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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빈 Jan 11. 2024

기록에 관하여.

나의 습관, 글과 사진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되었다. 자기소개라… 5살 때부터의 기억이 촤르륵 펼쳐지지만 애써 접어놓고 말을 고른다. 마침내 던진 대답은 ‘습관적 기록자. 저는 보고, 듣고, 읽은 세상을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기록이 습관이 된 사람.

나는 기록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여러 기록의 방법 중 글과 사진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그중 글은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적어놓기 위해서 쓴다. 기록의 적은 게으름이므로 쉽게 휘발되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붙잡아 놓기 위해 상황에 따라 가장 편안하게 남겨둘 수 있는 여러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짙은 녹색의 로이텀 다이어리, 클림트의 그림이 새겨진 작은 노트, 아이폰 메모장, 노션, 네이버 카페.


 생각을 잡아 올려 기록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물고기를 잡는 일과 같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물고기인 날치는 위협을 느끼면 물 밖으로 튀어나와 달아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행하는 듯하다. 내 잠재의식 속에 사는 ‘생각’의 날치들은 머릿속을 유유히 헤엄치다 자신이 떠오르지 못하고 깊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위협을 감지할 때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예측할 수 없이 아무 때나 날아오르는 상상 속의 날치들은 잠재의식이라는 수면에서 올라오는 순간 단어나 구의 형태를 한 잠자리로 모습을 바꾸고 머릿속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제야 단어의 옷을 입은 생각의 날치를 알아본 나는 기다란 잠자리 채로 낚아챈다. 그리고 급한 대로 우선 아이폰 메모장에 넣어둔다. 일단 잡아두기만 하면 그 뒤에는 문장이 쉴 새 없이 이어져 문단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잠시 동안은 머릿속의 날치든, 잠자리든 잠잠해지고 나는 고요해진 뇌에 만족한다. 이것이 내가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일련의 생각들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생각 잠자리를 잡는 것에 능숙하지는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때부터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세상을 잊는 듯한 경험을 했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끊임없는 질문으로 가득 찼다. 어딘가에 풀어놓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에 이를 해결할 만한 여러 방법을 찾아보다 글로 적어두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나는 생각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잠자리채만 마구 휘둘렀다.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많이 잡다 보니 그래도 이제는 어느 잠자리를 잡아야 할지 정도는 아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생각 잠자리는 내 자의와 상관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를 잡기 위해서는 반쪽짜리 의지가 필요하다. 그들은 내가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볼 때, 샤워할 때(그래도 원래는 물고기였다고 물이 있을 때 튀어 오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혹은 수업을 들을 때, 버스, 지하철을 탔을 때 주로 나타난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을 때 나타나면 내 입장이 난처해진다. 머릿속에서는 잠자리를 따라다니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곳에서 사는 걸 좋아하니 잠자리가 마음대로 머릿속을 어지럽히게 두지 않고 잡아준다.



 


 두 번째 기록 방법은 사진이다. 언제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 첫 핸드폰을 갖게 되어서 친구들이랑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게 첫 번째 기억이다. 핸드폰으로 아무 때나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진에 마음을 썼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담고 싶었을 뿐이랄까?

같은 의미에서 필름 카메라도 좋아하게 됐다. 순간의 분위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라서. 살짝 바래고 흐릿한 필름 사진의 분위기가 그땐 그랬지-하며 내 추억을 미화해 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그래서 영국에 가게 되었을 때 새 필름 카메라를 살 생각부터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몇 백장이나 되는 사진을 찍게 될 줄, 그리고 그 사진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사실 걷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나에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상당히 번거롭다. 손에 쥐고 있는 채로 셔터만 누르면 되는 핸드폰과 다르게 카메라를 항상 의식해서 챙겨 다녀야 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우선 집에서 나가기 전에 ‘오늘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을 일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카메라가 조금 무겁더라도 어쩌면 오늘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어야만 들고나갈 수 있다. 찍는 순간에는 또 어떠한가. 햇빛은 적당한지, 그림자는 지지 않았는지, 사진이 잘 나올지 고민하며 움직이는 물체가 잠깐 멈칫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무슨 뜻이냐면 필름 카메라로 찍어낸 순간들은 내가 우연히 만났던 ‘귀찮아도 이건 찍어야 해!’ 하는 시간들이었단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애정하여 영원히 담아두고 싶은 사람들과, 풍경들과, 시간들이었다는 말이다.


 나에게 사진은 글보다는 조금 더 의지가 많이 필요한 행위다. 글은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지 말지는 순전히 내 의지에 달려있다. 사진 찍기는 특정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다. 눈으로만 담고 후에 흐릿하지만 미화된 기억을 떠올릴지, 아니면 현재를 조금 희생해서 사진으로 남겨놓고 후에도 선명하게 기억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사진을 찍는 나의 기준은 이렇다. 꽤 마음에 들면 사진을 찍는다. 하루 정도 뒤에 왜 찍었지 싶은 사진은 지운다. 마음이 아주 많이 동해서 사진을 찍지 않고도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순간은 눈으로만 담는다. 그런 시간들은 아무것도 없이 내 기억력만으로 날씨, 주위 사람, 소리, 내 감정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럴 땐 오히려 카메라를 키는 것이 현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는 것만 같아 아깝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껴야만 한다. 조용히 소리 나지 않게 마음의 눈으로만 사진을 남긴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다. 아름다운 비밀들을 마음속의 가장 희고 깨끗한 방에 넣어두고 소중히 한다. 함부로 꺼내보지 않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보관된 기억들은 오염되지 않은 잠재의식의 심해를 유영하다 어느 날 또 다른 생각의 날치를 낳는다. 그럼 나는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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