 찍은  사진에 비웃음의 코멘트를 달아 페이스 북에 올린 관광객들이 있었다.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는 한심한 동네였다. 그런 거지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지리가 분명하다. 킬킬킬....’ 그런 식이 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어젖히는 이모지를 더해 모멸감을 장식했다.

   페이스북은 자락동 사람들이 거의 유일하게 이용하는 SNS다. 많은 주민들이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언짢아하는 대신, 과객들이 감지하지 못한 자락동의 장점을 얘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와 가족 같은 이웃들'은 첫 번째 장점이었다. 나도 공감을 보탰다. 유색인인 내게 그 장점은 대단한 행운이기도 했다. 전염병의 창궐과 함께 인종 혐오범죄가 만연하던 시국에 고향을 닮은 곳에서 고향사람들을 닮은 이웃과 지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자락동의 첫인상도 아름다운 건 전혀 아니었다. 궁핍하게 늙어온 노파의 모습에 비루먹은 말처럼 부실해 보였다. 쩍쩍 갈라지고 움푹움푹 패여있는 콘크리트 길은 주름살과 검버섯 투성이의 늙은 피부였다. 틈새를 비집고 솟아오른 땅의 붉은 속살 때문에 회색의 부스럼이 덮인 병든 적토마 같은 도로는, 인공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자연의 몸부림 같기도 했다. 경보의 속도로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에도 도로는 목쉰 한숨을 내 쉬며 불그스레한 흙먼지를 자욱하게 피워 올렸다.


   풍요로워 보이는 것은 몸집이 큰 미루나무와 느릅나무들 뿐이었다. 장기판 모양의 마을 길 두어 군데에 짧은 행렬을 이루고 있는 가로수들과, 마당 넓은 집에 몇 그루씩 서있는 고목들은 잔가지와 이파리들이 많아 과장되게 풍성해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북쪽에서 힘차게 뻗어 내리던 블랙힐스의 검푸른 산맥이 웅크린 태아처럼 주저앉은 발치에,  채집된 곤충처럼 엎드린 마을의 사방은 황량한 초원사막이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고속도로 (2차선 지방도로) 부근에도, 그 너머의 아득한 평원에도 나무다운 나무는 없었다. 길다란 베개처럼 평평하게 놓여있는 뒷동산 언덕에도 키 작은 관목들과 거친 사막풀들만 건들거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하고 격렬하다는 네브라스카의 동남풍과 와이오밍의 서북풍이 거칠게 부딪히는 이곳은 바람 없는 날이 드물었다. 움직임이 가능한 모든 것들은 바람의 손짓에 흔들리고 요동쳤다. 우람하게 늙은 가로수들, 젊고 날씬한 정원수들, 언덕배기에 엎드린 키 작은 관목들과 가녀린 풀잎까지도, 모두가 만취한 주정뱅이처럼 사지를 휘청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어느 아침에는 어디서 날라온 것인지 모를 커다란 플라스틱 함지들이 앞마당 가에 널브러져 있었고, 아이도 없는 옆집의 뒷마당에는 농구 골대가 장착된 육중한 트렘폴린이 날라와 삐딱하게 누워있기도 했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움직일 것 같지 않은 크고 무거운 것들도 바람은 수월하게 끌고 다녔다.

   그나마 토네이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집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거나 자동차들이 날아올라 공중 곡예를 벌이는 일은 없으니 참 다행한 일이었다. 더 다행한 일은, 언덕 아래 자리한 내 집에는 얌전한 바람들만 찾아와 조용히 지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오른편에 솟은 언덕, 언덕 발치에 매달린 옆집과 건너편 집, 언덕 허리에서 이어져 내리는 뒷집의 넓고 높은 마당과 나란히 앉은 두 채의 집, 그리고 뒷집 마당에서 비탈져 내려오는 우리 뒷마당..... 내 집을 빙 두르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든든한 바람막이었다. 시야는 가리지 않고 바람만 막아주는 안온요새였다. 때문에 밤새도록 광풍이 마을을 휘젓고 다녀도 나는 세상모르고 잘 수 있었다. 유난한 두댕이들조차 기척 없이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과격한 바람의 위세 때문인지 눈비의 결핍은 극심했다. 풍성하고 시커먼 비구름이 기세 좋게 돌진해 오다가도 마을이 가까워지면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달아나기 일쑤였다. 겨우 몇 발짝 달아난 비구름이 으르렁~크헝! 맹수처럼 포효하는 소리를 들으며, 번쩍거리는 불칼에 쩍쩍 갈라지는 이웃의 하늘을 갈증으로 바라보는 기분은 눅진했다. 자욱한 안개장막을 드리우며 쏟아지는 폭우를 마른 발치로 건너다보는 마음들도 껄끄러웠다.

   우리들의 일기예보는 도통 믿을 게 못되었다. 아침에는 70% 이상이던 강수확률이 몇 시간 후에는 20% 이하로 떨어지며 사과주스 색깔의 햇살이 출렁이곤 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예보를 불평하면 우습게도 많은 이웃들이 기상청의 편을 들었다. 예보가 틀리는 건 자락동뿐이라고 했다. 선명한 쌍무지개로 장식된 하늘에서 스포트라이트 같은 햇살이 내리 꽂히는 곳은 우리 마을뿐, 주변의 다른 마을들은 예보대로 눈이나 비가 내린다고 했다. 일년에 몇 번씩은 자락동을 적셔 주기도 하는 고마운 하늘이었다.  

                자락동만 조명하는 스포트라이트와 무대 배경같은 쌍무지개


    마을을 비껴가는 건 비구름만이 아니었다. 이웃마을을 강타했다는 야구공만 한 우박도 비껴가고 어른 허리까지 파묻었다는 눈폭풍도 피해 갔다. 우박에 머리를 다쳤거나 눈 속에 묻혀 실종된 사람들의 뉴스도 당연히 비켜갔다. 무엇보다도, 봄마다 나를 고문하던 꽃가루 알레르기도 자락동은 피했다. 야호!  

   

   그러고 보니, 세상을 뒤숭숭하게 했던 전염병도 비교적 고요롭게 지나간 셈이었다. 대부분이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인 주민들은 예방주사도 마스크도 거부했다. 전염병은 조작된 소문이며, 예방주사는 인체에 칩을 삽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망자가 생겨도 전염병이 아닌 지병에 의한 것이라고 우겼다.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25% 가까이 되지만 사망자들은 많지 않은 것이 저들의 주장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러나 나의 이웃들이 감염되고 나도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지독한 아픔이었다. 알레르기 때문에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내 안에서 바이러스는 멋대로 신바람을 냈다. 사악한 존재의 잔혹한 저주일 뿐 죽음의 고통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중국의 어느 도시가 전염병의 근원지로 알려지면서 아시안들은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었다. 대도시에 사는 지인들은 외출이 두렵다는 얘기를 했다. 저격당한 아시안들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내 안의 공포도 꿈틀거렸다. 백인 카우보이들 속의 동양인 홀로녀라는 내 존재가 새삼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나를 적대시하거나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떠돌이 야생마의 기세는 위축되어 갔다.



   얼마동안만 머물다가 떠나려고 했었다. 풀씨의 무게로 가볍게 떠돌던 야생마의 정착지로는 가당치 않은곳이었다. 하다못해 반짝이며 흐르는 시냇물과 솔바람향기 나부끼는 푸른 숲이라도 있어야 했다. 권태롭게 펼쳐진 굴곡 없는 평원에서 마른풀들의 신음을 어야 하는 이런 꿈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염병의 횡포에 발이 묶인 나는 풀씨의 가벼움 대신 바위를 쪼개며 뻗어내리는 뿌리의 강인함을 배워야했다. 자락동의 세찬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릴 줄 알아야 했다.  

   

   자락동은 없는 것이 많아서 찾아낼 것이 참 많은 곳이었.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법을 알게 하는 곳이었다. 창문 밖에서 재잘거리는 작은 새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을 감고 침대에 누운 내 귀에 보이고, 멀리 언덕 위에서 속삭이는 사슴들의 인사말을 마당에 서서 두 눈으로 들을 수 있었다. 

   

   자락동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 맥실의 기억도  자주 소환해 왔다. 학대당한 아이처럼 풀 죽어 있던 전후 마을의 그 황폐했던 기억을.

   내 고향 맥실에도 언덕 같은 야산, 야산 같은 언덕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더랬다. 그러나 이마에 땀을 씻으며 숨 가쁘게 올라갈 높이의 봉우리는 없었다. 주저앉아 바람을 느낄만한 나무도 없었다. 큰비가 내리면 학교길을 가로막는 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멱감고 물장구 칠 웅덩이도 없는 얄팍한 물길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참 어정쩡한 촌뜨기로 자라야 했다. 산이 좋아 뻔질나게 등산길에 오르지만, 절벽이나 암벽 등반은 엄두못 내고, 물이 좋아 주저 없이 손발을 담그고 찰방거리지만 수영이나 잠수는커녕 개헤엄도 못 치는 빈 병들로 성장했다.

   그랬다. 맥실의 산과 들은 얼마 안 되는 마을 사람들에게 최소의 생계지원도 해 주지 못했다. 군불을 땔 삭정이가 부족해 겨울 방은 언제나 시렸고, 조각 떼기 논밭에서 수확한 양식은 너무 빈약해 가족들의 뱃속은 늘 허전했다. 푸르름을 잃어버린 산과 들은  전쟁통에 달아난 짐승들을 되돌아오게  하지도 못했다.

   

   자락동은 사람보다 사슴이 더 많은 곳이었다. 넓은 농장에서 키우는 닭들보다 더 많은 야생 칠면조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곳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당당한 사슴들이 마을을 행진하며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 카드 풍경을 연출해 보이기도 했다.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다는 비웃음은 눈먼 자들의 빈 웃음일 뿐이었다. 귀로도 보이고 눈으로도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제는 자락동을 보고 자락동을 들을 수 있게 된 나는 비로소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어야만 가능한 삶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오늘도 살찐 바람이 불 것이라고 했다. 서너 보따리의 눈구름도 싣고 와 부려놓을 것이라 했다.

   "글쎄, 그거야 보따리를 풀어 눈송이가 쏟아져야 '아, 눈이 오는구나' 고개를 끄덕이지. 락동의 눈 비는 와야 오는 것이잖아, 안그래?"

   락동의 하늘도 눈으로 대답했다. 형광불빛 같은 미소가 구름 속에서 내 비치며 방금 세수를 한 듯한 바람의 휘파람이 내 얼굴을 만졌다. 알파파 건초향기가 묻어있는 바람이었다.

  

향기로운 알파파 꽃들과 토끼풀을 즐기는 검은 앵거스들. 세계 최고의 소고기로 인정된 품종이다. 


   사슴들의 아침 인사

작가의 이전글 신데렐라는 영원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