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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Jul 30. 2015

퇴근 후 여름 텃밭

주말에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텃밭 일이 마음에 걸렸다. 8월 초에 당근 씨를 뿌리려면 밭에 퇴비도 미리 넣어 놔야 하고, 지난 번에 만들다 만 시금치 밭도 마저 갈아야 하니까.


여긴 주말 농장처럼 임대하는 밭이 아니고, 꾸준히 농사를 짓던 땅도 아니다. 회사 주차장 뒤, 야산 끄트머리랑 붙은 애매한 땅. 몇 년 동안 이 땅의 주인은 무성한 칡덩굴과 개망초, 쇠비름과 바랭이풀, 그 밖에 이름 모를 풀들이었다. 오래 전에 누군가 뭘 심어 먹었다고 하는데, 사람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작년 초 회사 사람들 몇 명이랑 같이 돌을 골라 밭을 만들었다. 공동경작은 어딘지 모르게 느슨하다. 대충 갈아 엎은 땅은 여전히 돌밭이었고, 서로 미루듯 돌보지 않은 밭은 금방 풀에 뒤덮였다. 나는 일찌감치 손을 뗐다. 그런데 올해 상황이 달라졌다. 같이 밭을 만든 사람 두 명이 퇴사를 한 거다. 거기다 회사 바로 옆에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밭 진입로가 막혔다. 한참 둘러 가거나, 조팝나무 울타리 밑 개구멍을 기다시피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아무도 밭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 개구멍을 드나들기 시작한 지 넉 달,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 밭이 되었다. 


밭 경계 너머 무성한 칡덩굴.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다.


오늘은 오후에 두 시간 외출 신청을 하고, 네 시부터 밭일을 했다. 주말에 할 일을 미리 하려니 마음이 급했다. 진작에 밭 경계를 넘어 들어온 칡덩굴을 걷어내고, 고랑을 꽉 메운 풀을 뽑았다. 7월 초, 쌈채소를 정리하고 놀려 두었던 땅을 뒤집어 퇴비를 넣었다. 다음 주에 당근을 심으려고 한다.  
그런데 땅이 어쩌면 이렇게 척박할까. 헤집어 봐야 푸석한 흙과 돌뿐, 지렁이나 흙냄새 나는 곤충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지렁이분변토를 뿌려주면 좋을 것 같아 오늘 주문했다.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돌보면 천천히 좋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다.


당근을 심을 두둑. 곧 바질과 이웃이 될 예정이다.


당근 밭을 끝내 놓고, 시금치 심을 땅을 갈았다. 삽날이 절반도 들어가지 않아서 호미로 돌을 캐냈다. 이건 그야말로 개간. 시금치는 뿌리를 깊게 뻗는다는데, 앞으로 두어 번 더 땅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 8월 중순까지 돌을 어지간히 골라 놓고, 석회를 넣은 다음 9월 초에 씨를 뿌리려고 한다.  
그런데 이 땅은 지금 밭 경계 너머라 좀 허전해 보인다. 그래봐야 한 평 넘을까 말까 한 작은 두둑이지만, 뭔가 표시가 있으면 좋겠다. 나무에 못 박는 건 무리고, 벽돌로라도 둘러 줄까 생각 중이다. 개구멍으로 벽돌을 나르는 게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돌이 나오는 땅.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세시간 반 일하고 집에 오는데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계획했던 일들을 거의 다 끝내서 마음이 가벼웠다. 밭에서 따 온 가지랑 토마토를 구워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이제 잘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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