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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로소 연 Aug 22. 2023

대동단결

K고딩의 진심

코로나로 우리가 제일 힘들어한 것 중 하나는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다.

가족끼리 가는 국내 여행도 조심스러웠고, 학교에서 가는 단체 여행은 과연 그날이 올까 싶었다.

꿈속처럼 아득하기만 한 그날들이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는 요즘이 감사할 뿐이다.

학창 시절 추억의 꽃이라고 할 만한 중학교 졸업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고, 외부인 출입금지 상태로 졸업식을 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3년 만의 수학여행을! 

강원도로! 

2박 3일! 

다녀왔다.

가족여행으로, 체험학습으로 초등학교 때도 다녀왔던 

새로울 것 없는 장소라도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는 

지루할 틈 없이 또 다른 새로운 추억들로 빼곡하게 채워왔다.

그 여행 사진들을 보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은 깊은 감사함 때문이다.




올해, 학창 시절의 마지막 여행이 될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은 장소 선정부터 예사롭지 않다.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해외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물론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수렴 과정이 있다.


경주, 부산 일대 (비용 50만 원대, SRT 이용)   vs   일본 오사카 일대 (비용 110만 원대, 항공 이용)

2박 3일 일정에 교육여행 동의 70% 이상부터 행사가 진행되고,

해외의 경우 90% 이상이 동의 및 선택해야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학생들은 안내문을 받자마자 일본으로 동의하자고 대동단결을 하였다.

누구라도 '난 경주도 상관없어.'  '일본은 지진 나서 무서워.'라는 말을 하기만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본 여행에 '찬성' 하라고 채근하며 떠들어댔다.



학교에서 가정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의견을 체크한 회신을 받을 때면 보통은 2-3일 여유를 준다.

그래도 제출하지 않는 학생이 항상 있어서 또 안내를 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 관련 가정통신문은 바로 다음날 회신율이 100%에 육박했다.

교육여행 진행 동의율 98.9%,

선호지역 결과는 일본 95.1%,

경주. 부산 4.9%로 나왔다.


학교에서도 이런 결과에 당혹스러웠는지 긴 안내문을 학부모 전화에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임의로 동의에 체크하고 제출한 것은 아닌지, 보호자가 확인하고 동의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문자 메시지였다.


학생들이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가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대동단결할 수 있음에 놀라고 웃음이 났다.

얼마나 가고 싶으면 이럴까!

어른들도 그동안 못 간 여행, 너무나 가고 싶어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학생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S: 오늘부터 아빠한테 일어를 좀 배워야겠어.

   그런데 우리 일본 갔을 때 지진 나면 어떡하지?

엄마: 여행 가서 쓸 일본어? 단체 여행인데 일본어 쓸 때가 있을까? 그리고 지진이 예보하고 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어. 


엄마의 대답은 아랑곳 않고 머릿속은 수학여행의 달콤한 상상으로 가득하다.

S: 우리 일본으로 수련회 가면 해외로 가는 첫 번째 수학여행이래. 기대된~다~.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진다.

몇 달 뒤에 갈 여행을 계획하며 들떠서 친구들과 떠들며 일본으로 결정되도록 의견을 모아 대동단결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작년, 고등학교 신입생 때의 비장하고 주눅 들었던 모습이 많이 사라져서 다행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은 다 똑같이 새내기이고 아기 병아리 같다.

노란 병아리들은 서툴러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는 마냥 귀여운 모습으로, 예견된 고난들 앞에 서서 안쓰러운 기대감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뚝뚝 흘리며 다닌다.


불과 몇 주 전 만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최고 선배로서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신입생에게 조언을 하고, 

자기들끼리는 요즘애들이 많이 바뀌었다며, 

요즘애들은 우리 때랑 다르게 너무 어린것 같다며 걱정도 하던 초6, 중3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 새내기가 되면 다시 아기 병아리가 되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박이면서 주위를 살피기 바쁘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면 넘어야 할 파도가 얼마나 높을지 낮을지 모르지만 곧 다가올 것을 알고 있다.

두려움에 온몸의 근육이 떨려와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덮쳐오는 파도를 맞는다.  

일단 한번 겪고 나면 다음에 올 파도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다. 어느 정도로 높이 뛰면 되는지, 어느 정도로 힘을 빼도 되는지 온몸으로 겪으면서 알게 된다.

그렇게 파도를 몇 번 넘고 나면 다음 파도가 오기 전까지 여유가 생겨 주변 풍경도 감상하고 물의 온도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성장하고 사회에 적응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언제나 엄마가 걱정하고 예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잘 견디면서 커간다.


이제 미성년자로 보내는 마지막 학창 시절, 

두려움은 여전하겠지만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갖고, 내신 경쟁자가 아닌 그냥 같은 학교 친구로, 

한마음으로 소리 내고 같은 곳을 향해 즐겁게 뭉쳐 대동단결하여 

후회 없이 재밌게 추억 만들고 오렴. 

여권은 특별히 거금 들여서 푸른빛이 영롱하고 절대로 구겨지지 않는 빳빳한 신여권으로 준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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