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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로소 연 Oct 22. 2023

수행평가의 늪 (1)

K-고딩의 학교생활; 처음 맞이한 수행평가

대치동의 학원은 1년에 딱 2일만 쉰다.

설날과 추석, 당일 딱 2일.


S가 고등학생 대상 수학학원에 처음 가서 놀란 듯 한 얘기다.

“엄마, 학원에서 애들이 명절 연휴에 며칠 쉬냐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수학쌤이 1년에 딱 2일만 쉬니까 더 이상 언제 쉬냐고 묻지 말라고 하셨어. 쌤도 명절 당일만 쉬고 계속 학원 나오신대.”



명절이나 공휴일이 주말과 이어져 연휴가 되면 뭐 하고 놀지 계획을 짜오 던 것은 이제 끝이다.

고등 학원에서는 이때가 기회인 듯 온갖 특강이 넘쳐난다.

내신대비 한국사 2일 특강, 모의고사 실전연습 1일 특강, 문법 2일 특강, 개념완성 3회 특강 등 연휴 기간에 맞춘 특강들이다.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 현충일은 1학기의 특강 날들이고, 추석 연휴, 제헌절, 한글날은 2학기의 특강 날들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 내신 대비반이 개강하기 전, 특강 하기 딱 좋은 시기다.


고1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모의고사 준비 등 특강제목만 보면 다 들어야 할 것 같은 수업이 유혹을 하며, 안 들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을 준다. 혼자 할 수 있는 공부이지만 학원을 가면 뭔가 특별한 비법을 전수받을 것 같은 광고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모의고사 준비보다,

기말고사 준비보다,

더 급한 '수행평가'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다.


수행 평가 遂行評價

: 교육 학생의 학습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여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일. 평가 방법으로는 논술형 검사, 구술시험, 실기 시험, 연구 보고서 따위가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평가 결과가 내신에 반영되기도 한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학기별로 내신을 산출하는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수행평가로 나눠서 평가한 점수를 합산하여 100점을 만점으로 한다. 획득한 점수에 따라 등수를 매겨 전체 인원의 %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전체 인원의 4%까지는 1등급, 11%까지는 2등급, 23%까지는 3등급, 40%까지는 4등급이다.

등급을 쓰다 보니 소고기도 아니고 등급이라는 게 참 기분 묘하게 만든다.

(출처: 네이버 검색)



S의 학교는 중간고사 30 + 기말고사 30+ 수행평가 40 = 100점 또는

중간고사 35 + 기말고사 35 + 수행평가 30 = 100점으로 비율 그대로 점수를 매겨 합산하여 평가한다.


중간, 기말의 지필고사 못지않게 수행평가의 비중도 높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수행평가의 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더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행평가의 배점이 한 가지 활동으로 30점 또는 40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한 학기 동안 점수를 획득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영어는 단어시험 1차 5점 + 중간고사 30점 + 저널 쓰기 5점 + 독서 감상문 쓰기 5점 + 독서 감상 말하기 10점 + 단어시험 2차 5점 + 기말고사 30점 의 순서로 100점을 만들어 간다.


국어는 독서일지 10점 + 중간고사 30점 + 서평 쓰기 10점 + 독서 신문 10점 + 독서 신문 발표 10점 + 기말고사 30점이다.

그나마 5점 만점 항목이 없으니 영어보다는 낫다.


정말이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이 점수 5점 10점을 모아, 모아서 100점을 만드는 것이니 학기 내내 수행평가와 시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기말고사 이후에는 성적 산출을 해야 해서 기말고사 이전에 모든 수행평가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 전까지 2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전 과목의 수행평가가 숨 가쁘게 마감되고 평가된다.


S의 경우, 1학년은 전 과목이 독서 감상문 또는 서평 쓰기, 독후 활동으로 수행평가를 하기 때문에 1학기 동안 책을 6-7권은 읽어야 한다. 

수시 전형의 서류평가에 독서기록이 없어진 탓에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에 무슨 책을 읽고 활동을 했다고 독서기록을 써주기 위한 선생님들의 배려지만 중학교 때도 이렇게 안 읽던 책을 고등학교 와서 이렇게 많이 읽게 될 줄 몰랐다.

독서속도가 느린 S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과제이다.

이럴 줄 모르고 학기 초, 학교에서 하는 창체 동아리, 자율 동아리와 봉사활동과 교내활동의 여러 곳에 참여 신청을 하고는 빈틈없이 화려하게 채워질 학교생활기록부를 꿈꿨다.



그 꿈은 결과를 보기도 전에 버릴 수도 없는 거추장스럽고 벅찬 짐이 되었다.




특별하게 계획적으로 생활하는 학생이라면 몰릴걸 대비해서 미리미리 조금씩 해두었겠지만, 특별하지 않은 S는 밀리고 밀려서 유혹하는 특강들이 있는 휴일에 특강대신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했다.


현충일 아침 (고1 중간고사가 끝나고 처음으로 몰아치는 수행평가를 맞이하던 때이지만, 몰아치는 정도를 몰랐을 순진한 때), 시험기간이 아닌 휴일이니만큼 늦잠을 자고 10시쯤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여유 부리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식사에 시간을 할애하다가 밤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행평가 준비를 2과목(미술-책 읽고 이미지로 표현하기 계획안 제출, [동물농장] / 역사- 서평 쓰기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 해야 하는데 책을 다 읽지도 못한 채로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책만 보면 잠이 온다며 잠 안 오는 약이 없냐고 묻고, 이제는 몬스터 음료를 마셔도 잠이 온다고 짜증을 내더니 커피까지 마시며 잠을 깨웠다.


1시 넘어서 책 보다가 또 졸려서 5분만 자고 일어난다며 깨워달란다. 

그때 자면 어떻게 일어나겠나 싶어 그냥 다하고 자라고 했다. 

S도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았는지 그냥 한다. 

거실의 넓은 책상에 자리를 잡고 하는 S 옆에서 내 책을 보며 같이 있어주다가 졸음이 몰려와 앞에서 졸기 무안해 슬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자다가 눈이 떠져 일어나 보니 6시.

S는 그때가지 안 잤는지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수행평가는 다 했어? 잠 안 자고 여태껏 한 거야? 피곤하겠네. 지금이라도 좀 자고 학교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꼴딱 밤새고 어떻게 버티려고. 어른 들어가 자. 엄마가 7시 30분에 깨워줄게"


그렇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 급하게 준비하고 학교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오늘 또 해야 할 수행평가와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수행평가와 쪽지시험 수행평가들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숨이 막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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