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이다. 아이가 6개월 때부터 8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유아원에 보내고 회사로 출퇴근하며 1년을 보냈다. 출근 전, 퇴근 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 + 2시간 = 4시간 남짓이었고 24시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솔직히 일 하는 시간 동안 행복했고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일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15개월 정기검진 때 병원에서 아이가 발달이 느린 편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아직 걷지도 못했고 말도 하지 않았다. 소아과 의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15개월 때 걸을 수 있고 3 단어에서 5 단어 정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18개월까지 발달이 더디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유했다. 내 아이가 걷는 게 느린 건 알고 있었지만 지적으로는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리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대책이 필요했지만 남편과 나는 겨우 코만 물 밖으로 겨우 내놓고 숨 쉬듯 시간적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고 더 이상의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베이비시터를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다. 유아원도 다니면서 평일 3시간 남짓, 주말 하루 종일 베이비시터의 도움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아이는 1대 1 상호작용에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기기만 하던 아이가 일어나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딜 가든 베이비시터의 손을 잡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잘 걷지 못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넘어질까 신경 쓰며 끊임없이 걸어 다니기란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 일인데 베이비시터가 에너지 넘치고 훌륭해서 정말 잘해주었다. 아이는 곧 몇 걸음 뗄 수도 있게 되었다. 한 살에서 두 살 사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 그런지 아이의 발달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게 명백했다. 한 달에 유아원 비용 2500달러에 추가로 베이비시터 비용 4000달러로 1 달에 육아보조비용으로만 6500달러가 지출되었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출이란 생각이 들었다.
둘째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준비기간을 거쳐 타주로 이사하고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이사하면서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시댁이 근처라 시어머니도 아이를 많이 봐주신다. 15개월 정기검진 후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아이는 혼자 걸어 다니고, 말귀를 잘 알아듣고 할 수 있는 단어도 정말 많아졌다. 남편과 나는 앞으로도 아이를 유아원에 기존의 반만 보내고, 반은 베이비시터나 주양육자와 1대 1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육아보다 일에 훨씬 더 자신 있다. 워킹맘으로 사는 게 힘들긴 해도 내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호작용이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의 차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맞벌이 부부로의 생활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다. 딜레마다. 일을 하면 성과가 나오는 만큼 즉각적으로 보상받고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라는 수치로 발전을 확인하고 내 인풋에 대한 아웃풋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육아는 아웃풋이 즉각적이지 않으며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스케일이란 개념이 육아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똑똑한 사람은 일적으로 평범한 사람의 100배, 1000배의 아웃풋을 낼 수 있지만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서 1시간 만에 다른 사람이 10시간 쏟을 만큼의 육아를 할 수는 없다. 모든 양육자는 공평하게 아이에게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들이고 체력적, 감정적으로 자신을 갈아 넣어서 네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육아의 결과물은 하나의 인격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일과도 ‘기회비용’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며 사회생활, 여가생활을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었고 나의 자아와 깊게 연관 지었던 독서와 투자공부도 중단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붙잡고 있던 게 일인데 일 또한 일단 재택 전환으로 일보 손해 보면서 육아할 시간을 더 확보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커리어와 육아의 줄다리기에서 커리어를 더 손해 보면 손해 봤지 육아를 줄이고 커리어를 확보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건 육아보다 일에 특화된 내게 아주 힘든 내면의 여정이 될 것 같다.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경력 단절이라는 힘든 일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내려놓더라도 아이의 곁에서 아이의 사랑을 받고 아이가 크는걸 지켜볼 수 있는 게 특권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랑을 해 보는 게 부모로서 받는 보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