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Nov 24. 2022

아기 면역엔 추운 공기가, 더운 공기가 좋대

"덴마크에서는 음식점 밖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야외에서 아기들이 자게 한대. 밖에서 오히려 잠이 더 잘 온다고." 얼마 전에 덴마크로 이사 간 친구가 잘 지내느냔 물음에 대한 남편의 답이다. 질문의 대답이라기엔 다소 친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라 솔깃해진다. 인터넷에 바로 검색해 보니 뉴욕에서 음식점 밖 길거리에 아기가 담긴 유모차를 세워놓고 식사를 하던 덴마크 여성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뉴욕에는 워낙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길거리에 태연히 세워져 있는 유모차를 보면 나 같아도 기겁하고 신고할 것 같긴 하다. 그 기사 다음에는 덴마크 부모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페이지가 있다. 덴마크에서는 아무리 추운 한겨울에도 아기에게 따듯한 옷을 입혀서 야외에서 낮잠을 자게 한다고 한다. 덴마크에서는 바깥공기를 마시면 잠도 더 잘 오고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믿는단다. 아주 흥미롭다. 털이불에 감싸인 채로 야외에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좀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뉴욕은 요즘 매년 그렇듯 갑자기 여름 날씨에서 겨울 날씨로 역변했다. 2달 전에 방문한 엄마가 유모차용 이불을 사놓으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화할 때마다 닦달하지만 뉴욕 엄마들이 가장 즐겨 쓴다는 7am Enfant 212 Evolution 이불의 무려 200불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중고로 싼 가격에 사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두 달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사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큰 지출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좋은 가격을 찾겠답시고 미적거리다 급하게 필요하게 되어 버린다. 결국은 남편이 당장 필요하다고 성화를 부리며 새것으로 주문했다.


특히 빨리 유모차용 이불이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시어머니가 와 계시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도착한 날부터 우리에게, 아니 아기에게 부족한 점들을 짚어내셨다. 유모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이용할 마땅한 이불이 없고, 썰렁한 집안에서 아기가 입고 있을 조끼가 없고, 매끼 따뜻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는 간편한 기계가 없고 기타 등등 주로 아기를 따뜻하게 할 것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다. 그리고 아기가 집에 있을 때 남편과 내가 아기에게 양말을 신기지 않는 것에 분노하셨다. 시어머니가 주문하신 아기용품 배달이 끊이지 않는다.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항상 아기와 접촉하고 있거나 고개가 아기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아기의 머리의 반경 1미터 이내에 항상 시어머니의 머리가 있다. 시어머니는 모발이 풍성한 커트머리인데 미국의 커트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커트를 하지 않아서 챙이 늘어진 버섯 모양의 짧은 단발 모양이 되었다. 흰머리도 4센티 정도 자라나 있다. 시어머니의 일과는 장보기, 식사 준비하기, 아기보기다. 아이가 모유를 먹을 때는 남편과 내 식사를 주로 준비하셨는데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고는 무엇보다 아기 이유식을 먼저 준비하신다. 매일 세 번 이상 새로운 식사를 준비하시면서 정작 본인은 항상 이전 식사에서 남은 음식을 드신다. 새로운 걸 드시라고 하면 남은 음식이 맛있어서 먹는다고 하시고, 나가서 머리를 하시라고 하면 돌아갈 예정일이 잡히지 않은 중국에 돌아가서 하신다고 하고, 아기가 감기에 걸려 있으니 아기를 안아주지 마시라고 하면 "나는 감기 안 걸려. 중국에서 가져온 약이 있어" 하신다. 참 고집스럽게 자신을 돌보기를 거부하신다.


오늘도 코가 흐르는 아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대고 외식하자는 남편의 요청을 "아기 추워서 안돼" 하며 아기에게 옮은 감기 때문에 갈라지는 목소리로 거절하신다. 아기에게 며칠 전 사온 조끼를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아기의 감기를 위해 배를 끓이신다. 시어머니의 거의 모든 시간이 아기를 따뜻하게 하는데 들어가는 것 같아서 내가 불만스럽게 한 마디 한다. "어머니, 덴마크에서는 추운 공기에 노출되면 면역에 좋다고 일부러 매일 밖에서 낮잠을 재운 대요, " 하니 아무 말 없이 무시하신다. 그래, 생각해 보면 추운 공기가 좋으면 중국식 따뜻한 육아를 당한 아기들은 다 잘 아프는 성인으로 자라겠다. 중국 사람들이 특히 잘 아프다는 말은 들어본 젓 없다. 아기 면역 좋은 건 추운 공기, 더운 공기보다는 그냥 사랑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뒤늦게 쓰는 디테일한 출산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