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장 오래된 카이로 빠사쥬
파리 메트로 3번과 4번이 만나는 Réaumur - Sébastopol 역에서 가까이 있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된 빠사쥬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곳은 나폴레옹과 얽힌 역사에서의 유래, 그리고 건축 디자인에서 독특한 곳으로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매우 흥미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한 그곳이 바로 카이로 빠사쥬이다.
여기는 일단 파리에서 가장 길고(370m)도 좁은(2.7m 폭) 그리고 가장 오래된 빠사쥬 중의 하나다.
리모델링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화려하게 빛나는 다른 빠사쥬와 단리 여기는 아직도 관광보다는 생업이 아직도 움직이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원조 빠사쥬 답게 호들갑스럽게 치장하지 않는 의연한 그렇지만 소박하고 처연한 모습니다. 현재 대부분 의복 관련 도매상, 잡화상들로 이루어져서 구경가기 좋은 볼거리는 아닐 수 있지만 옛 모습 (대부분 빠사쥬들이 리모델링하기 전)을 발견하기 좋은 곳이다.
카이로 빠사쥬는 원래 작은 규모의 신의 딸들 ( le couvent des Filles Dieu)이란 이름의 수녀원이었다.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고 교회의 재산, 건물들이 다 국가로 회수 될때 이곳도 1790년 국가소유가 되었다. 그 이후 길로틴과 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난 후 이 공간은 17979년 민간에게 팔리게 되며 빠사쥬로의 변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왜 수녀원에서 갑자기 카이로?
1798년이 바로 나폴레옹이 이집트와 전쟁을 하고 카이로에 입성한 해 라는 것이 핵심이다. 나폴레옹의 승전사는 프랑스 전체를 흥분시키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면서 같은 시기 개발된 이곳도 처음에는 이름이 '카이로의 시장(Passage de la Foire du Caire)'이라고 명명되었으며, 과거 수녀원 앞길 즉 La rue de Filles Die 는 알랙산드리아 거리 (rue d’Alexandrie: 이집트의 고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뿐이 아니다. 카이로 광장 (Place du Caire), 카이로 거리 (rue du Caire), 다미에트 거리 (rue de Damiette: 이집트의 지명), 아부키르 거리(rue d’Aboukir: 이집트의 도시) 등 이름이 나폴레옹의 업적을 찬양하며 개명을 하게 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 카이로 빠사쥬가 있다.
카이로 빠사쥬는 그리하여 이집트의 영광을 안고 (프랑스 입장에서 ㅠㅠ) 1798년 건축가 필립 로랑 뻬트렐(Philippe Laurent Pétrel)에 의해 기묘한 설계와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수녀원과 도시가 만나는 부분이 당시 국가의 회수와 매입 등의 과정이 복잡하게 연결되다 보니 아래와 같이 빠사쥬도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내부에서 삼각형으로 구성되는 흥미로운 형태로 구성이 되었다.
이름에 맞추어 전체를 장식하다보니 아예 빠사쥬의 컨셉도 이집트 풍으로 진행이 되었다.
대표적인게 현재 여기를 가장 유명하게 알린 카이로 광장 2번지의 입구 모양이다. 하토르 여신이 쳐다보고 있는 이 유명한 입구는 가로드 (Jules Gabriel Garraud)란 사람이 1828년 새롭게 만든 입구의 파사드는 아예 이집트 풍과 기존의 프랑스스타일의 교묘한 짬뽕으로 만들게된다.
모양을 자세히 보면 1층 지붕은 파피루스 문양을 넣었고 3층은 하토르 여신들이 쳐다보고 있으며 그 바로 위하고 꼭대기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렇지만 그 사이 4-6층은 또 신고딕 양식으로 장식이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작가 외젠 아제(Eugène Atget, 1857~ 1927년)도 1903년 이곳을 넘어가지 않고 촬영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지금과 거의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1903년까지는 인쇄업소가 대부분 이 빠사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옷 수리점, 그리고 기성복, 그리고 마네킹 등 패션관련 지원 산업이 차지하면서 현재와 같은 구성이 되었다.
빠사쥬의 삼각형이 모이는 곳의 형태와 구조는 위에 볼 수 있다.
마치 우리 평화시장이나 동대문시장을 보든 듯이 다양한 패션업을 위한 산업들이 여기에서 움직이고 있다.
카이로 빠사쥬는 관광객이 편하게 쇼핑하거나 카페에서 즐기는 곳은 아니지만 우리의 의류 시장 처럼 경제가 움직이고 활동하는 공간으로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카이로 빠사쥬는 역사와, 산업 그리고 파리 패션의 뒷모습을 바라보기에 좋은 공간이다.
아제의 사진에서의 입구와 카페는 1903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파리의 매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역시 이 입구도 그리다가 눈에 문제가 생겨서 미완성으로 아래의 스케치만 남겼지만 아쉬워서 올려본다.
화려한 빠사쥬들을 뒤로 하고 가장 오래된 원조를 방문하는 시간이었다. 소박하지만 사실 가장 길고 오래된 빠사쥬로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산업을 바라보는 맛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