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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Jan 03. 2022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는데

이러다 단명할까 두려운 며칠입니다.

  2021 연말은  2022년 계획을 생각하며 보냈다. 끼적임 수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었고, 한국어와 한국사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일주일에 가까스로 두 번 하던 운동도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로 인해 인생 최고 몸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1일 1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겠노라 선언을 해버릴까?

아니면 마감이 있는 곳에 연재를 해봐?

일단 지금 등록해야 할인이 되는 운동부터 등록하자.

이번 한국사 시험은 언제였더라?    

 

  한 해 일을 쉬게 되면서 갑자기 여유가 찾아왔고 나를 위한 이런저런 계획들로 설레기까지 한 연말이었다. 올해도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없는 차분한 겨울이었지만 새해를 생각하자니 기분 좋은 웃음이 자꾸 배어났다. 하지만 영화에는 꼭 이런 장면이 등장하지. 흥겨운 파티장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이성이 슬로비디오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다. 영화는 결정적인 장면을 향해 순항 중이고 음악도 분위기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꼭 이런 순간 ‘엄마!’라고 부르며 뛰어오는 아이의 모습과, 식탁에서 턱을 괴고 상상에 빠져 있다가 아이의 부름에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모습.     


  나의 1월 1일은 이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시작했다. 육아 한 두 해 차도 아닌, 무려 십칠 년 차 베테랑 엄마인 내가 왜 새해의 시작을 ‘나’로 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것일까? 새해 첫날은 나의 계획이 야심 차게 시작될 날이었으나 삼남매의 방학도 함께 시작되는 날이었다.     


  기숙사에서 지내던 고등학생 큰딸은 두 달간 필요한 이삿짐 수준의 짐과 함께 집으로 복귀했다. 여름방학 때 기숙사에서 지내보려다 여러 낭패를 겪은 후 선택한 결정이었다.      

             ‘한 명만 없어도 삶의 질이 달라지던데. 끙…’     


  드디어 중2병에서 탈출한 둘째는 예비 중3의 본분에 맞게 방학을 보내겠노라 선언하며 방학특강을 이것저것 끊어놨다. 저걸 다 하겠나 걱정이 되는 수준인데 엄마가 픽업만 잘해주면 문제없단다. 데리러 오실 때 간식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내… 내가?’     


  나의 마지막 숙제인 초등 막둥이는 커갈수록 자기 아빠와 판박이가 되어간다. 측근들의 말을 빌리자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모질(毛質)까지 닮았단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닮아가니 남편에게 분노를 느끼는 지점이 아들에게서도 느껴지곤 한다. 여간해서는 막둥이에게는 화가 나지 않는 나였지만 그런 지점에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화의 조건반사가 일어난다.     

                    ‘그런 건 좀 안 닮아도 되거든!!!’     


  아침을 먹고 치우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하는 애들에게 살짝 짜증이 인다. 이제 막 앞치마를 벗고 책 한 장 읽었단 말이다. 물에 불은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책장을 막 넘겼는데 뭐 먹을 거 없냐며 방문을 열어 대는 아이들. 그래, 이게 방학이지. 먹고 치우길 반복하며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를 자조적으로 읊조리게 되는 때 말이다.    

 




  남편이 새해도 되었는데 처가에 가잖다. 작년에 우리 가까이 이사 온 시댁으로 인해 시부모님은 자주 뵙고 있는지라 자기 딴에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결혼 이십 년 차를 향해가는 시점에서는 친정행도 애틋하지가 않다. 연로한 친정 엄마에게 상을 차리게 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어젠가부터 가서 먹을 음식은 내가 준비한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남편도 신경 쓰이고, 서로 음악적 취향이 다른 삼남매의 선곡을 오가는 내내 듣는 것도 고역이다. 가는 길에 시부모님께 전화를 한다. 새해에 못 찾아봬서 죄송하다고 다녀와서 곧 찾아뵙겠다는 상투적 인사를 도레미파 ‘솔’ 톤으로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나는 딸이자 며느리자 아내이기도 하지’     


  내가 나로서만 존재하기 힘든 환경에서 지키기 힘든 새해 계획을 지키고 싶었다. 아이들을 이 정도 키웠으면 그들도 이제는 엄마에게 배려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외치고 싶었다. 친정에서 돌아온 밤에 기어이 노트북을 펴고 오늘의 글을 남기겠노라 고집을 부렸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큰딸과 용돈에 관한 논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음에도.     


‘어휴, 못된 가시내! 한 마디를 안 져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흥청망청 쓰라고 그 큰돈 주셨을까? 저축해 준다는데 끝까지 싫다고 따지고 들어? 집 떠나 생활하며 돈 떨어질까 걱정돼서 카드까지 만들어줬는데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차 안에서의 KO패가 이렇게 분한데 글이 써질 리 만무하다. 엄마는 자기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는 아집이 있단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가족들까지도 엄마 계획에 다 맞춰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란다. 요 며칠 밥 달라는 말에도 잔뜩 예민해진 엄마를 알고 있냐며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엄마는 자기애도 많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진짜 멋있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자아가 너무 강하면 빨리 늙는대요!   

  나 제대로 완패한 거 맞지? 거창한 나의 계획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던 나를 인정한다. 계획은 첫날부터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봤음을 고백한다. 가뜩이나 안 좋은 기억력이 마흔이 넘어가며 감퇴 일로로 질주하고 있나 보다. 새해 시작을 오로지 나만 생각했으니.


  아니, 나만 생각하고 싶었는 것 같다. 그랬으니 매일 방특으로 시작하는 둘째의 스케줄이 빡빡해 보였음에도 못 이기는 척 지갑을 열었을 거고, 굳이 원하지 않는 막둥이도 운동 클럽에 밀어 넣었겠지. 내 책상을 말끔히 정리했던 행위도, 점심 한 끼쯤은 시켜먹을 거라는 다짐도 오롯이 내게 쓰는 시간 확보를 위한 것이었구나 싶다. 의식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요히 나를 바라보고 싶다. 소진된 에너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강하디 강한 자아 레이더를 쏘아대며 누군가를 공격할 것 같다. 나도 같이 팍팍 늙어가면서 말이다. 오늘은 ‘자아실현’이라는 말에 강퍅함이 느껴지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나의 계획 실천이 아집과 집착으로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화장실도 따라 들어오겠다고 울던 아이들이 언제 이만큼 컸는지 시간의 흐름이 놀랍기만 하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날 찾는 이 하나 없다고 징징거릴 날이 올 테지. 새해 계획표에 실천하지 못한 게 반이라고 자책하지는 말아야겠다. 아직은 말랑한 자아를 가지고 좀 천천히 늙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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