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고딩의 사치
'N수생 역대 최대... 6월 모의고사'라는 기사들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의대 증원 이슈로 n수생이 늘어날 거란 걸 짐작했기에 드디어 실전 연습이구나 했다.
수능도 아니니까 연습이라 생각하되, 너무 편하게 보지 말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면서 수능 느낌을 느껴보라는 허세를 떨었다.
진짜 고수들은 9월 모의고사에 들어온다고 하니, 이번에는 적당히 긴장감을 가지고 연습하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짜의 작은 배짱을 바사삭... 빠사삭! 밟아주고도 남았다.
수능 시험은 1번부터 차례로 푸는 것이 아니다.
시간 운용 기술이 들어가 짧은 시간에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문제는 나중에 풀면서 OMR 체크하는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국어는 대부분 선택과목을 먼저 풀고 문학이나 독서로 넘어간다.
수학은 정해진 고난도 문제 번호는 넘기고 어려운 3점 쉬운 4점짜리를 풀고 킬러문제로 가면 된다.
영어는 듣기 평가 시간에 두 번째 들려줄 때는 뒷장으로 넘겨 쉬운 지문을 먼저 풀어서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
이 정도 시험 운용방식은 여러 번의 모의고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한 기술이라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다만,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멘털을 잘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나만 어려운 거 아니다. 내가 어려우면 남들은 더 어렵다. 흔들리지 말자.'
행동강령을 적어보며 다짐하고 시험에 임했다.
늘 그렇듯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첫 시간인 국어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한다.
선택과목인 '언어와 매체' 문제에서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와 시간을 많이 뺏겨 독서 지문 하나를 날려먹은 것이다. 독서지문에서 논리학 문제는 '귤은 맛있다'라는 판단적 문장이 귤의 속성과 무관한 채로 참 또는 거짓이라 말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따지라 해서 혼돈 속에 헤매다가 '그냥 귤은 맛있게 먹게 해 주세요'라고 빌게 만들었다.
수학은 늘 배치하던 난이도대로 문제가 배치되지 않아 쉬운 문제 번호에 복잡한 문제가 나와 시간을 끌어 시험 운용에 실패하고 시간이 부족했다.
영어는 절대평가라서 등수 상관없이 90점 이상이면 1등급이고 80점 이상이면 2등급이다.
상대평가를 하는 다른 과목은 응시 인원의 4% 안에 들어야 1등급이고 11% 안에 들어야 2등급이다.
그런데 6월 모의고사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종로학원 기준) 1.05%라고 한다. 상대평가보다 등급 받기가 더 어려운 시험이었던 거다.
안정적 1등급이었던 많은 아이들이 2등급, 3등급으로 떨어져 잘못하다가 수능 최저등급도 못 맞춰 수시지원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하게 생겼다고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닌 척 괜찮은 척했지만 막상 시험이 끝나고 처참한 결과를 보니 괜찮지가 않다.
국어를, 수학을, 믿었던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지금까지 해온 공부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지,
무엇부터 다시 해야 할지...
막막하다.
S는 가채점 후에 '어떡해'를 백번 말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막~ 부르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 행동을 한다.
울고불고 대성통곡하는 것보다 낫지 싶어 그냥 있다.
저녁부터 6모 분석 설명회가 시작되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조언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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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얼 모르는지 무얼 착각해서 틀렸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꼼꼼한 오답 정리부터가 공부의 시작이다.
기출분석을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
오래전 기출문제도 다 챙겨 봐라.
영어는 어휘를 더 많이 외우고 어휘의 여러 뜻을 다 알아야 한다.
이제는 공부량을 더 늘리는 수밖에 없다.
단위시간당 공부량을 늘려야 한다.
이제 남은 5개월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수능날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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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해져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는 24시간이다.
고3에게도 N수생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가 싶지만!
입시를 처음 치르는 고3은 재수생들보다 수능 공부시간이 물리적으로 적다.
학교 내신 시험도 봐야 하고 수행평가도 해야 하고 수능과목 이외의 수업도 받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생활 속의 자투리 시간을 긁어모아 써야 한다.
그런 고3이가
샤워하러 들어가서 한참을 씻는 걸 참고 기다리자니,
주말에 학원 갈 시간이 다 되도록 옷을 고르고 있는 걸 지켜보자니,
유튜브 보는 게 쉬는 거라며 느긋하게 밥 먹으며 핸드폰 들여다보는 걸 지켜보자니
조급증이 나서 결국 한 소리 했다.
"시간 없다고 걱정하는 고3이가 사치를 너무 부리는 거 아냐? 고3이는 머리가 떡져도 괜찮고 매일 똑같은 옷 입어도 상관없어. 떡진 머리 덮어쓴 모자에 검은 트레이닝복이 고3이의 미덕 아니냐?"
S는 "아이고"라는 탄식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다.
K고딩에게,
매일 1시간 가까운 샤워시간은 사치다.
무슨 옷을 입을까 옷장을 뒤지고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것도 사치다.
식사시간에 예능 유튜브를 보는 것도 사치다.
K고등학생에게 사치 중에 최고의 사치는
시간 플렉스는 수능 끝나고 나서 원도 한도 없이 하자.
기네스북에 올라갈 만큼 잠도 자고
16부작 드라마도 정주행 하고
백화점 백 바퀴 돌면서 쇼핑도 하자.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파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