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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맑음 Jun 28. 2023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시계 초침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한나절이 지났다. 하루가 갔다.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한때는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같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날이 지날수록 공개글보다는 비공개글이 많아졌다. 암울했던 개인사가 드러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 미처 생각이 영글지 못한 채 그저 써 내려간 글, 생각을 정리하며 어찌어찌해서 글은 마무리를 했지만 미처 다듬을 시간이 없어 임시로 저장해 놓은 글, 그리고 언젠간 시리즈로 공개하리라 생각하며 한 가지 주제에 맞추어 그때그때 써 내려간 글.

비공개글이 쌓일수록 뭔가 깔끔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진행하다 중도에 멈춘 일이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쓴 글 중에 괜찮아 보이는 글을 다듬어서 브런치에 올린 적도 몇 번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 글이 쌓여가다 보니 직접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더 나을 듯싶었다. 브런치에는 작가 서랍도 있으니 글을 써 놓고 시간 될 때마다 다듬어서 올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두 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시 작가 서랍에도 비공개 글이 쌓였다.  

이토록 비공개 글만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브런치에 있는 여러 글 중에서 나는 글 제목으로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다음 화면에는 브런치 글 제목과 사진만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글 제목이 '김밥', '떡볶이' 같은 내 생활 가까이에 있고, 언제 들어도 침이 넘어가는 친숙한 음식명이 들어있으면 주저 없이 읽어보았다. 그 외에 소소한 생활기 혹은 직장 생활, 취업준비, 해외 생활 등 쉽게 공감할 수 있거나 관심 있는 내용으로 추정되는 글 제목도 나에겐 선택 일 순위였다. 

 

수많은 브런치 글 중에 읽고 싶은 글을 선택하는 기준 중의 하나에는 사진도 있었다. 글 내용과 부합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아기자기한, 세련된 사진을 보면 글을 읽기 전부터 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브런치 글이 독자에게 어필하는 수단 중의 하나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부담스러웠던 부분 역시 글과 함께 실을 사진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 긴 시간을 어떤 사진을 넣을지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내가 찍은 사진 중에 혹은 무료로 제공하는 이미지 사이트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사진을 고르게 되었다. 물론 직접 찍은 사진보다 이미지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진이 조명이며 화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기에 주로 이미지 사이트 사진을 가져다 썼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사진 올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사진을 고르는 시간이 길수록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혹은 글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보조적으로 넣는 것이 사진인데 글은 그럭저럭 쓰고 사진 고르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내 모습이 맞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사무실에 일찍 출근해서 혹은 퇴근시간 후에 조금씩 글을 썼었는데, 금년 봄 사무실 업무가 늘어나면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일곱 시에 출근하면 자동적으로 메일을 확인했고, 잊기 전에 당일 해야 할 업무를 적어놓고 하나 둘 일을 처리하기 바빴다. 여섯 시가 넘었다고 하던 일을 멈추고 글을 쓸 상황이 되질 않았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해야 했고, 그럭저럭 일을 끝내고 나면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여섯 시가 훨씬 넘은 시간까지 열한 시간을 훌쩍 넘게 앉아있던 사무실을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브런치 글은 커녕 일기도, 간단한 메모도 못하게(혹은 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니 그동안 내게 있었던 일들, 내 감정들이 바닷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기록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선천적으로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야 마음이 놓이는 생물체인가. 이유야 어쨌든 내가 지내온 나날이, 자연 속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매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이, 고마왔건 이해할 수 없었건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을 그저 허망하게 공기 중에 흩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생활, 내 감정을 하루하루 기록하고 기억하며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오늘부터 뭐가 되든 다시 글을 쓰기로 한 이유이다. 사진 따위에는 연연치 않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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