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고 싶어
“너무 답답해…
열심히 하는데 점수는 안 오르고, 놀면서 하는 애들이 점수 잘 받고… 나는 진짜, 진짜로 열심히 하는데...
흑흑... 으어엉... 엉...엉...
...... ...... ......
바다 보고 싶어. “
6모(6월에 본 모의 학력평가)를 망하고 7모(7월에 본 모의고사)에서도 회복을 못하더니 마음이 지쳤나 보다.
학원에서 숙제로 준 모의고사를 풀다가 계산 실수로 자꾸 틀리다 보니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 나온다.
타고난 공부쟁이들의 여유로움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내가 노력한 것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억울함,
좀 일찍 선행을 했었으면 하는 후회까지.
복잡한 마음들이 말로 풀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덩어리가 되어 내 가슴으로도 묵직하게 툭 얹힌다.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다가 결국 통곡을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 좀 걷자고 데리고 나와 달래 보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말끝에 혼잣말처럼 바다가 보고 싶단다.
자동반사적으로 바다 가는 방법을 찾아 머리를 굴려본다.
'바다를 보러 가려면 언제 출발해서 어디로 가야 하지?
바다를 보고 와야 스트레스가 좀 풀리겠는걸. 이건 시간 아까워할게 아니라 일단 마음 회복이 먼저지.
지금 바로 출발해서 가까운 서해바다를 가면 저녁이라 깜깜한 바다일 텐데 밤바다로 맘이 트이겠나, 더 답답해질 수 있지. 밤바다는 아니야.
차라리 내일 새벽에 출발해서 환한 바다를 보자. 학교는 뭐… 빠지면 되지. 기말고사도 끝나고 며칠뒤면 방학이니까 학교 꼭 가야 하는 일정은 없겠지.
서해바다로 가려면 만조시간도 알아봐야겠네.
썰물 때 갯벌만 있는 바다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니까.
남편한테도 연락해 봐야겠다. 오늘 장거리 운전해서 피곤할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 혹시 내일 오전에 시간 비울 수 있어?
S가 바다 보고 싶대. 마음이 좀 힘든가 봐. 오후에 많이 울었어.
시간 안되면 내가 혼자 다녀와도 괜찮아.
남편: 시간 낼 수 있어. 오후 5시 전에만 회사 가면 돼.
나: 그 정도면 충분해. 학교 빠지고 새벽에 출발할 거야.
남편: 학교는?
나: 마음이 아픈 거니까 질병 결석 신청하면 돼.
오늘도 장거리 운전하고 온 남편에게 미안해 1시간 거리의 서해바다를 검색한다.
만조시간 맞춰가려면 몇 시에 출발하면 될지 계산하고 있는데
늘 12시 넘어오던 남편이 9시 전에 귀가했다.
남편: 내일 바다 보러 가려고 일찍 왔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서 옷만 입고 바로 출발할 거야.
동해 낙산사 가자. 거기 일출이 끝내준대.
나: 동해까지 가려면 멀어서 운전하기 피곤하지 않겠어?
남편: 괜찮아. S가 바다보고 싶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나: 난 가까운 서해 찾아보고 있었는데 고맙네.
바다는 역시 동해지. 기왕 가는 거 동해로 가는 게 좋긴 하지.
운전하기 피곤할까 봐 서해 찾아봤는데...
아빠 최고네! 언제 일출명소까지 찾아본 거야~
예상치 못한 행동에 괜히 뭉클하다.
S의 힘든 짐을 가족이 모두 함께 지고 가는 느낌이 든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출발하면 차가 안 막히니 2시간 반만 가면 동해 도착이다.
미리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날이 흐리고 비도 좀 내릴 예정이란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렇지만, 흐려도 괜찮다.
구름뒤에 가려져 있어도 해는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가 없는 건 아니니까.
S에게 해줄 말을 생각한다.
'구름뒤에 가려져 안 보여도 해는 떠오른다. 보이지 않아도 해는 존재하니까.
공부도 마찬가지야. 답답하고 막막하고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도 그냥 꾸준히 하면 되는 거야.
결과가 안 보이는 과정 속에도 실력은 올라가고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일출 전에 동해에 도착했다.
흐린 하늘이어도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장관이다.
내 마음도 뻥 뚫리는 느낌이다.
S는 바다를 가만히 서서 보다가 눈물을 흘린다.
나도 눈물이 나는 걸 꾹 참고 준비했던 말을 해주었다.
"구름 뒤에 가려져 안 보여도 해는 떠오른다. 저것 봐. 잔뜩 낀 구름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태양을.
정말 장관이지? 이 느낌 이 기분 잊지 말고 수능날까지 기억하며 힘내.
구름 뒤에도 존재감이 드러나는 태양처럼,
막막하고 답답해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
남편은 낙산사 홍현암 정자에 들어가서 108배를 한다.
S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면서.
나도 초에 소원성취 글귀들을 적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을 붙여 올렸다.
낙산사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지친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단단하게 잘 지내면 좋겠다.
수능 시험날에도 담대한 마음으로 다녀오길 기도한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준비하고 결과에 감사할 수 있기를.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남은 기간 잘 보내자.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마.
우린 한 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