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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ug 21. 2023

우주로 돌아간 슈가맨. Sixto Rodriguez

해외 뮤직 트렌드

Special | Sixto Rodriguez (1942.07.10 ~ 2023.08.08)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홍대의 한 LP바에서는 Rodriguez라는 가수의 'Sugar Man'과 'I Wonder'라는 노래가 사람들의 요청으로 계속되는 선곡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 곡의 후렴을 소리 높여 따라 불렀습니다. 


Rodriguez 'Sugar Man'

Rodriguez 'I Wonder'


같은 노래들에 얼마나 많은 신청이 들어왔는지, 사람들이 그의 곡을 선곡할 때마다 DJ가 난색을 표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이후, LP바에 출입한 모두가 Queen의 'Bohemian Rhapsody'를 신청하던 현상을 기억해보시면 그림이 얼추 비슷할 겁니다. 


바로 그 Rodriguez,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음악가 Sixto Rodriguez가 8월 8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부고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가족들이 전했으며,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슈가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동명의 노래의 제목은 물론, 그를 다룬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임팩트 때문입니다. 


영화의 제작진은 미국에서 잊힌 가수로 생사 여부도 모르던 Sixto Rodriguez가, 남아공에서는 전설적인 음악가의 입지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과정을 긴밀하게 추적합니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그가 여전히 미국에 살아있으며,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슈가맨'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잊힌 가수'의 보통명사가 됐습니다. 여담이지만, 양준일과 더크로스 등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가수들이 재조명 받은 JTBC의 음악 예능,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역시 Rodriguez로부터 콘셉트를 차용한 것입니다. 


미국 밖 남아공이라는 국가에서 Rodriguez의 음악이 어떻게 그렇게 큰 주목을 받았는지는 우리가 곱씹어볼 만한 지점입니다. 영미권에서보다 로컬에서 더 유명한 팝 가수들이 종종 있지만, 본토와 로컬에서의 인기가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1970년 나온 그의 데뷔 앨범 [Cold Fact]는 발매 당시 미국에서 단 여섯 장 밖에 팔리지 않은 '망한 앨범'이었습니다. 하지만 앨범을 구입한 여섯 명 중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을 때 이 앨범을 들고 갔고, [Cold Fact]가 남아공 내에서 전파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지요. 


Rodriguez 'Crucify Your Mind'

Rodriguez 'Forget It'


이런 인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 당시 남아공은 독재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철저한 검열과 탄압 정책으로 인해 민간에는 TV조차 보급되지 않았고, 국제적으로도 고립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들려온 Rodriguez의 메시지가 남아공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노래 가사는 (당대 여느 포크 기반 싱어들이 그렇듯 난해한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정치적인 메시지 또한 많습니다. 그는 남아공에서 Elvis Presley와 The Beatles보다 유명한 가수가 됐습니다. 


Adultery plays the kitchen, bigot cops non-fiction

간통은 부엌에서 일어나고, 고집불통 경찰들은 실제해.


The little man gets shafted, sons and monies drafted

작은 남자는 속고, 자식들과 돈은 징집돼.


Living by a time piece, new war in the Far East

시간에 쫓겨 살아가기. 극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있다네.


Can you pass the Rorschach test?

너는 로르샤흐 테스트(*인격 검사)를 통과할 수 있겠어?


('This Is Not a Song, It's an Outburst: Or, the Establishment Blues' 중)


Rodriguez 'This Is Not a Song, It's an Outburst: Or, the Establishment Blues'


놀라운 사실은 미국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가, 자신이 남아공에서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아공에서 투어를 돌며 화제를 모은 이후, 음악인 생활에 안착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 디트로이트로 돌아가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계속했다는 겁니다.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그는 슈퍼스타가 아닌 일용직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보면 기인, 내지는 신선처럼 보이는 Rodriguez,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아직 진짜 '슈가맨'의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서칭 포 슈가맨'을 보고 그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10년이 지난 다큐멘터리이지만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서칭 포 슈가맨'은 두 장의 앨범과 함께 Rodriguez가 남기고 간, 빛나는 유산입니다. 지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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