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뭐를 읽고 있는지 정리를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중구난방으로 독서 중인 상황이라, 스스로 적당한 교통정리도 할 겸. 그래, 내가 뭘 읽었고 뭘 읽고 있는지, 왜 읽었고 왜 읽고 있는지 자문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어느 출판부의 어떤 번역자인지는 사진에 나와있으니 자세히 표기하진 않으련다. 각 잡고 리뷰 쓸 힘은 없고, 간단히 소감과 향후 독서 방향에 대해서만 기록해 본다. 2024년 들어서 완독했거나 읽는 중인 책들이다.
우선 읽은 책부터,
A. 읽은 책.
1. 임마누엘 칸트,『형이상학 서설』
"칸트~ 헤겔의 주저를 읽어보자!" 말이(아니, 말만...) 쉬운 이 문장으로 시작한 세미나 하나가 있는데, (내 생각엔) 정석대로 『형이상학 서설』로 시작했다. 철학 전공한다 해놓고 부끄럽게도, 칸트와 헤겔을 겉만 핥아대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정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괴팅겐 서평」 등의 평가를 바로잡기 위한 칸트 스스로의 『비판』 입문서 겸 해설서이다.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선험적 종합판단'부터 '순수 수학/기하학', '순수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천천히 증명하고 끝내 위 물음에 답하는 구조. 참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이 책에서부터 이미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유능하고 성실한 동료들을 만난 덕에 한 달 만에 읽어냈는데, 우리 모두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세미나 시간 외에도 서로 자료를 정리하고, 서칭한 걸 공유한 덕에 가능했지 않았나 싶다.
2~ 4. 알베르 카뮈, 『이방인』 『시지프 신화』 『단두대에 대한 성찰』
실존주의 문학들을 읽는 모임도 가지고 있다. 첫 3주를 내가 진행하게 되었는데, 역시 가장 친숙하고 가장 유명한 '카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세 권을 골라보았다. '문학' 읽기 모임이라는 말에는 엇나가버린 게 『시지프 신화』와 『단두대에 대한 성찰』은 보통의 의미에서 문학은 아니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는 이번이 두 번째 읽는 것 같다. 어쩌면 『이방인』은 세 번째일지도. 뫼르소와 '부조리의 영웅'인 시지프를 연결해서 읽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잘 선택한 것 같다. 좋아하는 H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읽은 것도 좋은 판단이었다. 이전에 같이 담배 피우면서, 잠시 카뮈 이야기를 나누던 때에 "『단두대에 대한 성찰』 읽어봐, 카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그때 알겠더라"라고 말씀해 주신 게 계속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무슨 말씀이었는지 이해했다. '죽음에 저항하는 것'으로서 연대감. 스피노자적으로나 니체적으로나 '신의 죽음' 이후에 인간의 연대감을 카뮈는 '죽음, 부조리에 대한 저항'에서 찾는다. 기회가 된다면 올해 안에 『반항하는 인간』을 읽는 모임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5.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처음으로 리쾨르 책을 정독했다는 점에서 내게는 기념비적인 책이지 않을까 싶다. 두고두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정확히는 리쾨르의 저작은 아니고, 리쾨르와의 인터뷰집이다. 리쾨르의 삶과 철학적 입장, 정치적 입장 등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리쾨르가 '무엇을 읽고, 어떤 생각과 영향 하에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는지' 솔직히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 이 책을 읽고, (특히) '두 가지 주제를 두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첫째로 ① '철학적 확신'과 '종교적 비판'이라는, 흔히 '비판적 학문'인 '철학'과 '확신의 증표'인 '종교'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종교도 없으면서 계속해서 종교철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참 이게 곤란한 때가 많다), '철학적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놓인 '개신교도 리쾨르'와 어쩌면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 철학은 '확신의 문제', 즉 '믿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철학함이라는 것이 결국은 특정 이론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확신의 과정'이기도 하니. 그런 점에서 모든 철학은 일종의 종교성을 띤다고 생각한다. (리쾨르를 공부하려던 것이 이것 때문이긴 하다.)
둘째로 ② '헤겔 이후의 칸트'에 대한 문제이다. 리쾨르가 계속 자신을 두고 '후기 헤겔주의적 칸트주의자'라고 말한다. 짐작컨대 헤겔 이후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며 반신반의 중인데... 뭐 칸트도 읽고 헤겔도 읽어보면서 '언젠가!' 답을 구해볼 생각이다.
사진에서 가름끈을 보면 알겠지만... 읽고 있는, 혹은 읽기를 중단한 책이 훨씬 많다. 몇 권은 사진에 넣지도 않았다.
B. 읽는 책.
1. 이종훈,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
"네가 리쾨르 읽을 짬이냐?" 사실 이렇게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당장 2005년에 타계한, 철학사라는 거대한 여정의 끝자락에 위치한 학자를 읽는다는 게, 얼마나 많은 철학사를 얼치기로 공부하고 넘어온 건지. 그렇다고 리쾨르 이전의 철학사를 꼼꼼히 읽는다는 것도 나한테는 벅찬 일. 최대한 나를 몰아붙인 선에서 타협하긴 했다.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는 그 타협의 일환인데, 큰 도움을 받는 연구서 겸 해설서이다. 나처럼 얼치기로 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갈이면서, 또 철학사의 거장들이 얼마나 후설을 얼치기로 읽고 넘어갔는지 지적해 주는 책이다. 소위 '후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내가 읽으려는 '리쾨르'에게도 후설은 중요한 학자이다. 스스로도 '마르셀-야스퍼스-후설'이라는 '삼중 후견인'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적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고, 또 리쾨르 본인이 프랑스에 후설을 수입(?)해온 장본인 중 하나였으니. 후설의 평생을 지배한 문제의식이었던 '선험적 현상학'을 중심으로 쓰인 책이다 보니, 어디서 읽고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후설에 대한 선입견들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기회가 되는 중이다.
2. 폴 리쾨르, 『역사와 진리』
조만간 『해석의 갈등』을 읽는 모임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리쾨르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곳에서 다뤄지지 않는 텍스트, 동시에 향후 몇 년간 씨름하려는 것은 『의지의 철학』까지의 (그러니까 초기) 리쾨르 철학이다. 나는 오래 심취해 있던 '실존철학'이라는 주제를 버리지 않고 공부할 것이다. 리쾨르가 쓴, 야스퍼스와 마르셀에 대한 해설서 두 권과 『의지의 철학』 1, 2권이 해외에서 집으로 배송될 때까지 『역사와 진리』를 읽으려고 한다. 결국 혼자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것은 리쾨르의 논문집인데, 정말, 정말 재밌다.
3. 공동번역 성서
종교철학을 공부한다는 놈이 성서를 주워들은 채로 살고 있었다. 여러 조언을 토대로 <공동번역 성서>로 선정해 읽고 있다. 잠들기 전에 읽는 중. 각종 언급과 인용으로 듣는 성서와, 직접 읽는 성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의외로 속도감이 있는 게, 머리에 힘주지 않고 읽으면 전개가 이해가 안 된다. 분명 방금 노아가 나왔는데, 어느새 대홍수가 끝나가는. 그런 느낌.
4. 쿠르트 잘라문, 『카를 야스퍼스』
리쾨르가 야스퍼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 야스퍼스 학자 분들께서 분투하여 꽤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지만, 야스퍼스는 『세계 철학사』를 쓰려고 기획했을 만큼 거장이다. 가볍게 이 사람에 대해 읽어보려고 고른 것인데, 텍스트를 잘못 고른 건지, 아니면 내가 멍청한 건지.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5. 프랑수아 도스, 『폴 리쾨르- 삶의 의미들』
리쾨르의 전기이다. 리쾨르가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고 저자가 밝히는데, '정말 도움을 안 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세세한 일화까지 적혀있는 벽돌 사이즈(한, 1,000 페이지 내외인 듯하다)의 책이다. 사실 이것은 읽기를 중단했다. 내가 당분간 고민하려는 리쾨르의 철학적 시기까지 읽어둔 채이다. Y선생님이 "리쾨르의 삶에 대해서 이 이상의 책이 필요할까"라는 식으로 어느 해설서에 적어두셨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비슷한 느낌의, 『타자로서 자기 자신』과 (번역되지 않은) 리쾨르 스스로 참여한 『폴 리쾨르의 철학』도 있다. 프랑수아 도스의 작업은 제3자, 곧 타인의 관점에서 쓰인 재밌는 책이 아닌가 싶다.
6.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1』
『형이상학 서설』을 마치고 곧바로 『순수이성비판1』을 읽기 시작했는데, 머리말부터 충격받았다. 너무 어려워서... 오히려 한 단계씩 전개할 본론부가 더 쉬울 것이라는 소망으로, 내일부터 다시 읽어나갈 것이다.
7. 강돈구,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는 게 자부심인 연구서이다. 절판되기도 했고 중고가도 비싸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한다면 누구나 충분히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른 연세에 타계한 강돈구 교수의 박사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인데,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진 못했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 몇 안 되는 연구서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책은 이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읽기를 중단했다가, 리쾨르 공부를 하면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여전히 재밌게 읽는 중이다. 마침 3일에 열린 <한국해석학회> 세미나에 다녀온 후이니, 오늘은 자기 전까지 이걸 읽어볼까 한다.
읽는 책만 7권인데,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할 책들이 더 있다. 괜히 욕심부리는 것이다.
C. 읽을 책.
1.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우리 학회에서 이 책을 읽을 예정이다. 마침 잘 된 거다.
2.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이걸 읽는 스터디를 만들었다. 리쾨르의 박사학위 논문과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것인데, 리쾨르가 이 『지각의 현상학』의 중요도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작업과 퐁티의 작업이 연장선에 있으며 자신의 작업이 현상학적 작업임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 내게도 중요한 저술이다.
외에도 『반항하는 인간』이나 『존재와 무』, 『존재와 시간』도 새로 읽던 다시 읽던 해야 한다. 그래도 다 때가 되면 하겠거니 낙관하는 중이다. 일단, 읽던 거나 제대로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