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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훈 Apr 07. 2024

제복

예비군 가기 싫다.

옷장 구석에서 가장 입기 싫은 옷을 꺼내 입었다. 군복이 이렇게 딱 맞았던가. 나는 큰 옷을 좋아해서 군복도 사이즈를 키워 받았다. 현역 시절 날렵하던 몸이 전역 후 자유로운 생활 덕에 묵직해졌다. 덕분에 군복이 몸에 딱 맞는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듯 몸이 무겁다. 해가 있을 때는 더운 날씨다. 평소에 입는 도톰한 후드나 니트보다 훨씬 가벼운데, 군복은 몸을 무겁게 한다. 생각해 보니 등교할 때 입던 교복도 이만큼 무거웠었던 것 같다. 양복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 교복 입은 학생, 군복 입은 군인, 제복 입은 경찰은 다들 같은 옷에 보이지 않는 무게추를 매달고 다닌다.


 제복은 소속과 동시에 분리시킨다.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치는 휴고 보스에 멋진 군복 제작을 의뢰했다. 덕분에 소속된 청년들에게 자부심 주고 분리된 대중에게 경외감과 자원입대를 얻었다. 그들의 군복도 우리만큼 무거웠을까.


자부심과 소속감은 부담과 책임이 따른다. 자부심이 크면 제복은 가벼워진다. 책임이 커질수록 제복도 무거워진다. 자부심과 책임은 보통 함께 커진다. 결국 느껴지는 옷의 무게는 그대로다. 커지는 건 보이지 않는 소속감과 책임감 일 뿐. 모두 다른 무게의 추를 달고 다닌다.


몸이 한결 가볍다. 오늘 이후로 당분간 군복은 안 입겠지. 내일은 내가 고른 옷을 입고 출근하겠지. 군복보다 가벼울까. 아닐 것이다. 아무리 가벼운 옷을 골라도 지금의 내가 소속된 곳의 제복이니까.


예비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퇴근하는 사람들을 봤다. 남자의 이마에 깊게 주름이 파였다. 정장 소매가 해지고 셔츠 깃이 누렇다. 어깨가 짓눌려 푹 꺼져있다. 그가 매고 있는 추의 무게를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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