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규원 Feb 19. 2024

파리 속의 파리: 빠사쥬

1. 선과 선이 만나는 도시

사진: 김규원  파리 빠사쥬

파리는 선으로 만들어졌고 이동되고 연결된다. 하늘로 두 다리 벌려 선 에펠 탑에서 그 가랑이 너머로 흐르는 센 강에 이르기까지. 지하의 거대한 선들인 매트로 노선과 통로, 그리고 고풍이 넘치는 그 입구로 이어지는 과정은 유유하거나 조잡한 선으로 이어진다. 콩코드 오벨리스크와 라 데팡스 (La Défense)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샹젤리제(Champs-Élysées)까지, 아침에 향기로운 버터 향을 내뿜는 나선형 크루아상과 식탁위의 와인 병의 자태까지 파리는 선(線)의 도시이다. 물론 비둘기와 반려견의 오물도 선으로 이어지며 시위대의 분노도 선에서 시작해 선으로 끝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면, 파리의 모든 것은 길로 통한다. 아뿔싸, 그런데 파리의 길이라는 것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프랑스의 치즈 종류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모양, 길이, 폭, 그리고 이야기와 역사가 다름을 경쟁하듯이 뽐내는 것이 파리의 길이다. 역사로 보면, 파리 5구 팡테옹 (Panthéon) 신전에서 슬며시 걸어가면 나타나는 로마시대 경기장 (Arènes de Lutèce) 주변의 길은 이미 갈로-로마시대의 2천 년 위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리의 선들 중에는 샹송제목으로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 배낭여행객이 모이는 생 미셸 (Saint-Michel) 대로, 사진의 명소 콩코드광장(Place de la Concorde), 역사에서 빛나는 바스티유(Bastille)대로, 20세기 예술과 철학을 뒤흔든 몽파르나스(Montparnasse) 혹은 생제르맹(Saint-Germain)대로, 그리고 명품 쇼핑으로 알려진 리볼리(Rivoli)거리 등은 이미 세계에 알려진 선들이다.

이 선들에 붙여진 이름을 보면 프랑스와 서구의 역사가 총망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길들 중에는 우선, 가톨릭 영향이 큰 나라답게 전설 속의 성인이나 혹은 성서시대의 인명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오노레 (Saint Honoratus of Amiens) 성인의 오노레(Saint-Honoré) 거리, 스테판 성인의 불어 식 표기인 생떼띠엔느(Saint-Étienne) 거리, 야곱을 뜻하는 생자크(Saint-Jacques) 대로, 철도역으로도 유명하지만 역시 성경에 나오는 나자로의 생라자르(Saint-Lazare) 거리, 멋진 성당으로도 유명한, 바오로의 생폴(Saint-Paul) 거리,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벽의 부조에서 잘린 목을 들고 서 있는 프랑스에 기독교를 전도한 생드니(Saint-Denis) 대로 등은 대표적인 종교에서 유래한 길들의 이름이다. 물론 시민들에게는 종교적 의미가 중요하지는 않고 그냥 길 찾는데 도움이 되는 이름들로 더 익숙하다. 

파리가 서구의 사상과 학문을 이끈 중심이었기에 학자들도 길을 수놓고 있다. 특히 대학과 학문의 지역으로 알려진 파리 4, 5, 6구에는 이에 걸맞은 학자들의 이름을 흔히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대혁명 시기에는 과학자들이 계몽의 선두에 선 혁명의 주역이기도 하였는데 이중 중요한 길의 이름으로 부활한 경우들이 하스파일 (François-Vincent Raspail), 아름다운 광장으로도 알려진 몽쥬(Gaspard Monge), 게이뤼삭(Louis Joseph Gay-Lussac) 등의 학자이다. 이외에 저명한 이름들로는 퀴리(Curie) 거리나 파스퇴르(Boulevard Pasteur) 거리 등이 있다.

사상가들도 빠질 수는 없다. 공화국으로서 프랑스의 이론적 아버지인 디드로(Didrot), 볼테르(Voltaire), 몽테뉴(Montaigne) 등도 아주 중요한 길에서 이름이 빛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국가(Nation) 광장으로 연결되는 가로 중 두 개가 바로 디드로와 볼테르대로 (Boulevard)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볼테르대로의 경우 공화국(République)광장과 국가(Nation) 광장을 연결하고 있어 공화국 프랑스의 배경의 명성이 길에 살아 있다. 물론 작가로서 에밀 졸라(Emile Zola)나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대로, 알렉산더 뒤마(Alexandre Dumas) 가로들은 아직도 파리의 문학적 향기를 뿜고 있다.

 물론 정치가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대표적으로 개선문이 서 있는 샤를 드골 광장(Charles de Gaulle)이나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대로를 들 수 있다. 이들 중 레지스탕스로 유명한 장 물랭(Jean Moulin), 2차 대전의 영웅인 르끌레르(General Leclerc) 그리고 샤를 드골은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 길 이름으로 붙여지고 있다. 이 외에 흐네꼬티(René Jules Gustave Coty) 거리는 대통령의 이름, 감베타(Léon Gambetta)는 공화당 당수로서 보불전쟁의 주역이었으며 드레퓌스 사건 당시 대통령인 펠릭스포(Félix François Faure)의 이름도 지금도 파리 시민이 일하고 장보고 연애하고 등교하는 거리에서 유령처럼 살아 있다. 게다가 윌슨, 케네디 등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거리마저 있다. 

파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지하철을 뚫기 시작한 백작(Comte de Rambuteau)이나 백년전쟁 때 파리 시민을 대표하는 상인조합장 (Etienne Marcel)은 센 강 우안의 가장 중요한 길 이름 중의 하나로서도 파리의 일상을 지금도 담고 있다. 

또한 파리하면 나폴레옹을 빼놓을 수 없다. 나폴레옹이 확실히 빛나는 장소는 바로 개선문(Arc de Triomphe) 주변이고 개선문은 12개의대로(Avenue )가 모이는 광장으로 이어졌는데 이 대로들의 이름을 한번 보기로 하자. 일단 눈에 띄는 것이 그랑다르메(Grande Armée) 대로로 이는 나폴레옹의 전설적인 정예 육군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외에 프러시아를 대패시킨 전투지인 이에나 (Iena, 독일에서는 Jena)라는 지명이 붙은 대로, 오스트리아군을 대상으로 대승을 거둔 봐그람(Wagram)가, 그리고 러시아를 대상으로 승리한 지명인 프리드란드(Friedland)라는 지명을 내건 대로. 또한 대혁명을 이끈 대장이며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한 전쟁영웅으로 호슈(Louis Lazare Hoche), 클레베르(Jean-Baptiste Kleber)의 이름 그리고 나폴레옹 아래 대표적인 대신이며 장군인 까르노(Lazare Carnot) 등 개선문을 꿰뚫는 12개 대로 중에 반 이상이 나폴레옹과 전쟁 관련 지명과 인명들로, 별처럼 개선문을 통과하고 있다. 이 외에는 역시 전쟁 관련한 명칭으로, 1차 대전의 전쟁영웅 포슈(Marshal Ferdinand Jean Marie Foch), 보불전쟁의 영웅인 맥마혼(Patrice de MacMahon)원수가 승리를 상징하는 개선문을 향하고 있다.

이따금 주변의 건축물이나 명소의 맥락에 의해 이어지는 길 이름을 짓기도 하는데 예컨대 수플로(Soufflot) 거리를 들 수 있다. 수플로는 바로 옆의 팡테옹 신전을 만든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Jacques-Germain Soufflot)의 이름이다. 한편 4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14구의 한 광장에는 거대한 사자의 동상이 있다. 이 사자는 국경도시 벨포르(Belfort)를 상징하고 있고 이 광장은 나란히 보불전쟁 때 벨포르를 사수했던 전쟁영웅 덩페로슈로(Pierre Philippe Denfert-Rochereau)의 이름을 따고 있다. 한편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짓게 된 국립도서관을 끼고 있는 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뒤르켕(Emile Durkheim) 가로가 살짝 지나가고 있다. 물론 몽파르나스 역에 가려진 작은 광장은 서울이라는 이름(place de Séoul)을 가지고 있는데 불행히 맥락은 거의 없어 보인다.

파리의 선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일반명사는 무엇보다도 rue(영어로는 road)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과거 성벽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블로바르(boulevard) 혹은 가로수가 있는 거리라는 뜻의 아브뉘(Avenue) 같은 대로들도 있다. 파리의 경우 크거나 긴 가로들에 붙이는 일반명사들이 대부분 샹젤리제 같은 아브뉘이거나 생 미셸 같은 블로바르인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가장 긴 길은 보지라(Vaugirard)라는 길이다 (4.3km). 샹젤리제가 1.9km인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긴 길이다. 

지하철 노선도 어찌 보면 파리를 파리답게 하는 대표적인 그러나 지하에서 움직이는 선이지만, 드물게 가끔 지상으로 올라오는 나들이도 한다. 한편, 블로바르와 오누이처럼 등장하는 것이 대문을 뜻하는 뽁뜨(Porte)다. 당연하지만 과거 성벽으로 둘러싸였던 파리를 생각하면 성문과 성문 사이의 벽의 공간이 지금도 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차량이 북적거리는 아스팔트 블로바르와 달리 아브뉘는 대부분 넓고 쾌적하고 가로수도 있고 해서 놀멍쉬멍(flâner) 파리답게 놀기 좋은 거리가 대부분이다. 이외에 원래 공원 안에 녹지로 둘러싸인 길이라는 뜻의 알레(Allées)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뛸러리 정원의 길들이 알레로 명명된 경우다. 센 강변의 부두(Quai)들도 눈에 들어오는데 대표적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있는 오르세 부두 (Quai d'Orsay)를 들 수 있고 보통  오르세 부두는 그곳에 위치한 '프랑스 외교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외에 선들이 모이는 광장(Place, Square)들이 있다. 또한 한쪽 끝이 막힌 길 (impasse) 즉 엉빠스 등도 있다. 혹은 보통 다리 위의 길을 이야기하는 빠스렐르(Passerrelle)라고 불리는 선도 있다. 

파리의 주택가의 좁은 선....rue (사진 김규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