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마박사 Dec 12. 2022

"한국? 퍼(쌀국수) 고기 더 얹어 줄게"

하지만 특별 쌀국수를 먹은 한국인은 나뿐이었고

11월 11일이 빼빼로데이라면 12월 12일은 퍼데이(ngày của phở 12/12)! 12월 12일은 퍼(phở: 베트남 쌀국수)의 날이란 슬로건을 몇 년전부터 봤는데 참 의미있는 행사 잘하네 싶었다. 특히 코로나19가 심했을 땐 드라마촬영장에 ‘밥차’를 보내듯 방역 때문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의료진들에게 ‘퍼차’를 보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다. 마침 올해 행사는 하노이서 두시간 남짓 거리, 퍼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남딩에서 열린다기에 낼름 다녀왔다. 몸살감기 달고 비실비실거리며 가서 24시간동안 쌀국수 10그릇 넘게 먹고 왔다는 것은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해 생략하고… 기사에 못 다 쓴 이야기도 참 많지만 취재가서 느꼈던 아쉬운 점이나 남겨볼란다.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21211010005344


행사를 주최한 베트남 유력 언론 뚜오이쩨 사람을 붙잡고 12월 12일 퍼의 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고 물어보니 ‘하오하오’ 라면으로 유명한 일본 식품업체 에이스쿡 임원(일본인)이 베트남에 왔다가 퍼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퍼를 잊지 못해 일본에서 4월 4일을 퍼의 날로 선포했단다. 퍼와 4(four)의 발음이 비슷한데서 착안한 것이고, 에이스쿡 베트남도 인스턴트 퍼 라면을 만들어 파니 퍼와 사랑도 하고 마케팅 전략도 잘 짠 셈이다. 이후 뚜오이쩨가 더운 4월 대신 퍼 한그릇이 절실하게 생각나고+뜨끈하게 한그릇 하기 딱 좋고+기억하기도 쉬운 12월 12일을 퍼의 날로 지정해 ‘퍼의 날’을 시작했고 행사는 올해로 6년차에 접어 들었다. 

올해 행사에도 베트남 주재 외교관들이 자리했다. 미국, 중국은 물론 이란, 이스라엘, 핀란드 등등 여러 나라 대사와 외교관이 주말을 반납하고 남딩을 찾았다. 아이와 함께 가족이 다 온 외교관도 있었다(슬로바키아 외교관네였는데 아들래미가 자기 쌀국수 다섯그릇 먹었다고 자랑하더라 난 여섯그릇 먹었지롱ㅋ). (여성) 대사나, 외교관 부인 등이 직접 퍼를 만들어보는 체험 시간엔 다들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음식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베트남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기뻐하고 그걸 자랑으로 생각했는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외교관 일행과 함께 남딩을 찾아 시내 한복판, 시내에서 좀 떨어진 반끄마을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니 한국인인 것을 안 남딩성과 마을 관계자들이 “한국 기자가 왔으니 한국 대사관에서도 (외교관이) 나왔느냐, 특별히 쌀국수에 고기를 더 많이 얹어주겠다”고 했다(ㅋㅋㅋ). 물론 우리 대사관에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남딩성 사람 한명은 “여기 한국 봉제공장도 많고 다들 한국을 참 좋아하는데 왜 안왔는지 참 아쉽다”고도 했다. 


베트남 외교부는 종종 베트남 지방이나 문화를 알리는 탐방 프로그램을 꾸리고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기자들을 초청한다. 나 혼자선 갈 생각도 못(안)하고, 엄두도 못내고 그래서 아마 평생 못 갔을지도 모르는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도 덕분에 다녀왔다. 일정에는 인민위원회 문화관광부서 관계자 나와서 따라다니며 곳곳을 소개해주는데 당국자니 뭐든지 빠삭하게 잘 아는 것은 물론 대부분 현지 토박이다 보니 온갖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고 일정엔 무조건 그 지방 인민위원회와의 만남이 낀다. 먼 곳을 찾아온 외교관과 외신기자들에게 구구절절 현지 사정 브리핑도 해주고 그들의 나라와 관련된 사항도 읊어주고 질의응답도 받는다. 그래서 부대사가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한 300%의 확률로 고급 승용차 대신 미니버스에 몸을 구겨넣고 아침 댓바람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 소화에 아늑하고 시원한(혹은 따뜻한) 집이 간절해지게 되지만…


여튼 곧 4년차에 접어드는 특파원 라이프동안 이런 곳에 한국 대사관 사람이 나오는 걸 못봤다. 물어보니 한국대사관도 초청을 하긴 하는데 안 나온다고 한다. 대사관 사람 몇몇에게 물어보니 이런게 있는줄도 모르고 있거나 워낙 오라는 곳이 많고 바쁘다보니 아마 참가를 못 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뭐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만 유난히 아쉽다. 이런 행사에 와서 베트남 퍼 맛있다, 베트남은 정말 뛰어난 문화를 지니고 있는 나라다 하며 엄지 척! 치켜올리는 ‘척’이라도 하지 싶은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매번 베트남에 한류 한류 하면서 그 반대로 베트남 문화를 알아보고 한국에 다시 알리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팔아먹기만 하는 한류가 얼마나 오래, 좋은 모습으로 잘 갈지도 모르겠고, 수교 30주년을 맞아 문화부문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슬금슬금 나오는 와중에 ‘척’조차 않으니 아쉬움을 넘어서 실망스럽고 참담하고 뭐 그런 것이다. 


베트남의 이 멋진 식문화(食文化), 자부심을 되새기고 나아가 전 세계에 ‘베트남 문화의 정수’인 퍼를 알리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퍼의 날’을 일본은 함께 시작했고 지금도 불가분의 동행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수교 30주년을 맞아 베트남과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는 한국의 ‘포괄적’인 행보도, ‘전략’도, ‘동반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건 뭐 어디 박닌이나 돈 얘기 나오는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남?


작가의 이전글 젊은 여성들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