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과 남성권
나는 요즘 남성권에 관심이 많다. 사실 인생의 대부분을 여성권에 관심을 갖고 살아온 나지만, 요즘은 남성권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여성권은 많이 발전해 왔는데 반면 현대 남성들이 설 곳이 없어지는 걸 느낀다.
조던 피터슨이 설명한다. 사냥을 하고 싸움을 해서 힘이 센 남성들이 중요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남성들이 여성의 우위에 서지 못한다. 아직도 여성과 남성의 임금이 미국에서도 10:7 정도로 차이나지만 이 차이는 성별 때문이 아니라 여상의 출산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하고 나서 일보다 가정에 더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진다. 요즘 남녀 학생들은 동등하게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남자아이들보다 더 성숙한 여자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고 대학 진학률도 높다. 남성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격성과 경쟁심은 아주 나쁜 특성으로 여겨진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도 남성을 여성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넘겨짚는데 한몫한다. 남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로 살아가는 데는 그래서 큰 제약이 있다. 이렇게 본능이 억눌린 체로 성장하고, 그러면서도 '특권층'으로 인식되어서 뭔가를 잘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남성을 찾는 여성에게 구애해야 하는 큰 짐을 지고 있다.
여성이 자신과 동등하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남성을 찾는 데는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임신해서도 출산 직전까지 사냥을 다니고 출산하자마자 아기들을 데리고 사냥을 가르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 여성은 임신 중 행동적으로 아주 큰 제약이 있다. 사냥은커녕 걷기도 힘들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 아기는 걷고 돌아다니는 존재가 되기까지 무려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는 부모가 붙어서 전적으로 케어해야 한다. 이렇게 임신과 출산 후 아기 케어까지 수년동안 행동적인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이 아기를 돌볼 때 보탬이 되는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남성을 찾는다. 여성들은 자신과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남성이 아니고서는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이런 기준은 현대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능력'이란 남성에게 유리한 능력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능력'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 사이에서 자신과 결혼해 줄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현대의 많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받을 특권을 얻지 못하고 살아간다.
나는 얼마 전에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이후에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달라졌다. 원래 남녀에 큰 차이가 없다고 믿었던 나였지만, 아기를 낳고 나서 확연한 생물적인 차이를 느꼈다. 나는 원래 욕심이 많고 커리어와 재테크도 공격적으로 하는 '남성성'이 짙은 사회인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는 6개월 동안 아이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호르몬의 명령이었다. 아이를 안으면 사랑의 감정이 물리적인 감각으로 발현되어서 몸 전체에 따뜻한 찌르르함이 퍼졌다. 아이의 냄새를 맡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 일도, 남편도, 전부 다 귀찮았고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전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한 번에 3시간 이상 자지 못한 상태로 6개월을 버텨서 몸이 상하고 피곤에 절어 있음에도 아이에게서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바로 잠이 깨서 달려갈 만큼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달라지고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남편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이전에는 나의 파트너로, 한 인간으로서 남편을 존중했었는데 아이를 낳고는 남편을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가장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케어하는데 경제적, 물리적으로 도움이 되라고 남편 바가지를 긁었다. 남편이 더 돈을 많이 벌어와서 아이를 편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했고, 모든 걸 철저하게 계획해서 내가 아이 키우는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결사가 되기를 바랐다.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이 많이 사라지고 그에 대한 요구는 늘어났다. 남편은 내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관계가 안 좋아지고 부부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갓난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가 부부상담을 할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남편이 내게 원하는 건 뭘까, 내가 지금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남자들이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봤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것, 뭐 이런 것들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동의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었는데 그건 '나와 함께 있는 걸 상대가 진심으로 즐긴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저 내가 자신과 함께인걸 즐긴다고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쉬운 것을 해 주지 못했다. 그걸 깨닫고 앞으로 남편과 함께 살면서 그거 하나만은 꼭 해줘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조던 피터슨은 엄마가 된 여자는 아이를 지켜야 하고, 남자는 아이를 지키는 여자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남자는 늘 의존적이지 않고 강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혼 전이라면 나는 아이는 엄마와 아빠 둘이 같이 지키는 것이고 결혼한 부부는 남녀 구분 없이 서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출산하고 나서 달라진 내 모습을 보았기에 조던 피터슨과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가정에서 사랑받기 위해 나약할 수 없는 남성이라는 존재에 측은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