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장에서 엄마가 산 것은 추억과 사랑
닫혔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곳,
카드를 하염없이 긁게 만드는 마법의 도시, 홍콩.
홍콩으로 여행을 온 대부분은 쇼핑이 목적이다.
물론 엄마도 쇼핑을 좋아하고,
나 역시 쇼핑을 좋아하기에
엄마와 나도 쇼핑을 은근 기대하고 왔다.
하지만 명품쇼핑몰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낯설고 어색한 이 공기는 뭐지?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이 느낌은?
넓은 쇼핑몰을 걸어 다니려니
발끝까지 몰려오는 피곤함과 어색함 때문에 엄마와 나는 환장할 지경.
우리가 원한 쇼핑은 이게 아니었다.
홍콩의 대형 쇼핑몰, 하버시티.
엄마와 나는 이곳에 가면 행복하고 즐거울 줄 알았다.
평상시 쇼핑을 좋아했고,
무언가를 사지 않고 보기만 해도 우린 즐거웠으니까.
너무나도 넓은 쇼핑몰은
엄마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고,
심지어 쇼윈도를 보는 것 마저도 지치게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마셔도
에너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각종 명품, 브랜드샵, 보석 등등
여기에 모든 것이 있는데
엄마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행복할 것 같은 공간에서의 불편함이라니...
이 대단한 규모의 쇼핑몰을
겨우겨우 돌아보고,
이곳에 있는 맛집들도 다 가보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다.
엄마의 불편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불안했던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곳은 시장이었다.
바로 스탠리 해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 스탠리 시장에서 말이지.
시장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으며,
사람이 참 많았다.
엄마는 이곳에서 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당황스러움이란...
심지어 시장 안을 앞장서서 걸으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 있게 걸어가는 모습에 나는 또 당황했다.
흥정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상인, 구경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시장 안은 정말 말 그대로 시장통.
시끄럽고 정신없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소란함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았다.
티셔츠도 한번 살펴보고,
휴대폰 고리도 한번 만져보고.
말은 안 통하지만 계산기 눌러보면서 가격 확인까지.
순간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엄마 때문에
내가 더더욱 긴장했다.
엄마의 빠른 발걸음 덕분에
내 심장은 엄청 쫄깃쫄깃해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 보니...
엄마는 지금도 제주도 오일장, 동문시장을 주로 가시니까
시장이 더 익숙하고 편했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아차. 이런 바보...
난 홍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엄마의 쇼핑 습관, 쇼핑장소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홍콩보다 엄마가 우선인데, 홍콩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나름 여행의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난 여행 하수였다.
좌절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행여 이런 모습을 엄마가 볼까봐
활기차게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같이 가요, 엄마!"
다음날,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완차이에 내려서 타이윤 시장으로 향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타이윤 시장에 도착하니
엄마의 얼굴엔 또다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번에 또 제대로 내가 한 건 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기뻤다.
높다란 빌딩, 아파트 사이의 골목에 펼쳐진 시장.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엄마와 나의 눈빛도 덩달아 초롱초롱.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왠지 부자가 되는 느낌이랄까?
오고 가는 홍콩 시민들의 손에는 뭐가 들려있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들 손에 들린 까만 봉다리 안은
왠지 뭐가 있는지 물어보고만 싶다.
아무튼~
여긴 시장이니, 물건의 질은 So so~
그러나 잘 고르면 대박이라는 것.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더 편했던 이유는~
이곳에서 한국어를 찾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한국 찾기.
엄마는 한글을 보니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엄마도 가보셨던 명동이 나오니,
더더욱 즐거우셨다는 것~
이 타이윤시장에서 산 것은
엄마가 친구들에게 선물할 열쇠고리 등등의 소소한 것들이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밝았고,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구경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장.
덕분에 나도 행복해졌다.
과일을 좋아하고 과자도 좋아하는 엄마.
사실 중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었다.
딤섬마저도 엄마는 한 입 드시곤
고개를 저으면서 안 드셨다 ㅠㅠ
안 그래도 적게 드시는데,
더구나 버스에 도보에...
대중교통에 100% 의존하는 여행인지라
엄마의 건강이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에너지 보충을 위한 간식거리는 반드시 사야 했었다.
그리하여 간 곳은 호텔 근처에 있는 홍콩 시티슈퍼.
저녁시간 이곳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저녁 끼니를 사러 온 사람들로 가득한 이 슈퍼에서
우리 역시 먹을거리를 찾아 헤맸다.
마치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한국 과자와 한국 라면을 보고는 장바구니에 넣고.
먹기 좋게 잘라진 과일은 할인까지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바구니에 넣고.
장바구니를 가득가득 채우는데,
엄마와 나는 정말 신이 나서 슈퍼마켓을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르겠다.
계산을 다 하고
비닐봉지를 들고 호텔로 들어올 때 그 기분이란~
양 손 무겁게 들었지만 결코 무겁지 않을뿐더러
뿌듯함과 만족감에 광대는 저절로 승천~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당연지사~
호텔로 돌아와서
컵라면에 과일까지 맛있게 먹으며
엄마와 나는 쇼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나는 홍콩 와서 쇼핑을 큰 몰에서 하려고 했었지,
이렇게 시장에서나 하려고 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엄마와 처음 온 여행이고,
내가 그렇게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엄마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을 했다.
조용히 내 말을 듣던 엄마의 말은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이미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딸과 온 해외여행,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좋다고...
시장에서 나는
가장 비싼 것을 공짜로 샀다.
그것은
엄마와 함께한 추억,
엄마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