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할 일 - 엄마의 건강 체크하기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엄마의 주름살은 점점 늘어만 간다.
엄마의 손은 더 거칠어만 간다.
엄마는 점점 외로워진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갔다.
언제면 엄마보다 키가 더 자라나 했고,
언제면 엄마보다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을까 했다.
하지만 막상 크고 나니, 내 생각이 너무 철없음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가 정말 좋았다는 것을,
엄마와 아빠의 보호 안에서 자랄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기억임을 느꼈다.
나만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는 들어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는 게 나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시계만 유독 빨리 가는 것 같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온다는 갱년기가 왔고,
갑자기 찾아든 우울함은 자꾸 엄마를 공격한다.
엄마의 시간을 늦출 수는 없을까?
엄마의 우울함을 쫓아낼 수는 없을까?
물론 엄마의 갱년기는 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딸과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얻은 따뜻한 추억은 그보다 더 좋은 약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떠나 보자는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제주도 중산간에서 태어나 22살의 나이에 아빠와 결혼해
지금의 동네로 오게 된 엄마는 모든 게 낯설었다고 했다.
그 낯섦이 이제는 익숙함이 되었고,
그 익숙함은 아주 단단하게 굳어졌다.
고로 엄마의 뇌와 습관은 철저히 제주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굳어졌다.
버스를 30분만 타도 먼 거리였고, 작은 정류장 몇 개라도 버스를 타셨다.
국제선 비행기는 적어도 1시간 반에서 4시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잔병치레를 자주 하기에 병원에 자주 가시고, 툭하면 탈이 나는
엄마에게 긴 비행시간은 어쩌면 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 어쩌면 4시간 비행기 타야 하는데... 괜찮겠어?"
"버스 3시간도 타는데 비행기 4시간은 못 타겠니~ 문제없어."
우물쭈물 묻는 나와 다르게, 너무나도 쿨하게 바로 반응하는 엄마의 대답에 엄청나게 당황했다.
엄마는 이미 육지(뭍)의 시간과 거리, 대중교통 수단에 적응을 완벽하게 하신 상태였다.
나는 25살에 서울로 공부를 하겠다고 올라왔고
엄마는 타지에 사는 딸이 걱정되어 서울을 가끔씩 들르셨고,
딸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비싼 집값은 나를 점점 서울과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고,
엄마의 이동 반경도 본의 아니게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처음에 30분 버스 타는 것도 힘들어하셨지만,
1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에 익숙해짐은 물론,
광역버스 타고 2시간을 가는 것에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비싼 서울의 집값 때문에 피해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태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고, 블로그에도 언급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이 더 앞섰다.
병원에서 의사가 조금이라도 염려를 하면
여행을 엎을까도 생각을 했었다.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엄마의 약과 비상약 등을 미리 챙기지만 말이지.
하지만, 걱정 많은 딸과 달리 엄마는 너무나도 태연하셨고, 씩씩하셨다.
"해외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산만 타지 말자."
OK. 당연히, 산은 제외!
땅땅땅.
엄마의 체력을 확인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여권을 만드셨다.
1주일 후에, 여권을 받았다면서 전화를 걸어온 엄마의 목소리에도 설렘이 묻어있었다.
내가 들어본 엄마의 목소리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가장 밝고도 즐거운 목소리였다.
진작 떠났어야 했는데...
난 왜 이걸 이제야 생각했는지...
참, 엄마의 여권케이스에는 제주도가 그려져 있다.
엄마의 제주사랑은 여권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
이렇게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해외여행 준비를 하나씩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