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폭등과 폭락을 겪은 가족의 2년
불과 1년 하고 몇 개월 전, 평소와 달리 남편이 혼자 있는 안방 문이 잠겨 있었을 때, 안방 문을 열면 남편이 스스로 삶을 마감해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만큼 우리는 힘들었었다. Tech 주식이 폭락하면서 남편이 운용하는 펀드도 폭락했고, 회사 사정은 안 좋은데 청구서는 쌓여가서 5억 원이 넘는 대금을 치러야 했고, 개인 자산을 팔기에는 개인 자산도 주식과 함께 하락한 상태였다.
엄청난 하락장이 휘몰아치는 중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으러 간 병원에서도 남편은 어두운 얼굴로 휴대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남편의 사업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명줄이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출산 휴가 동안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 해고당했다. 아이를 낳는 데만 병원비로 2천만 원이 지출되었고 미국이라는 국가 특성상 회사 건강보험이 없어지자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의료보험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이 추가로 지출되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남편은 완전히 마비상태였다. 젊음을 바친 공든 탑이 무너지고 예측할 수 없는 사업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이제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무게 사이에서 일만을 위한 선택을 하기도 힘들고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기에도 힘든 상황이었다. 사업을 포기하자니 사업을 포기하면 아예 솟아날 구멍이 없어진다고 느꼈을 것이고, 사업을 계속하자니 예측불가능한 상태를 계속 이끌어 가는 것이 맞느냐는 확신이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 요청, 투자 요청 등으로 몸이 10개라도 모자랐던 남편이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인터넷에는 남편이 예전에 했던 인터뷰의 대목 대목을 나열하며 조롱하는 계정들이 생겨났다.
내 상태도 좋지 않았다. 나는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며 회복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피와 모유가 흐르는 상태로 닥치는 대로 면접을 봤다. 부업도 하려고 알아봤지만 내가 당장 나가서 몇십, 몇 백만 원을 벌어온다고 해도 몇 억의 빚을 값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결혼 전에 투자한 부동산을 팔고 은퇴연금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남편과 나 모두 20대 를 바쳐서 쌓아온 자산을 전부 쏟아 부어 모든 대금을 해결할 수 있었다.
대금이 해결되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남편의 사업이 잘 되고 남편이 유명세를 타고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아이들을 낳고 살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넓은 집을 구해서 살고 있었는데 월세가 아주 비쌌다. 남편의 동료들 중 펀드를 닫는 사람들이 여럿 생겨났고, 남편의 사업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고, 남편의 수입도 얼마나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계속 큰 집에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보증금을 포기하고 집을 나왔고, 인터넷을 통해 최대한 빨리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가구들을 헐값에 처분했다. 그렇게 급히 이사를 나왔는데 내가 취직됐다. 우리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가구도 거의 없이 작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고 남편과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남는다'는 심정으로 넘겼다.
힘들었을 때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일단은 버티자. 지금은 정말 힘들지만, 나중에는 언제 우리가 이렇게 힘들었는지 까마득할 만큼 우리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오랫동안 이때의 상황과 심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서 글로 쓸 만큼 생각도 정리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앉아서 한 시간 이상 긴 호흡의 글을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1년 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비로소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예언(?) 했던 대로 정말 우리는 다시 행복해졌다. 2년여 전 보다 자산이 많이 줄었고 빵빵했던 자신감에 바람이 빠져 강제로 겸손해졌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상황이 잘 정리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남편의 투자자들 중 투자금을 회수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업을 잘 이어가고 있고,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나 잘 자리 잡고 다니는 중이며 나를 정리해고한 전의 회사보다 훨씬 좋은 복지와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경각심을 가지고 저축과 지출을 잘 분배해서 가계를 꾸리고, 가족 위주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주로 이사해서 전처럼 크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화려한 집은 아니지만 햇빛이 들지 않던 작은 아파트보다 훨씬 집다운 구색을 갖추었다. (1년 반 동안 세번을 이사했다.) 얼마나 올라갈지 몰라 붕 떠 있던 2년 여 전이나 어디까지 추락할지 몰라 떨었던 1년 여 전과는 달리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기분이다. 아이도 점점 더 큰 행복을 주며 잘 자라고 있고 무엇보다 남편과 내가 서로의 신뢰하고 의지하는 파트너로 더 돈독해졌다. 막 자만심에 부풀어 가고 있던 우리가 그 상태로 더 굳어지기 전에 현실을 일깨워 준 참 잘 된 일이었다고, 우리를 더 나은 가족, 투자자,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겪기를 잘한 일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성공할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재산을 불리는 것 보다 삶의 여러 경험을 최대화 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