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뉴 Oct 16. 2023

남의 도시가 탐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몇 년 만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발이 묶였던 3년을 감안하더라도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반나절이 넘는 비행시간을 거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남의 나라에 발을 딛는 것은 문자 그대로 생경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여행 횟수가 적은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돈이 아까워, 시간이 부족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흔한 이유에 더해, 가장 큰 원인은 익숙한 일상을 흐트러뜨리는 게 싫었다. 반듯하게 정리해 둔 일상, 시간에 맞게 척척 진행되는 일과들. 그 모든 게 스스로가 선택한 '여행'이라는 요소에 의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어, 나는 짐짓 많은 이유로 여행을 마음속 순위권에서 미루어두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나름 지겨움이라는 게 있어, '오랜만이니까' 란 핑계로 장기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8박 10일, 런던 여행. 오롯이 나와 남편의 스케줄로 움직이는 자유 여행이었다. 무엇이든 괜찮은 남편과, 어느 하나 불편한 나의 페어였기에 총대는 자연스럽게 내가 멨다.


그렇게 해서 다녀온, 한없이 짧게 느껴진 열흘이 끝나고, 다시 내가 너무나 좋아해 놓치기 싫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자, 나에겐 새로운 욕심이 생기고 말았다.

남의 도시가 탐이 난다. 그곳에 살고 싶다! 여행으로써 내 일상을 흩트리며 억지로 그 도시에 끼여 있는 것이 아닌, 그 도시를 내 도시로 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것은, 단연코 '매년 여행을 가고 싶다'는 꿈보다도 어려운 것이었다.


해외에 정착한 개인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1-2년 잠깐이 아닌, 5년이 넘는, 10년 가까이 되는 기간을 통해 이젠 해외가 그들의 고향이 된 듯한 사람들을 위주로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그들의 일상,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그곳에 마침내 정착하고야 말았는지, 그러한 나의 궁금증을 모두 풀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애정한다는 사실이었다. 타국에서 한국의 음식을 먹고, 때로는 한국어를 쓰면서도 새로이 정착한 나라를 사랑하고 때론 그리워했다. 그러한 그들의 짧은 토막영상과 글을 보며 나는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은 이유는 단순하며, 갈 수 없는 이유는 확실하다. 이것은 한낱 여행병에 불과하며, 이러한 여행의 맛을 본 이들은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같은 도시로 떠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러한 여유도, 상황도 없다. 평소에 얼마나 여행을 좋아했다고 이제 와서 타국앓이라니? 극한의 실용주의자인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무의미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사병이란!


남의 떡이 커 보이니 그들의 떡에는 독이 들어 있을 것이란 파렴치한 생각 대신, 부러움의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누군가도 내가 사는 도시에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내가 사는 도시, 서울. 새벽에는 한강을 뛰고, 서울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는 정동길을 걸으며 출퇴근하는 삶. 여행을 준비하며 실수를 할까 걱정될 때, 그리고 여행지에서 떠나오기 전 한껏 생겨버린 애정을 걷잡을 수 없을 때, 마음속에 몇 번이고 되뇐 것은 바로 그 말이었다. '여기도 누군가의 직장이겠지.' 그렇다, 내게도 그저 직장이 있을 뿐인 이 도시 서울이, 누군가에겐 정착하고 싶은 도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남의 도시를 탐내며 갈구하는 것은 그만하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도시로 꿈꾸고 있을 나의 정착지, 서울을 있는 힘껏 사랑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러한 마음가짐의 시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