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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Aug 03. 2015

오래된 자기소개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원래 집을 허물고 2층 집을 새로 지었는데, 그때 넉 달간 다른 집에 있었던 것을 빼면 단 한 번도 이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동네, 작은 변두리 마을은 도봉산 아래에 있지만 국립공원 입구와는 꽤 떨어져 있어서 등산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게다가 동네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개발이 제한되었어서 납작한 슬레이트집이나 지은 지 20년이 넘는 구식 연립주택들이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루 종일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 소리와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 과일 트럭의 확성기 소리, 수업 끝난 아이들이 떠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인 조용한 동네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동네보다도 훨씬 조용했다. 부모님은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명절 때 친척들이나 가끔 오는 책장사 아저씨를 빼면 손님이 집에 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침이면 외할머니가 화단에 물주는 소리에 잠을 깨고, 나른한 오후에는 옥잠화 위를 날아다니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안마당까지 들렸다. 나는 차가운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가 낮잠이 들었다. 선뜻한 기운에 문득 깨면 엄마의 도마 소리, 아궁이에 솥뚜껑이 덜그럭 대는 소리……. 해가 지면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가 겁이 나서 엄마 몰래 작은방 부엌에서 오줌을 누곤 했다.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몇몇 이미지들이 꿈처럼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떠올리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어느 아침이다. 그날은 방학숙제였던 식물채집을 하려고 외할머니를 따라 뒷산에 올라갔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 있어서 중간쯤 올라갔을 때는 종아리가 흠씬 젖어 있었다. 다리를 털고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나뭇잎들마다 햇빛을 반사해서 온 세상이 반짝거렸다. 초록색은 동네와 하늘과 할머니를 눈부시게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 앞에서 순식간에 커다란 사람이 되었다. 마치 동화책에서 나온 산신령 같았다. 


할머니는 버섯을 따서 보여주었다. “이렇게 뒤집어서 보면 먹을 수 있는 버섯인지 독버섯인지 알 수가 있지. 이건 우산버섯이야. 그리고 이것 봐라, 푸석푸석하지? 먼지버섯은 먹는 게 아니야.” 이건 우산버섯이야, 우산버섯이야, 먼지버섯은 먹는 게 아니야, 먼지버섯은 먹는 게 아니야……. 나는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할머니가 한 말을 되뇌었다. 그렇게 하면 말이 음식물처럼 입안에서 씹어져 목을 타고 내려가 배가 간질간질해진다. 이야기가 배에 새겨진 것이다. 버섯 분류는 할머니가 내게 해 준 다른 옛날이야기들과 함께 배에 잘 새겨졌다. 그리고 그날의 이미지는 내 정서 가장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그것은 눈부신 초록색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은 원색의 분꽃이다. 예전에는 동네 집들마다 담장 밑에 얕게 흙담을 쌓아 꽃이나 채소를 심었다. 우리 집은 분꽃을 심었는데 노란색, 자주색, 흰색, 연분홍 점박이 꽃이 있었다. 분꽃은 작은 나팔꽃처럼 생겼고, 꽃받침을 떼어 꽃술을 뽑으면 피리가 된다. 살짝 입에 물고 불면 삐이- 소리가 나는데, 워낙 꽃잎이 얇아서 몇 번만 불면 입에 닿은 부분이 누렇게 변해 시들었다. 해질 무렵 분꽃이 활짝 벌어지면 나는 가장 안 예쁜 꽃을 하나 따서 피리를 불다 손으로 짓이겨 쌉쌀한 꽃잎 냄새를 맡곤 했다. 손톱 밑이 자주색이 될 때까지 분꽃을 가지고 놀았다. 분꽃은 약국 놀이를 할 때도 쓸모가 있었다. 꽃이 시들고 나면 까만 씨앗이 달리는데 생긴 것이 꼭 환약 같다. 깨물면 퍼석하면서 하얀 즙이 나오고 아주 쓰다. 나는 분꽃 씨앗을 따서 흰 종이에 싸 ‘약’이라고 써 놓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약을 가져다 담 밑에 새로 심었다.


분꽃은 늘 피어 있었다. 원할 때 언제든지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꽃이었다. 야합수 꽃은 예뻤지만 높은 곳에 있어서 딸 수 없었고, 황매화는 화단 끝에 있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라일락은 너무 빨리 피고 졌다. 장미 나무에는 항상 거미가 있었고, 나는 달리아 꽃이 무서웠다. 커다란 보라색 꽃송이가 입을 쩍 하고 벌릴 것 같았다. 내 키가 닿는 곳에 있는 작고 촌스러운 분꽃이 좋았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분꽃 옆에 앉아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벌써 20년 전에 동네 골목길은 콘크리트 포장을 했다. 그때 화단 대부분이 사라졌는데 우리 집 분꽃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놨으면 좋았을 걸, 가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분꽃은 화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도봉산 가는 길에는 아직도 할머니가 이름을 가르쳐 준 들풀들이 담장 밑에, 풀숲에 반갑게 나와 있다. 그 옆을 지날 때면 옛날처럼 하나씩 이름을 외워 보곤 한다. 그리고 간질간질 배에 새겨진 할머니 목소리를 듣는다.


서울의 끝에 있는 작은 변두리 마을, 나는 한 번도 내가 이곳과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닿아 있다. 결국 나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집의 이야기이고, 우리 동네의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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