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歌皇) 나훈아와 철인(哲人) 소크라테스 재판
2020년 9월 30일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란 이름의 방송은 시청율 29%라는 어마어마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2시간 23분 동안 연주와 입담으로 구성된 가황 나훈아 특별편은 그간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슬픔과 고난을 어루 만져주었다. 그의 주옥같은 노래 뿐 아니라 그의 멘트 역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KBS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캡처]
마지막 피날레 '사내'란 노래를 부르기 전, 그는 대국민 메시지를 던진다.
1.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라.
2.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 의사 간호사 의료진의 희생이 결정적이었다.
3. 역사책을 봐도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걸 못봤다. 나라를 지킨 것은 여러분 즉 국민의 힘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1등이다.
그리고 나훈아가 올해(2020) 발매한 노래 “테스 형”은 기이하게도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언급하고 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대중 가요에 이렇게 철학자를 대놓고 인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한국의 가수 나훈아는 이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의 앞마당 <the pronaos> 돌판에 조각된 명문(銘文)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여러 번 인용했기에 흔히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인 줄 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보증은 황폐를 가져온다(Surety brings ruin)” 또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nothing to excess)” 구절과 함께 쓰여져 있었다. 신전에 올라 갈 때는 '반드시 공물(供物)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공물(供物)은 분수에 알맞게 가져가라'는 뜻으로 쓴 듯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시 이 말을 “절제하라, 분수를 넘지 말라”의 뜻으로 사용한다.
나훈아의 테스형의 가사 중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역시 그런 비관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The Death of Socrates (1787), Jacques-Louis David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y)”은 플라톤의 저서다. 이는 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청년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와 "신에 대한 불경죄(impiety)"의 죄목으로 고발되고, 재판 판결을 앞둔, 피고인의 최종 진술에 해당한다.
특히 문제는 거짓이 진리로 주장되고 거짓이 법정에서도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크라테스 재판이 그런 경우다. 물론 여전히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 하에서 사법제도, 재판 제도가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변명”을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 재판은 따라서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에 현대의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재판 이아기에 들어가기 전 당시의 사회 풍조를 잠깐 살펴 보자면, 당시 그리스는 탐욕과 거짓이 판쳤고 권모술수로 정적(政敵)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정치인들이 자살로 죽고 있다.
아무리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해도 변론만 잘하면 무죄가 되고 또 반대로 소크라테스처럼 평생 선한 생활을 하고 젊은 이들을 선하게 인도해도 중상 비방을 받고 결국 죽임을 당하는 사회가 바로 B.C. 4~5의 그리스 민주주의 사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싫어했다.
당시는 민주주의 초기였고 아직 헌법과 제도로 민주주의가 정착이 안 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궤변론자(sophists)라고 불린 사람들이 나와 덕(=탁월함, 능력)을 “가르친다” 혹은 “판다”라고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큰 빚을 진 사람이 교묘한 술수와 논변을 통해서 빚을 갚지 않는 것이 능력이 되는 사회가 바로 B. C.5세기의 아테네 사회였다.
또 그런 능력이 숭배되었고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그런 능력을 배우게 하려고 고액의 수업료를 내면서 소피스트들을 찾고 있었다. 어떤 소피스트는 그가 가난한 지역에서도 사교육을 통해 빨리 부를 모은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소피스트들은 당시 교육자 혹은 학원 강사였다.
이들에게 소크라테스 눈에 가시와 같았다. 그저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하는 자였다. 그 밖에 정치인, 시인, 장인들에게도 그는 있으면 안 되는 자였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공공의 적이 되어 독배를 마신다.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한 글: https://brunch.co.kr/@vereinigung/8
그런데 하나 덧붙이고 싶은 사실은 이 모든 소크라테스의 탐구 활동이 실은 신의 뜻, 즉 젊어서 들은 신탁(神託)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 종교인이었다. 항상 신의 소리, 내면에서 들리는 다이몬의 소리를 순종하여 작은 일도 행했다. 이런 사람을 무신론자(無神論者)로 고발한 멜레토스의 행동은 정말 가증(可憎)스럽다. 당시의 유명 정치인들이나 장인들(craftsman) 혹은 소피스트들은 유식한 것처럼 떠들어내나 실은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 각광을 받았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에 열광하여 그 주변에 많이 모였다. 또 이런 소크라테스적 논박(Socratic elenchus) 기술을 흉내낸 청년들은 그들의 부모들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미움을 받아 사형을 받아야 했다.
원고 측의 법정 대리인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는다” 혹은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 그 결과 죄를 범했다고 유죄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적으로 다이몬이란 신(神)을 믿고 복종한 철저한 종교인이었다. 다이몬은 이상한 이방신이 아니라 당시 아테네가 인정한 신이었으며, 멜레토스와 원고 측은 고소했으나 논리적으로 완전히 실패한다.
소크라테스는 신의 명령으로 전쟁터에서 적들이 쳐들어 와서 위험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지켰으며, 그는 평소에도 신의 명령에 따라 본인 자신과 남들을 보살피면서 살았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립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질투와 중상 때문이었습니다.
주로 플라톤의 “변명"에 의지한 소크라테스 측의 항소 이유서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악용(惡用)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의 히틀러도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나치의 독재 지배를 달성한 바가 있다.
젊은이들은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워서가 아니라 그와 교제하는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여러 가지 훌륭한 것을 출산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청년들은 기성 세대의 거짓이 폭로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비판적인 논점을 개발하고 창의적인 생각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를 소크라테스의 산파술(midwifery)이라고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억울하게 독배를 마시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다시 말하면 당시 기득권층들이 볼 때는 청년들에게 불순한 이념을 선동하여 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 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멜레토스의 고발은 어떤 증거나 증인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재판장에는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이 가득 모였고, 그들은 스승의 억울한 심판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보석금을 내고 사형을 피하라고 말했으나 소크라테스는 평소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와 국법에 복종했다.
그의 철학과 지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도덕과 정의에 대한 열정은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후대인들의 귀감이 되었고 진정한 서양철학을 시작하는 모퉁이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