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여행
SNS를 통해 알게 된 K. 그와 나는 돌로미티라는 매개체로 소통을 하다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22년 9월 돌로미티를 다녀온 나는, 23년 10월 돌로미티 여행 중인 그와 약 한 달 반 동안 DM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연락이 안 되면 걱정이 되기도 했고 그러다 서로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었다. 같은 취미였기에 돌로미티 다녀온 후 함께 백패킹을 가자고 제안을 했고 만나기 며칠 전, 일이 생겨 못 온다는 메시지를 받아 아쉬움은 있었지만 K를 만난다는 설렘보다는 백패킹에 더 무게가 실렸기에 "다음에 만나면 되죠". 하며 쿨하게 넘겼다.
백패킹 당일. 이런 소식은 카톡보다는 전화로 전해주고 싶었다며 K에게 연락이 왔고, 일이 일찍 끝나 백패킹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카풀해도 되냐는 말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백패킹 장소에 도착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익숙한 듯 편한 느낌이었고 호감 정도는 아니었기에 아! 가끔 이렇게 백패킹 다니며 좋은 동생으로 지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는 나보다 10살 어린 연하이기도 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 나이를 밝히지 못했고 내 나이는 그의 상상에 맡겨버렸다. 매일 연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고 약 한 달간의 썸을 타다 관계정립이 필요해 "어떤 관계로 남고 싶냐?"라고 물었고 같은 마음을 확인한 우린 ‘12월 14일’ 연인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함께 해볼까 이야기하는 중 우리가 돌로미티로 인연이 됐으니 그곳을 가자며 연인이 되자마자 비행기 티켓을 덜컥 예약하고 말았다.
우리의 시작은 너무 다른 삶, 그리고 결이 달랐기에 삐거덕 거리기만 했다. 오해는 상대방의 몫으로 남겨뒀고 차곡차곡 쌓이게 서로가 방치해 뒀던 거다.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난 나의 성격과 다르게 참는 쪽을 택했고 그런 그는 참는 나에게 익숙해져 가며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이 또한 여행 가기 전, 이별을 막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고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 여행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첨부터 신뢰가 무너져 시작한 관계였기에 우리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만 했다. 차라리 유리처럼 바싹 깨지면 이별이라는 단어도 쉬웠을 테다. 갈라진 금은 어느새 쫘악 갈라져 버렸고 난 쌓이고 쌓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급발진을 하고 말았다. 맘속에 묻어둔 그 단어, 이별이라는 말을 꺼내버린 것이다.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했을 그였고 자존심이 센 친구라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었다. 이별 후 4일이 지나 짐정리라는 이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고 그의 의사와 관계없는 이별 통보였기에 마지막으로 생각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잡을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별도 내가 통보하고 기회라는 것도 내가 부여하고 참 이기적이었던 나. 참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연인 관계는 끝이 났지만 다가올 여행은 함께하기로 했고, 우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행 메이트가 되기로 했는지.... 미련이 남았었을까? 단순히 여행 메이트가 필요했던 건가? 헤어졌지만 여행 계획으로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고 난 그 친구를 한 방 먹이고 싶었던 건지 부분 동행을 제안했다. 순수히 알겠다고 한 그였는데 약 3시간 후 여행을 취소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여행 일주일 남기고 취소 통보라니. "미친 거 아니야?" 진심 화났고 미련 1도 안 남게 해 줘 고맙다면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그가 괘씸하고 또 괘씸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맘속에 있는 말들을 퍼붓고 우린 마치 초등학생처럼 서로에게 저주를 내리며 다시는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만 악담을 퍼부었으면 상처가 더 깊었을 텐데 그렇게 말해준 그가 오히려 고마웠다. 우리의 여행지였던 이태리는 순식간에 나의 여행지 포르투갈로 바뀌었고 마치 포르투갈로 갈 운명이었던 것처럼 마일리지 티켓이며 패널티 등등 순조롭게 변경 진행이 되었다. (물론 숙소 한 곳은 40만 원의 패널티를 지불했지만 ; 하루 전 날 취소했으면 무료였는데 하루 일찍 말해주지. 하 )
여행지 변경을 한 후, 이제야 이별이 실감 났고 차라리 가서 또 싸울 바엔 서로를 위한 일이라 합리화하며 짧고 강렬했던 그 사람과의 이별을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난 3.1일 나 홀로 리스보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