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영상미와 장자의 사상을 담은 이야기
한중 합작 애니는 개인적으로 처음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쪽과 합작한 애니메이션은 종종 접하는데, 중국, 일본과 합작하는 애니메이션은 이번에 감상한 [나의 붉은 고래]가 처음이었습니다. (한국 스튜디오 미르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를 맡았던 요시다 기요시가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
그래서일까요, 내심 기대했어요. 왜냐면 중국 애니메이션은 서사가 깊거든요. 동양적 철학을 애니메이션에 많이 담으려고 하고,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중국 예술작품의 특징이라고 생가하거든요.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중국 영화 중 장이머우의 [인생]이라는 작품이 그렇습니다, 정말 명작이에요. )
무튼, 이번에도 그런 서사적인 감동을 내게 안겨주겠지!라는 부푼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보았으나... 역시 모든 일에 기대감을 너무 갖지 말라는 어른들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영상미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서사구조가 안타까웠는데요, 그럼 오늘 포스팅에서는 기대를 안고 봤으나 저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나의 붉은 고래'를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1. 동양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상미
동양적 아름다움 하면 저는 꽃과 나무, 하늘이 생각납니다.
여백의 미라고 하죠. 지나침이 없고, 대신 어느 정도의 여운을 주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동양의 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붉은 고래에서는 이런 동양의 미가 많이 보입니다, 인간세상으로 나가게 된 춘이 고래가 되어 바다를 헤엄치는 모습이라던가, 그 과정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 경광들. 인간 세상뿐만 아니라 춘이 살고 있는 세계의 풍경들도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마치, 중국에서 이야기하는 신선들의 세계가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이질적이지만, 그렇다고 이상하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빛을 잘 활용했습니다. 주인공 춘이 자신의 수명을 가지고 거래를 했을 때, 자신의 목숨이 빛의 형태로 빠져나오는 것이나, 마지막에 추의 온몸이 불타오를 때 나오는 빛 효과라던지, 중요한 순간에 빛을 활용해서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한 이 빛을 이용해 연출하는 장면들에서 적절하게 중화풍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대만의 야시장을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2. 영상이 이쁘면 뭐해, 주인공이 답답해 죽겠는데.
자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영상이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데 비해서, 여자 주인공 춘은 너무 답답하다 못해 꼴 보기가 싫습니다.
춘은 마을의 관례상, 성인식을 치르는 날 인간 세상으로 가 세상을 둘러보게 됩니다. 단 이때, 돌고래의 형태로 인간 세상에 가게 되는데요, 어느 날 자신의 물고기 친구들이 그물에 걸리는 것을 구해주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물에 걸리고 맙니다. 그물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던 춘은, 인간 남자아이의 도움으로 그물에서 빠져나오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인간 남자아이가 죽게 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춘은, 자신의 수명을 절반 받쳐 인간 남자아이를 돌고래로 부활시키고(과연 인간 남자아이가 이런 삶을 원했을까...) 자신과 영원히 함께 살기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섭리를 어긋나게 한 것으로, 춘의 수명 거래로 인해 춘이 살던 마을은 대 홍수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아예 춘의 마을이 무너질 정도까지 상황이 심각해지자, 자신의 목숨을 바쳐 위기를 해결해냅니다. 하지만 이런 여자 주인공을 짝사랑해오던 추라는 남자아이는, 춘과 돌고래가 행복할 수 있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둘을 인간 세상으로 보내고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뭔 스토리야 싶지만, 실제 이런 스토리의 영화이며 보는 내내 춘이라는 여자 아이의 이기적인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선택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홍수로 죽어나가자 비로소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는 모습이라던가, 자신을 좋아하는 추의 마음을 이용해서 곤란한 상황마다 추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게끔 자신은 한 발 뒤로 빼는 행동들이, 도대체 뭔가 싶었어요.
스토리 기획자는 이것이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스토리를 기획한 것일까요. 무엇보다, 주인공 여자 아이가 말로는 돌고래로 환생한 남자아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위기 순간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추가 문제를 해결하게끔 행동하는 것이 솔직히 보기 거북했어요. 여주인공이라면, 자신이 문제 앞에 나서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비록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싸우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3. 그래도 철학적인 부분을 다룬 건 좋았다.
조사를 따로 해보니, 나의 붉은 고래는 장자의 '붕정만리'사상을 형상화한 작품이었습니다.
붕정만리의 뜻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붕정만리(鵬程萬里:웅장하거나 원대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또는 물체를 비유하는 말)
하지만, 단단히 상상을 초월한 판타지적인 어떤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면 붕정만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장자의 소요유라는 저서에 첫 문장에,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존재했고 그 물고기가 새로 변한 것이 붕이다라고 서술된 부분이 나옵니다. 실제 나의 붉은 고래 작품에서도, 돌고래의 이름이 곤이었고, 여자 주인공 춘의 할머니가 봉황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장자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거의 맞겠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붕정만리는 익숙하던 북쪽 바다에 살던 물고기가 새로 변하면서 낯선 남쪽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고통스러운 여정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모험을 떠나는 모습을 이야기하는데요. 이는 마치 나의 붉은 고래에서, 물고기 곤을 살리기 위해 기어코 자신의 뜻을 실현했던 춘의 적극적인 모습과 유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나의 붉은 고래는 보면서 답답한 작품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장자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다시 보니,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개인의 적극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추가 이런 말을 하죠.
"하늘이 우리에게 삶을 준 건 우리 보고 기적을 만들라는 뜻이지"
주어진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을 때,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기적이 모여 우리가 바라던 모습으로 변화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