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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Oct 18. 2023

서울 살이를 낭만적으로 읊어보자

내가 사는 도시 사랑하기! 그런데, 어떻게?


뉴욕이 좋아! 런던이 좋아! 2주도 채우지 못한 나의 장거리 여행은 항상 그 도시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났다. 여유로워 보이고, 한적해 보이는 그 도시. 비록 지하철도 더럽고, 무단횡단을 서슴없이 하며, 걸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삿일에, 반려동물 산책 예절 또한 딱히 없어 보이는 듯한 그 도시들을 나는 짧은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으로 사랑에 빠져 버렸다. '금사빠' 란 말은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위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남의 도시를 사랑하는 일 대신 내가 눌러앉은 도시를 사랑해 보자. 작심하는 글을 쓴 뒤, 난 계속해서 방향성을 고민했다. 서울을 홍보하는 글이 되면 어쩌지? 서울을 사랑해야 하니 내가 평소에 가지 않는 강남과 이태원 같은 곳도 샅샅이 훑어서 읊어 봐야 하나? 그럼 그것은 에세이가 아닌 관광 책자가 아닌가? 그것은 전혀 내가 사랑하고자 하는 바에 맞지 않으니, 과감히 제한하기로 했다. 나는 서울 홍보대사가 아니니까.


다만, 내가 타국의 도시에 매력을 느낀 것은 그들의 무색무취한 일상 속 툭 떨어뜨려놓은 듯한 경치였음은 확실하다. 이 도시에서 도망가고 싶어!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 그것은 내가 사는 서울이 딱히 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초점이 맞지 않듯, 서울의 매력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렇기에, 내가 뉴욕의 직장인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듯, 런던을 거니는 직장인들이 낭만적이라고 느끼듯, 나의 서울 살이를 낭만적으로 서술해 보면 어떨까 한다. 마치, 브이로그의 대본을 쓰듯이.




한강에서 아침운동을 하며, 정동길로 출근하는 삶


새벽 4시 35분에 맞춰둔 알람소리에 일어난다. 차고지에서 처음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준비해 놓은 운동복을 꺼내 입고, 버스를 기다린다. 흉흉한 뉴스가 많음에도 서울이 치안이 좋은 도시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에, 나는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한강으로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가득 차 있다.

잘 정제되어 있는 한강부지를 달려본다. 근처에 공원이 없어 30분이나 대중교통을 타고 한강에 와야 하는 수고는 있지만, 막상 한강 앞에 발을 디디면 그러한 수고는 눈 녹듯 잊어버린다. 오히려 자가용 없이 버스 한 방에 한강으로 올 수 있는 것이 뿌듯할 정도다.

지하철의 첫 가 다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며 달린다.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았지만 두려울 것은 없다. 청소 트럭, 순찰 차량, 그리고 나와 같은 운동인들이 모여 새벽의 한강은 생각보다 복작복작하다.


한 시간여의 운동 후,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귀가한다. 집으로 가는 길의 정면에는 남산타워가 보인다. 그 뒤로 해가 뜨는 것이 보여 잠시 인증숏도 찍어본다.


나의 출근은 대중교통을 통해서가 아닌 도보로 진행된다. 직주근접이 중요한 우리 가족의 모토에 맞춰 걸어서 30분에 회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걸어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나라의 인도는 생각보다 아주 넓다. 아무리 내가 갈지자로 걸을지언정 건너편의 사람과 부딪힐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이 알아서 나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인도가 넓기 때문이다.

20여분을 걸으면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길이 나온다. 나의 직장은 정동길에 있다. 날씨 좋을 때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아름다운 길. 한 길로 쭉 걸어가다 보면 서울시립미술관과 시청, 서울도서관까지 이어져 있다. 미처 생각해 보진 못했지만 나의 직장은 관광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점심은 종종 혼자 먹는다. 밖에서 동료들과 먹을 때도 있지만 근처 가게에서 테이크아웃을 해 사내 회의실에서 먹는 것이 좀 더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자주 가는 브런치집 앞에는 평일 점심시간마다 공연을 연주하는데, 지나가던 관광객도, 근처의 직장인들도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회사의 고층에서는, 집에서 보이던 남산타워의 반대 방향이 보인다. 집에서보다 가깝게 보이는 그 모습에 가끔씩 멍해진다. 그러다 아차,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에 돌아가기 일쑤지만.


시간이 지나 마침내 퇴근 시간이 오면, 서둘러 가방을 둘러메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광화문에서부터 이미 직장인들이 꽉꽉 들어찬 만원 버스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나면,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조금이라도 늦게 퇴근하면 버스를 몇 대나 보내야 하기에, 이 시간만큼은 지체하지 않고 달린다.


그렇게 서울 직장인의 꼬리표를 단 나의 하루가 끝난다.




한껏 주관적인 감정을 가득 담아 나의 하루를 나열해 보았다. 나에겐 그저 일상이지만, 누군가가 본다면 그래도 재미있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도시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하루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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