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엄마의 소원빌기는 끝이 없다. 근데 내 코끝이 찡해진다.
기도를 하는 엄마.
나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옆에서 기도한다.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 가는 곳이 있다면 절이다.
엄마 역시 그렇다.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절에 가서 소원을 비신다.
홍콩 여행을 하면서
엄마가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사원.
가장 많이 갔던 곳도 사원이다.
엄마와의 홍콩 여행은
'기승전소원' 또는 '기승전사원'이라 말할 수 있었다.
엄마는 홍콩에 와서도 기도를 하고 싶은 엄마..
홍콩이 기도발이 좋은가 싶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홍콩 여행은 엄마의 기도 여행,
소원빌기 여행이 되어버렸다.
홍콩 속 사원 찾기에 몰입한 엄마.
하지만 점점 나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야속한 비여...
우산으로도 가릴 수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엄마의 신발과 내 신발 모두 다 젖었다.
거친 비에도 사람들이 이 사원에는 많았다.
여기는 복을 비는,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고 비는 사원이다.
재물운 전담사원이 바로 이곳!
신들도 분업을 하나보다.
기도 접수는 각각 다른 곳으로!
비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언제면 비가 그치나 하는 대신, 그냥 얼른 보고 나가자가 정답이었다.
소원 빌 시간도 없었고,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저 카메라가 고장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이 사원안에서 난 정말 멍청한 소원을 빌었다.
로또 되게 해 달라고 빌었어야지.
그럼 카메라를 몇 대를 사겠니...
이 사원에 12지신상이 있는데
각자 띠에 해당하는 상에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댄다.
소띠인 엄마는 우신상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신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기도를 할 때 비가 멈췄다.
하늘이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나 보다...
내가 기도를 할 때는 비를 퍼붓더니...
내 기도는 엄마 소원 들어달라고였는데...
체쿵역에 있는 체쿵사원.
이곳은 한국인은 거의 오지 않고,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원이라서 다행히도 조용했다.
그리고 홍콩 주민이 많이 찾기에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빛의 체쿵장군이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들어 사진을 찍는 나는
왠지 모를 기에 눌려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 이래서 역병이 도망가는 건가?'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1000년 전 이 지역에는 역병이 돌았는데,
체쿵장군이 역병을 몰아냈고,
그것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음력설 3일에 해당되는 날 사원을 방문하면 가장 좋다고 한다.
기도가 가장 잘 먹히는 날이라나 뭐래나...
엄마와 나는 음력설은 아니지만 줄을 서서 소원을 빌었다.
구리풍차를 돌리고, 둥둥둥 세 번 북을 치고..
나는 엄마의 건강을 빌었는데,
엄마는 가족의 건강을 빌었겠지?
현지인들의 삶이 그대로 살아있는 완차이.
홍콩에서 가장 일찍 개발된 곳이기도 하고,
홍콩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높다란 빌딩 뒤편으로는 거의 쓰러져가는 점포를 볼 수도 있고...
완차이는 참으로 신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장소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엄마와 나.
엄마는 제주도 순수 토박이...
엄마에게 바다의 신을 기리는 훙싱사원은 특별했다.
제주도에서 바다의 신에게 제를 드리듯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바다가 사면인 홍콩이나 제주나...
바다의 신은 모셔야 하는 존재.
훙싱사원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외관만 촬영할 수 있었다.
기도는 신에게 혼자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왠지 엄마가 눈을 감고 하는 기도는
나에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홍콩 바다의 신에게
이곳에서 재미있게 놀다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만 같았다.
골목골목을 다니다가 마주한 팍타이 사원.
훙싱사원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바다의 수호신 팍타이를 모신 사원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민속종교 도교의 신인 북제는
악의 왕을 물리쳤다고 한다.
홍콩섬 주민들은 바다에서의 안녕을
이곳에서 빈다.
훙싱사원보다 화려한 이 사원...
향내음이 코를 자극했고,
비 때문인지 이 사원을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엄마는 여기에서 다시 또 기도를 하셨다.
엄마는 딸과 함께 기도를 하시는 게
정말 좋으셨나 보다.
짧은 몇 초지만,
기도를 하고 나오는 엄마의 모습은 밝고 가벼웠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절로 미소가~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어요 ^^
3박 4일 동안 하루에 한 개 또는 2개의 사원을 간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절을 자주 가지 않았는데,
홍콩에서 엄마가 유독 사원에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와 국내여행을 다니면서도 절은 가끔 한 번씩 갔을 뿐이었다.
딸과 함께 온 여행이 즐거워서?
이 순간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엄마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소원을 비는 엄마를 보면서
난 가슴이 찡했고, 왠지 슬펐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가족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같아서...
다들 엄마에게 무관심했다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미안했고 속이 상했다.
내 소원은 엄마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빌었다.
신들이 있다면,
엄마와 내 소원은 접수가 되었겠지?
너무 멀어서... 오기가 힘든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기승전-소원 여행을 하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에게 더 잘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