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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원 Feb 19. 2024

파리 속의 파리: 빠사쥬

2. 빠사쥬 숨은그림들

파리의 다양한 길 중에 특이하고도 요상한 선이 바로 통로라는 의미의 빠사쥬 (Passage)다.

이 빠사쥬라는 것은 정말 애매한 선인데, 실제로 굽어지거나 막히거나 휜 듯 모양도 서로 다르다. 공적인 공간도 있고 사적인 공간도 있으면서 파리의 다른 선들과 달리 은밀하면서도 도발적인 선으로 여기저기 숨어있다.

 흔하게는 거대한 주거단지, 관공서, 정원이나 공원의 내부 보행도로인 경우도 많지만, 어떤 빠사쥬들은 느닷없이 사유지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8구의 빠사쥬 꼬멍(Passage Commun)이 그러하며 빠사쥬 뒤부아(Passage Dubois)는 빠사쥬 뒤 노르(Passage du Nord)와 붙어서 사유지가 공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게다가 예전에 건물(수도원 등 종교건물의 경우도 많다) 내부 공간이 도로가 된 경우 혹은 막다른 길인 엉빠스(Impasse)의 한 귀퉁이가 열리면서 새로이 이어지는 선이 된 경우도 있다. 14세기에 거슬러가는 2구의 한 빠사쥬(Passage basfour)는 예전에는 막힌 도로였다가 파리의 도시가 바뀌면서 열린 길이 된 경우다. 사유지가 아니더라도 정말 좁은 어깨가 서로 닫는 폭의 길이거나 아니면 충분히 좁아서 양측에 면한 주택들에 속한 공간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특히, 11구 샤론느(Charonne)역 인근의 알랙산드리(Alexandrie) 빠사쥬는 이러한 집들에서 꾸민 화분과 예쁜 대문들로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마치 아름다운 시골 마을길을 걷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내가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비밀 공간도 빠사쥬이다. 이름도 살벌한데 즉'지옥의 통로'(Passage d'Enfer)라는 곳이다. 지옥의 통로는 몽파르나스 근처에 있는데 예술사에 알려진 몽파르나스의 예술가들의 유령들과 추억 사이에 놓여 있다. 

파리 6구의 Passage d'enfer (사진: 김규원)

여기는 몽파르나스 시대의 전설인 만 레이(Man Ray), 뒤샹(Marcel Duchamp), 아라공(Louis Aragon), 릴케(Rainer Maria Rilke) 등이 묵었던 이스트리아 (Istria) 호텔 등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더욱이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나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등이 영원히 쉬고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 입구 건너편이다. 묘지 앞이 지옥의 통로라니 부조리의 극단이다. 게다가 이스트리아 호텔과 같은 길에는 전설적인 사진작가 앗제(Eugene Atget)의 생가도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옥의 통로는 규칙적이면서 현실 같지 않은 완벽히 대칭 구도의 저세상 너머 고요하면서 숨겨진 공간이기에 무섭기까지 하다. 입구는 막혀 있지만 입구에서 보면 도시 안의 하나의 '지옥'같이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든 이들 빠사쥬들은 천국에서 지옥을 오가는 다양성이 있다. 


그리고 이 사이에 보석같이 파리의 화려함과 비참함, 위대함과 저속함 그리고 소비와 창조가 교차하는 또 다른 형태의 빠사쥬들이 있다. 그 곳은 바로 ‘빠사쥬 꾸벡뜨’(Passage Couvert)들이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지붕이 있는 통로, 즉 아케이드들이다. 다른 파리의 거리의 선과 달리 이 선들은 지붕이 있어서 새로운 우주를 만들게 된 공간들이다. 현재 파리에서는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 형태의 빠사쥬 꾸벡트는 16개 정도이다.        그리고 이 지붕 있는 통로가 18세기 말부터 파리에서 도시 안의 도시, 천국과 지옥의 통로 그리고 일상에서의 축제를 만들어낸 신통한 도시 안에서  욕망과 탐닉과 탐미가 휘몰아치는 중심이었고 그 유명한 Belle Epoque의 시작이며 끝을 장식하는 공간이었다. 나아가 발터 벤야민 같은 도시의 산책가들을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빨아들인 블랙홀이면서 역시 선이기도 한 곳이다.  

   

그림: 김규원 Sai tool 사용 (발터 벤야민을 살짝 등장시켰다.)

파리의 빠사쥬 꾸벡트 (Passage couvert)는 간단히 직역하면 지붕이 있는 통로를 뜻 하는데 흔히 지붕 덕에 4계절 상행위가 가능한 상업 아케이드 경우를 상상하면 된다. 즉, 여러 길 중에 지붕이 있는 다양한 업종의 아케이드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지만, 파리에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매력과 비밀이 있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 도시의 화려한 아케이드와도 다르다. 파리의 빠사쥬들은 파리의 공간에서 만나는 독특한 선으로서 파리만이 가질 수 있는 탐미적이고 은밀하며 품격 있는 존재로서 유럽의 잘난 아케이드 대열에서 빠질 수 없는 밀라노의 갤러리 야비또리오(Galleria vittorioemanuele), 런던의 로얄 아케이드(Royal Arcade)나 피렌체의 뽄테베키오 (Ponte vecchio)와 또 다른 맛이 있다.

파리의 빠사쥬는 역사와 지역으로 보면 대부분 19세기 중반 무렵에 만들어진 파리 우안에 밀집한 현상이다. 과거 대혁명에서 18에서 19세기에 탄생해, 레트로한 감수성을 가지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먹거리, 볼거리 그리고 살거리 특히 찍을 거리가 풍부한 새로운 도시문화 관광의 숨은 명소로 떠오른 공간이 되고 있다. 나아가 빠사쥬는 현재 파리에서 제일 붐비는 관광지에서 인접한 장소에 쏘옥 숨어 있어 그를 찾는 재미와 파리지엔의 삶을 엿보는 재미까지 주고 있어 점차 많은 이들의 관음증을 유발하는 관광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향수에 대한 관음증은 과거에도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었다.     

‘아브뉘 샹젤리제에서는 최근 앵글로색슨 계통의 이름을 가진 새로운 호텔들 사이에 아케이드들이 개통되면서, 파리의 최신 아케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통식을 위해 제복을 입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꽃으로 장식된 화단과 분수 앞에서 연주를 했다.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사암 문턱 위로 몰려들었으며, 판유리 앞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으며, 인공 비가 최신식 자동차의 구리로 된 내부 장치 위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기름 속에서 축들이 회전하는 것을 바라보았으며, 검은색의 작은 판에서는 모조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숫자로 쓰인 가죽 제품, 축음기판, 자수를 놓은 기모노의 가격을 읽었다. 그들은 위에서 비치는 흐릿한 불빛 속에서 포석 위를 스쳐 지나갔다.' (발터 벤야민, 「부르주아의 꿈, 아케이드 프로젝트 5」, 조형준 역, 새물결 출판사 (2008), pp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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