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며
약 일 년 전 글쓰기 세계에 입문하여 처음 시작한 것은 '필사'였다. 단편소설도 필사했고 칼럼도 필사했지만,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가성비가 좋지 않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여 남는 것은 오직 손가락 통증뿐이었다. 손필사를 했던 탓이었다.
작년 일 월. 나는 비장한 각오로 에세이 강좌를 신청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편도 두 시간을 들여 서울에 가고 두 시간 수업을 듣고 다시 두 시간을 들여 집에 오는 일정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 앞섰었다. 토요일 오전마다 수업에 참여했고, 과제로 매주 에세이를 제출했고,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여덟 번의 수업이 끝났다. 수업 마지막 날, 우리들은 앞으로 에세이 쓰기를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의 계획을 물어보았고, 이후엔 어떤 강좌를 들어야 하는지 강사님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하지만 강사님의 대답은 '그냥 쓰라'는 것이었다.
일단 강제적으로라도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선뜻 '백일 글쓰기 프로젝트'라는 강좌를 신청했다. 강사님이 카페를 개설하면 열명 남짓한 수강생이 매일 글을 한편씩 올리는 것이었다. 주제는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때 우리들은 장거리 마라톤 대회에서 일렬로 출발선에 서 있다가 신호가 울리면 일제히 뛰기 시작하는 마라톤선수 같았다. 매일 카페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자유 주제이다 보니 하루 일과를 쓰는 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글을 쓰는 이, 소설을 시도하는 이, 최근 읽은 책의 독후감을 올리는 이 등 각자 글 소재는 다양했다. 일주일이 지나며 매일 글을 올리는 이가 있는 반면, 이삼일 만에 한 번씩 글을 올리는 이도 생겨났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글을 오랫동안 쉬는 이가 생겼다.
당시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서서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약 이십오 분가량 오늘은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고 글을 구상했다. 점심시간인 열두 시가 되면 점심을 먹으라 나가는 동료들에게 코로나 감염이나 다이어트를 핑계로 점심을 굶겠다고 이야기하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글을 썼다. 여섯 시가 되어 주위에서 하나 둘 퇴근하기 시작하면, 나도 업무를 마무리하고 개인 파일을 열어 점심시간에 다 못쓴 글을 다시 이어 쓰기 시작했다. 글이 빨리 마무리되면 여덟 시에 퇴근했고, 글이 영 안 써지는 날엔 저녁 아홉 시나 열 시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글을 썼다. 그땐 그렇게 해서라도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날이 삼십일이 되고 오십일이 되고 칠십일이 됨에 따라 내 글도 삼십 편, 오십 편, 칠십 편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매일 새로운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일과, 최근 고민, 지난날의 추억에 더하여 영화감상, 독후감, 심지어는 넷플릭스에서 본 미드 시리즈 감상문까지 썼다. 업무에 바빠 점심시간에, 퇴근시간 이후에 글을 쓸 수 없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저녁 아홉 시나 열 시에 책상에 앉아서 '너무 피곤해서 당장 자고 싶다'는 생각을 뒤로 한채 무엇이라도 써야 했다.
오십일이 지나며 글 쓰기는 자연스레 내 생활에 자리 잡았다. 화수분처럼 매일 샘솟는 글감에 '지금 내 머리는 글쓰기에 최적으로 세팅되어 있구나'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백일동안 에세이 백 편을 썼다.
백일이 지나고 '백일 글쓰기 프로젝트' 마지막날. 함께 글을 쓰던 이들 사이에 이대로는 아쉽다며 수강기간은 끝났지만 자체적으로 글쓰기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여섯 명이 동의했고, 매일 글 쓰는 것은 힘드니 일주일에 한편씩이라도 써서 카페에 올리자고 했다. 그로부터 세 달 동안 정기적으로 카페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오직 나와 또 다른 한 사람 뿐이었다. 의기충천해서 계속해서 글을 쓰자던 그날의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글쓰기를 당분간 쉬고 싶다고 했다. 자체적인 글쓰기 모임은 삼 개월 동안 운영되고 여름이 한풀 꺾인 팔월 말 해산했다.
그 후 나는 혼자 글쓰기를 지속했다. 개인 블로그에 매일 떠오르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조금씩 끄적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 쓴 글은 마감이 없으니 글이 완결되지 않았고, 공개할 곳이 없으니 퇴고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글을 시작은 있으나 미완성인 채로 비공개로 설정되어 블로그에 조금씩 쌓였다.
작년말쯤에 문득 이런 식으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공개할 채널이 있으면 더 이상 글을 미완성인 채로 방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또 석 달이 지났다. 나는 글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아니, 글을 쓰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작년에 비하여 올해는 글감을 생각할 여유 없이 일에 쫓기고 있고, 점심시간에도 점심을 먹지 못한 채로 밀린 업무를 하고 있으며, 퇴근 후에는 올해 새로 시작한 필라테스 수업시간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내가 글에 집중할 환경이었다. 올해는 나의 신경을 분산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글에 집중하기는커녕 글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글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내다 보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