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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마박사 Sep 11. 2021

아침엔 맞고 오후엔 틀리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코로나 시대의 베트남, 우왕좌왕 통행증 방역

"Sáng đúng, chiều sai, mai lại…đúng"
아침엔 맞고 오후엔 틀리다. 내일은 다시 맞는 걸로


홍상수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 문구는 코로나19로 록다운 중인 베트남 하노이에서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문구다. 원래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꼴 내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다가도 결국 변하는 것 하나 없이 예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것을 일컫는데 쓰이곤 하던 표현이다. 


이 표현은 하노이시가 최근 코로나19 방역 강화를 위해 통행증 정책을 손보는 과정에서 다시 소환됐다. 'Sáng đúng, chièu sai, mai làm lại(아침에 맞고 오후엔 틀리다, 내일 다시 하자)' 같은 다양한 변형도 등장했다. 통행증 문제를 놓고 우왕좌왕하며 수백만 시민을 속 터지게 만든 우당탕 대소동을 이처럼 단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압축해버리다니. 최근 접한 베트남어 중 표현의 정수로 꼽고 싶다.  


하노이시는 50일째 록다운(봉쇄) 중이다. 지난 4월 말부터 시작된 4차 대유행으로 방역지침이 대폭 강화되며 영화관과 헬스장 등이 문을 닫고 이래저래 제약이 생긴지는 좀 됐지만 식당・카페의 배달도 막히고 야외 달리기는커녕 불필요한 외출조차 금지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그러니까 진짜 '록다운'-다. 


7월 24일에 15일 예정으로 떨어진 총리 지시 16호(=록다운)는 보름씩 두 차례 더 연장돼 9월 6일까지 시행됐다. 3~4일께부터 "영원히 봉쇄하고 살 수는 없다"・"봉쇄가 계속될 경우 경제적 타격이 더욱 커진다"와 같은 지도부・전문가들의 발언이 이어지며 6일 이후 록다운 조치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샘솟기도 했다.  


그러나 하노이시가 6일 이후 시행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는 완화가 아닌 사실상 강화된 봉쇄 연장이었다. 당국은 하노이시를 레드존(고위험군)・옐로우존(중위험군)・그린존(저위험군) 3개 지역으로 나눠 방역조치를 차등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흔히들 이야기하는 '하노이시'는 모두 레드존으로 묶였다. 호안끼엠・호찌민 묘 인근 하노이 시내는 물론 쭝화・미딩・경남 등 한인 지역도 레드존이 됐다. "이 지역도 하노이라고?" 싶은, 일반적인 교민이라면 갈 일이 없는 초외곽지역들(주로 뒤늦게 하노이시로 편입된 곳들이다)이나 그린존으로 묶였고, 그나마 공단지역인 하노이 북쪽 외곽이 옐로우존으로 지정됐다. 사실상 공업・농업지역만 봉쇄조치를 조금 완화해준 셈이다. 


VN익스프레스의 인포그래픽. 흔히 '하노이'라고 알고 있는 대부분 지역이 모두 레드존으로 묶였다.  


'강화된 봉쇄조치의 연장'으로 여겨진 가장 큰 이유는 통행증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두 번 바뀐 것 같지만 사실 정확히 따지면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통행증 규정만 무려 5번이 바뀌었다. 다만 9월 6일을 전후로 한 규정이 가장 파장이 컸다.


9월 6일 전후 모두 식료품이나 의약품 구매・병원 방문 등 필수적인 목적 이외의 불필요한 외출은 금지됐다는 점은 같다. 다만 6일 전에는 회사 근무・생산활동 참가 등을 위한 외출의 경우 인민위원회 등 국가기관이나 회사가 발급한 통행증과 신분증이 있다면 방역수칙을 준수한 이동이 허가됐다. 집에서 하루 종일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들을 쳐다보고, 또 종종 일 보러(나는 통행이 허가된 직종이다) 나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교통량이 확실히 줄긴 했지만 '록다운치곤 생각보다 통행이 제법 많네' 싶긴 했다. 


당국이 6일 이후 새롭게 발급・시행한다고 밝힌 새 통행증 정책은 규정이 대폭 강화됐다. 공무원・공기관 재직자・외교관・방역업무 종사자・기자와 그 외 필수 직종 등 총 6개 그룹을 대상으로만 통행증을 발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이 직종 외의 사람들은 통행을 할 수 없는 셈이다. QR코드로 나온다는 새 통행증을 받기 위해선 공안에 신청해야 하는데 당국이 인정하는 필수직종도 대폭 축소돼 심사・발급도 더욱 까다로워진 데다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더 늘어났다. 게다가 베트남 행정 시스템 상으론 신속한 발급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행 첫날, 그나마 직원들 출근시키던 회사들 중 대다수가 우선은 100%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통행증 신청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안서(경찰서)로 몰려들었지만 예상했던 난리가 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안서에 죽치고 앉아있었지만 서류 접수도 못 했다는 친구부터 처음부터 이미 신청자 많아 더 못 받는다고 퇴짜를 놓기에 빈손으로 돌아왔단 친구까지. 내 주변뿐만 아니라 하노이시 전체가 난리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권역별 분계 지점을 비롯, 곳곳에서 검문이 대폭 강화돼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시행한 조치가 되려 감염 위험을 더 높이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권역 구분과 새 통행증 규정이 시행된 첫 날인 6일, 권역 분계지점 검문소의 모습

새 규정 시행 첫날부터 상황이 이러니 하노이시는 6일 오후 부랴부랴 6일과 7일 이틀간 기존 통행증 사용해도 처벌하지 않겠다며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8일부터는 새 통행증으로 검문과 단속을 하겠다"며. 그런 발표와 보도를 보면서 '분명히 이틀 안에 다 못할 텐데?'란 생각을 했는데 SNS 쭉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결국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치고 앉아 있던 친구는 다음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또 공안서를 찾아 기약 없이 기다렸다. 그나마 아예 처음부터 퇴짜를 당했단 친구가 '아는 사람'을 통해 "그럼 일단 기다려는 보라"며 '대기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결국 하노이시는 7일 저녁 또다시 신형 통행증 발급 전까지 기존의 구형 통행증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새 통행증 발급 작업은 계속 진행한다고. "아침엔 맞고, 오후엔 틀리고, 내일 다시 하자"는 말과 함께 "하노이시가 내놓은 통행증 정책의 수명은 10일도 안된다"는 비판과 지적이 쏟아졌다. 결국 총리까지 나서서 "통행증 발급에서 빚어진 잘못들을 시정할 것"을 지시했다. 


하노이시가 내놓은 규제는 현실과 맞지도 않아 시민들의 어려움만 가중됐고, 구형・신형 통행증을 혼용하면서 통행량을 줄여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 방역정책의 실효성에도 의문만 한가득 남겼다. 아침엔 이게 맞는 방법이다! 라며 나왔던 정책이 오후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내일 다시 어떻게 해보자 하는 게 통행증에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앞서 호찌민시에서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했다가 그 과정에서 감염이 더 확산했는데도 하노이시도 전수 검사를 선택했다. 뭐 코로나 상황이 호찌민시보다는 확연히 나은 시점에서 진행하는 전수검사라 그 과정에서 감염이 확산할 위험도는 낮겠지만. 그 전수검사에 드는 비용을 보다 실효적인 방역정책이나,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활용할 더 나은 방안들이 있지 않냐는 비판과 아쉬움의 목소리도 높다. 이것도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많고 많은 일들 중 코로나 방역이란 극히 일부의 이야기. 뭔가 잘 굴러가는 '모레'가 언젠가는 오겠지?




갑작스레 훅훅 바뀌는 방역정책에 대해선 얼마 전 일어났던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백신 트랙' 입국 기업인들이 버스에 9시간이나 갇혀 있었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연합뉴스에서 베트남 공안 '생트집'에 한인 입국자 14명 버스안에 9시간 갇혀 란 제목의 보도로도 나갔다. 



연합뉴스 보도가 나가고 나서 베트남 현지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기레기가 기레기 짓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나도 취재 중이던 차에 그런 반응을 접하기도 했고. 비판의 요지는 현재 베트남에선 이동을 위해선 통행증이 필요하고, 통행증이 없어서 공안이 잡았을 것이다, 규정대로 한 공안은 잘한 것이고 통행증을 못 갖춘 게 잘못이지 이걸 생트집이라 하느냐 라는 것이다. 


나도 기사를 쓰며 베트남 당국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대한상공회의소 베트남 사무소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묻고 확인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안도 마냥 생트집을 부린 것은 아니었지만 대한상의나 한국 기업인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똑같은 록다운 상황에서도 대한상의 백신 트랙을 통해 입국했던 기업인들이 문제없이 꽝닌성에서 시설 격리를 마치고 하노이로 들어왔다. 사건 당일에도 대한상의는 필요했던 절차나 서류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한국 기업인들이 탑승하고 있던 차량도 꽝닌성 등 당국에서 지정한 차량. 다만 사건이 발생한 2일이 베트남 국경일이고 주말을 낀 연휴가 시작된 탓에 당국이 갑작스레 방역지침을 강화했다. 


공안이 현장에서 이동(하노이시 진입)을 막은 것도 강화된 방역지침으로 추가 서류를 요구해서다. 당일날 그랬어도 당일날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기엔 글쎄, 위의 우당탕 통행증 사건만 봐도 답이 되지 않을까. 한국 대사관 경찰 영사가 현장에 도착한 후 "예외적으로 진입을 허가하는 것으로 잘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현장에선 강화된 방역지침을 예외 없이 적용하려 한 것 같다”는 것이 한베 관계당국의 설명이다. 물론 기업인 등 14명의 한인 입국자분들이 고생한 것은 맞다. 그리고 지금도 중앙정부 발표와 달리 달리 지방성이 다르게 시행하고 있는 규정들로 고생하고 있는 기업인들도 제법 된다. 


현지에 오래 있다 보면 한국에서 왔다는 특파원이나 주재원들, 외교관들이 우스워보일지도 모른다. 나라고 그런 생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1~2년 내지는 3~4년 체류하는 걸로 한 나라를 좀 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공안이 정말 '생트집'을 부린 것인가 라는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대한상의가 이런 기업인들 특별입국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데 통행증이나 필요한 서류도 준비를 못했을까? 하는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정받자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무소장님 말이 유난히 씁쓸하게 남았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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