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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양 Sep 30. 2015

문신, 미니스커트, 혼전동거.  리족의 삶

#9. 하이난 소수민족  삶 들여다보기, 삥랑빌리지(檳榔谷)


태양이 솟아난 곳에서 태어났다는 리족. 

하이난에서 리족은 다섯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현재 120여 만 명이 살고 있고,

그들은 민속촌에서 그들 삶과 역사를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무릎 위 15cm, 20cm의 미니스커트의 전통의상은 

처음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거의 백 년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문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은 안쓰러움으로 가득 찼다.


왼쪽 집 : 딸이 남자와 동거하는 집, 오른쪽 집 : 부모가 사는 집. 리족은 혼전동거를 허용하며 딸에게 집을 따로 지어준다. 


민속촌에서 그들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었지만

삥랑빌리지를 반나절 돌아다니면서

그들 삶의 애환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의외로 잘 조성된 손에 꼽을 수 있는 민속촌이 아닐까 싶다.



삥랑빌리지 입구. 

리족의 문양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이곳은 A5 관광지로,

하이난 여행에 있어서 꼭 들려야 할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곳 직원들도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할머니들도, 아가씨들도

다 이 길이의 치마를 입는다.


전통복식 길이가 원래 이렇다.

나도 잘 안 입는 치마인데, 정말 짧은 길이로구나...


패셔너블한 전통복식에 깜짝 놀랐다.



흙과 짚으로 만든 이들의 집은 

흡사 제주도의 초가집을 떠올리게 한다. 


모형으로 만든 집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곳은 리족 삶의 터전이다.


이곳에 사는 리족은 

민속촌이 여는 시간부터 문을 닫는 시간까지 자수를 짠다. 

물론 그 자수를 짜는 사람은 대부분 손재주가 좋은 할머니들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안거리와 밖거리처럼 

집은 분리되어 있다.


집 한 채는 아직 시집 가기 전의 딸에게 줘서

결혼 전 자유로운 동거를 허가한다. 

딸은 아이를 낳아야만 시집을 갈 수 있다. 


자유로운 동거가 허가되고, 

아이를 낳아야만 시집을 갈 수 있는 아이러니함.


그리고 남편도 여자가 택한다.

모든 권한은 여성에게 집중된 것이라고 하면 되려나.


리족의 여성은 일단 아이를 잘 낳고 봐야한다니...



리족의 부엌을 엿보았다. 손때묻은 살림살이가 가득했다.


우리나라 민속촌은 사람은 살지 않고,

관리인이 주변을 관리할 뿐이다.


이곳은 사람이 직접 살고 있기에 

집에서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곳이 왜 삥랑빌리지인가 하면...

이 나무 때문에 그렇다.


이곳에서는 야자나무를 남자나무라고 하고,

삥랑나무를 여자 나무라고 말한다고 한다.


삥랑 열매는 야자보다 작은 여자 주먹만한 크기이고,

삥랑 잎은 충치예방, 졸음예방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보통 한약재로 쓰이는데, 

이곳에서는 운전할 때 많이 씹는다고 하지만 

단점은 이빨에 붉은 물이 들면서 시꺼멓게 착색이 된다는 것이다.


리족 할머니들의 이빨은 대부분 까맣다.

그 이유는 이 삥랑잎을 자주 씹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삥랑 잎을 씹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때문에 씹다가 도로 뱉는다고 한다. 


물론 나에게도 한번 씹어보라고 잎이 주어졌지만,

제대로 씹어보지 못하고 뱉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과 확 열이 올라온다랄까. 


리족의 자일리톨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삥랑잎이지만,

삥랑 나무의 높이처럼 나에게는 너무나도 멀었다.



문신도구. 여자는 성인식으로 문신을 해야했었다. 물론 마취없이... 


살갗이 조금만 벗겨져도,

종이에 손이 베어도 아픈데,

이곳 여성들은 마취도 없이 문신을 한다.


문신을 하게 된 것은 리족의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의 19배나 큰 하이난에는 한라산보다 작은 1867m의 오지산이 있다.

이 산자락에 리족이 많이 살았지만

홍수때문에 사람들은 다 죽고 오누이만 살아남았다.


둘은 남매라서 결혼은 할 수 없었기에 

서로 짝을 찾고 정착을 하기 위해 산을 헤매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


결국 둘은 각자 짝을 만나 살기로 하고, 헤어진다.

동생은 리족이 소멸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큰 결심을 하고 온몸에 문신을 하고 나타난다.

오빠는 문신을 한 동생을 못 알아보고, 

둘은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는다.

이 아이들은 커서 각각의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고,

지금이 다섯 리족 마을이 그것이라고 한다. 


그 전설로 시작되어

리족 여성들은

18세가 되는 해의 성인식의 의미로 온몸에 문신을 새긴다.

그래야 결혼할 수 있고, 문신의 상태에 따라 미인이 결정되기도 한다. 


1968년에 문신풍습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더이상 문신하지 않는다.

이곳에 리족 마지막 세대인 할머니들이 몇 명 있을 뿐이다.



문신은 고통이 따르지만,

이 고통을 오히려 반겼던 때가 있다.


바로 일제시대.


일본은 이곳 하이난까지 와서 부족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물론 하이난에도 한국인 학살지가 있다.

이곳에 대한 발굴 및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참으로 긴 기다림이 예상된다.


여하튼...

그렇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리족 여자들은

열여덟 살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신을 했다.

문신을 한 여자는 재수가 없다고 일본군은 데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뾰족한 가시로 살을 파는 고통을 참아가며

그렇게 리족 여성들은 살아남았다.



주름 가득한 손으로 수를 놓는 할머니.

어떤 도안도 없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실을 짠다.

자수는 할머니들의 스케치북과 같은 것이었다.

석 달 동안 짜야 겨우 스카프 하나를 완성해내지만,

할머니들은 쉼 없이 매일매일 수를 놓는다.


주름보다도 진한 문신,

무릎 위 짧은 치마. 

제주도와 비슷한 초가집.


제주와 닮은 듯 다른 하이난 소수민족 리족,

이곳 방문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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