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양 Sep 16. 2015

엄마와 길을 잃었다? 아니, 길과 친해지고 있었다.

#4. 낯선 곳이니 길을 잃을 수 있다. 당황하지 말자.



길을 헤매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지금 이곳과 친해지는 것이다.



호텔에서 엄마와 창 밖을 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 즐기다.


내가 엄마와 홍콩에서 머문 호텔은,

리갈 리버사이드 샤틴.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산 같은 곳이다.

홍콩 도심의 호텔은 좁고 시끄럽기에

아예 조금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널찍한 호텔로 했다.


물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하지만,

쉬는 곳은 적어도 

관광지의 느낌보다는 사람 사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 이곳에도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


객실은 조용하나,

식당은 시끄럽다...


홍콩의 지하철, 역시 사람이 많아 ㅠㅠ 친절한 사람도 많다 ^^


좀 멀리 떨어진 숙소라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해야 했다.


지하철 통로를 걸어가다가

지하철 노선도를 펼치고 환승지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도 처음 가보는 호텔이고, 

엄마가 괜히 고생하실까봐 더 긴장한 상태.


갑자기 한 아저씨가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딱 봐도 엄마와 나는 여행자 티가 났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내친김에 지도를 펼치고 보여줬다.

이른바 현지인에게 확인받기~ 


그러자 그 아저씨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알고 있음에도 확인받아서 안심~


엄마는 현지인이 다가와서 길을 알려주니 신기해하셨다.

"여기 사람들 무사 영(왜 그리) 친절해? 중국인 아닌 거 닮다이~."

"엄마, 여기 사람들에게 최악의 욕은 중국인이라는 거."


중국 땅에 사는 중국인이지만

본토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욕이라는 말이 

좀 의아하게 들리는 엄마.


하지만 제주도에 온, 시끄럽고 질서 없는 

중국 관광객들을 떠올리고선 금방 이해하셨다.

(모든 중국 관광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긴이... 나같아도 싫어할 거 닮아." 


우리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지하철에서 호텔까지 가려니 돌고 돌아야 했다.


다리를 건너야 했고,

다리를 건너서는 지하도를 거쳐서 지상으로 올라와야 했다.

더구나 어둠까지 몰려와서 길 찾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악천후 때문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헤매기 시작했다.

방향감각 상실은 물론, 정신줄까지 놓았나 보다.


정말...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곧 찾아질거라. 조들지말고...(조급해하지말고)

비는 그칠 거 닮으난..."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침착해야 해, 침착...


배낭을 풀고 있는 엄마, 그리고 샤틴의 야경


비가 오니 걸어가는 사람조차 없고...

구글 지도를 보고 또 보고... 

그나마 옆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서 길을 물어보며 겨우 호텔 도착...

덕분에 이 지역의 지리는 빠삭하게 익히게 되었다.


이때 엄마 눈치를 엄청나게 봤다.

비까지 맞아서 감기 걸리는 건 아닌지

예민해졌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제주도에서 이보다 더 심한 비를 맞고 다녔다면서

쿨한 모습을 보이셨다.


울엄마가 이렇게 쿨했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원래 이러지 않은데...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던 넓은 침대, 그리고 넓은 창가의 의자



아무튼... 첫날 배낭을 메고 돌아다녔기에

엄마의 피로도는 꽤 높아진 상태.


두 다리 마음껏 펴고,

뒹굴면서 잘 수 있는 침대가 필요했고,

우리의 방은 그러했다.


넓디 넓어서 참 다행...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엄마는 숙면하셨다.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감기는 엄마게 찾아오지 않았다.



어쨌든... 비용 대비 호텔 선택은 완벽했다.

 넓었고, 아늑했다.

야경도 꽤 괜찮았고~


대중교통으로 오는 게 상당히 애매했지만,

덕분에 여기 지리는 완벽 마스터!



참... 엄마와 나의 짐은 너무나도 단출하였다.

3박 4일 여행의 짐이 저게 끝~


백팩 하나, 크로스백 하나~

각각 가방 2개씩 들고 홍콩을 누볐다. ^^


참...

젖은 운동화는 신문지를 꾸깃꾸깃 접어 넣어 말리고,

양말은 벗고,

슬리퍼를 신어주는 센스~


폭우가 지나간 샤틴의 밤


호텔로 들어오기 전, 비가 잠시 그쳐서 다행이었다.

비가 그치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맑은 강에 비친 아파트는 삭막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중국말만 안햄시믄(안하면) 꼭 한국닮다이."



아파트를 보니 동네 아파트를 보는 것도 같았고... 

엄마에게 홍콩은 낯섦보다는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살짝 쌀쌀할 수도 있었던 홍콩의 밤,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닌 

아파트 반영을 보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어제의 고생덕분에 산책로를 앞장서서 걸어가시는 엄마


둘째 날... 샤틴의 낮과 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밤에 지하철에서 내려 지도를 보면서 고생고생 온 길이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엄마와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택시 대신 지하철과 도보로 체크인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택시를 타고 왔다면 이 산책로를 몰랐을 것이고,

이 길 역시 몰랐을테까 말이지.


그리고 배낭을 메고 온 것도 잘 했다고 생각했다.

짐이 단출하니 그나마 그렇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말이다.


동선 때문에 늦게 체크인을 하긴 했고

비도 오고 고생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고생 덕분에 이렇게 길이 익숙해졌으니

하나 얻는 건 있었잖아?


엄마는 호텔과 지하철 사이의 2~3km 정도 되는 길을

아주 익숙하게 걸어가셨다.

마치 동네길을 걸어가시듯... ^^


*에피소드*

산책 나왔다가 길을 잃은 중국인들이 엄마에게 길을 물었다.

엄마는 쏟아지는 중국말에 급당황!

(분명 우리 호텔에 묵는 단체관광객들 같은데 말이지.)

엄마가 여기 주민처럼 보였나 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길을 알려주는 것으로 해결...



이렇게...

엄마와 홍콩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비용항공사, 무료 위탁수하물은 어느 정도까지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