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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원 Mar 04. 2024

파리 속의 파리: 빠사쥬를 나가며

10. 빠사쥬를 떠나며 또 다른 곳으로

'센 강둑에서 오자면 게네고 가(街)의 끝에 이르러 퐁네프 빠사쥬에 닿게 된다. 마자린 가에서 센 가로 통하는 이 좁고 침침한 회랑은 길이가 30야드, 폭이 2야드에  (a trente pas de long et deux de large) 불과하다. 바닥을 덮고 있는 갈라진 노란색 포석들은 언제나 심한 습기를 내뿜고 있다. 통로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유리 천장에는 검은 때가 끼어 있다.

퐁네프 빠사쥬는 산책을 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몇 분 빨리 가느라고 그 길을 지날 뿐이다. 곧장 빨리만 가려고 애쓰는 바쁜 사람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견습공들, 제품을 나르는 여직공들, 짐짝을 둘러메고 가는 남자나 여자들이 무리 지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리 천장을 통과해서 떨어지는 흐린 황혼 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노인들, 학교가 파한 후 포석 위로 구두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꼬마들도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들리는 것이라곤 급한 발걸음이 내는 건조한 잡음뿐이다. 그것들은 신경을 거스를 정도로 불규칙하게 포석 위를 딱딱거린다. 말을 하는 사람도 없고, 길에 머무는 사람도 없다.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상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급히 제 일을 보러 가느라 정신이 없다. 상인들은 기적적으로 그들의 진열장 앞에 멈춰 선 행인들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본다.'

-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박이문 역, 문학동네 (2003). pp15-16

테레즈라깽의 Passage du Pont-Neuf: 사진 Eugène Atget (1925년 폐쇄)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

파리에서 빠사쥬 (Passage couvert)는 단순한 건축형태를 넘어서 대혁명 (1789년)에서 1차세계대전 이전 벨에포크(Belle Époque)로 이어지는 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의 사회상을 대표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Passage  du Bourg l'Abbé 입구: 사진 김규원

빠사쥬는 만나고 헤어지고, 체류하고 묘사하는 장소로서 삶에 깊이 관련하였다. 

한편, 기술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건축과 건설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는 실험실로서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태어나고 자라났다. 이러한 중요성은 이미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빠사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Passage du Bourg l'Abbé  통로: 사진 김규원

빠사쥬의 통로는 과거의 수도원, 거리, 건축물등이 새로운 요구에 의해 바뀌었고 새로운 자본주의, 브르주아의 대두 등을 상징하는 대표 공간이 되었다. 

Galerie Vero-Dodat 입구: 사진 김규원

한편 왕조시대의 화려함을 베끼려고도 하면서 다른 한편 새로운 변화를 집어넣으려 한 시도들이 건축, 빠사쥬의상행위, 문화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 즉 에밀졸라, 오펜바흐, 비독, 나폴레옹, 벤야민 등의 흔적이 남게 되었다. 

Passage du Bourg l'Abbé 통로와 내부: 사진 김규원
Passage Puteax 입구: 사진 김규원


Passage Puteax 내부: 사진 김규원

나는 2014년 약 6개월 파리에 체휴하면서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이 빠사쥬를 집중적으로 방문하면서 관련한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을 하였다. 이번 연재 글은 그 당시 사진과 정리된 자료를 토대로 써 나가게 되었다. 언제나 그대로 있는 것 같은 파리의 모습이 사실 치열하게 변화한 과정을 빠사쥬를 통해 볼 수 있었고 새로운 관광, 젠트리피케이션, F&B 산업과 인스타의 효과 등도 빠사쥬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Passage du Ponceau 입구: 사진 김규원
Passage Puteax 내부: 사진 김규원
Passage des Princes 입구: 사진 김규원

이제 빠사쥬를 나가며 마지막으로 왕자의 빠사쥬 (Passage des Princes)를 바라본다. 파리의 중심인 오페라에서 멀지 않은 메트로 Richelieu - Drouot 인근에 위치한 이 곳은 한때 퇴락하고 버려진 곳이었다. 1860년 건설되었느나 25년 후 1885년 대부분 철거되고 이용안되어 버려졌으나 1995년 리모델링을 통해 이제는 '왕자들'이라는 이름에 걸 맞게 장난감 상가로 변화하면서 현대의 '왕자'와 '공주'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Passage des Princes 내부 장난감 가게: 사진 김규원
Passage des Princes 내부 구조: 사진 김규원

새로운 건축에 새로운 생명 그리고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왕자'의 빠사쥬 처럼, 거리와 공간을 계속 새롭게 부활하는 것을 빠사쥬에서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생명력이 한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빠사쥬를 나가면서, 앞으로 새로운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하고, 10년 만에 파리에 들릴 기회가 생길지 기대도 해 본다. (기대 만....)

연재를 봐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마지막 편에 다루지 못한 빠사쥬들의 모습을 간단히 보여드리며 마치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Passage bourg l'abbe 입구: 사진 김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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