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로소 연 Jan 13. 2023

일희일비(一喜一悲)

k고딩 수학이야기-2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자애들 대부분이 다 한 번씩 울고 그래요. 우리 애도 울었잖아요.

다들 너무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았데요. 고등학교 가면 다 같은 마음으로 불안하고 긴장하고 그래서 한 번씩 우는 거 같아요. 그냥 통과의례처럼.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잘 다독여주세요."

특목고에 입학하고 여전히 자기 주도로 전교권에 있는 선배의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공부 잘하면 자신감이 넘쳐서 고등학교도 잘 적응할 줄 알았는데,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다들 불안해하고 긴장하는구나.

어쨌든, 내 집 자식 문제로 돌아와서 내가 수학학원을 괜히 옮겼나, 같은 학교학생들로만 구성된 내신 대비반이라서 좋을 줄 알았는데 잘못 선택했나 싶다.




상담을 요청하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수학학원 샘의 답장이 왔다.

이미 다른 아이들이 진도를 많이 나간 상태에서 S가 들어와 심화 문제 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좀 졸아서 야단을 쳤더니 속상해서 그런 것 같다.


이전에도 수업을 좀 어려워한다고 상담을 하면서 보강을 하던지 따로 숙제를 내주던지 대책을 원했었다.

그런데 짧은 면담만 있었을 뿐 예상하는 대책이 없어서 다시 연락을 한 것인데, 어떻게 공부하도록 지도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못 따라오는 건 아이가 그냥 열심히 따라오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늦은 답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리에 차가운 물을 드리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반을 잘못 오셨네요. 못 견디겠으면 알아서 하세요.'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비(悲)!




대치동 옆 동네로 이사 와서 중학교 수학 학원을 찾아다니는데 선행을 안 시킨 것이 부끄럽기도 하면서, 나름 소신을 발휘하여 '교육과정대로 제학년 공부하고 고등과정 다 배우고 나면 거기까지가 수능범위 아닌가'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또 안쓰러움이 밀려와 이제 14살, 만으로 12살 넘은 중학생이 주 3일 4시간씩 수학 학원 다니며 방과 후 일과를 거의 다 학원에서 보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학원에서는 왜 다 똑같이 문제풀이 기계처럼 엄청난 양을 풀어야 한다고 할까? 이렇게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고민하다가 수학 공부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수학을 계통으로 가르친다고. 함수면 일차함수부터 이차함수 삼차함수까지 쭈욱 이어서 깊이 있게 알아가면 수학의 맥락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수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꼭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연관된 영역들을 한꺼번에 공부하는 것. 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도록 상위 개념까지 빨리 가봐야 한단다. 그러면 수학이 쉬워진다고. 왠지 신뢰가 갔다. 나만 아는 지름길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걸 배우려고 매주 일요일 차로 왕복 1시간 30분씩 가서 3시간 공부하고 왔다. 그런데 그건 수학적 감각이 있는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이었다. 과학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기본으로 다니는 수학학원 외에 추가로 더 배우는 과정이었다. 난 그걸 메인으로 하나만 하고 있었으니 중학교 기말고사에서는 성과를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학원으로 과외로 결국엔 대형학원에 적응하면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마음이 복잡하고 괴롭다.

悲를 느끼게 해 준 수학학원은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환불절차를 밟았다. 대치동 학원들은 환불도 칼같이 깔끔하게 잘해준다.  

학교 수업시간에 나눠주신 프린트물과 문제집으로 혼자 내신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하다가 모르면 질문할 수 있는 샘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대형학원의 개별질문반에 주 1회만 가기로 했다. 일단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대책을 다시 세워야겠다.




살얼음 같은 고등학교를 시작하며 조심조심 걷다가 언제든 올 줄 알았던,

그 살얼음판에 금이 간 날.


펑펑 울고 잔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학교 가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말고 집에 와서 쉬라고 할걸 그랬나?

이런저런 걱정에 하루를 보내고 밤 10시가 되어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어떤 얼굴로 학교를 나올지 걱정하며 학교 앞에 서있는데

S는 너무나 해맑고 씩씩하게 나왔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사회 선생님을 석식 시간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왔단다.

선생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용기 주셔서 열심히 해보겠단다.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침처럼 세상 포기하고 싶은 얼굴이 아니라서 무척 다행이다.

갑자기 발걸음도 가벼워져 날으려면 날 수도 있을것 같았다.

사회 선생님께 찾아가서 큰절이라도 올려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까운 곳에 힘들 때 찾아가 고민을 말하고 위로받고 앞에서 울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같은 울타리 안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어서 다행이다.

남녀공학 보낸다고 다른 학교 1 지망 써서 거기 갔으면 이럴 때 어쩔 뻔했나 싶다.

여학교보다 남녀공학이 낫다고 고등학교 지원할 때 수없이 들어온 말이 있다.

남학생들은 꼼꼼하지가 못해서 수행도 잘 안 챙기고 내신 깔아주는 애들이 많아서 내신 잘 받으려면 여고보다 남녀공학 가라고.  

그런데 1,2등급 하는 아이들 중에 남학생이 적지 않다. 수학은 오히려 남학생이 더 잘한다.

여학교보다 남녀공학에서 어떤 등급이 얼마큼 쉬운지 그걸 비교할 근거가 뭔지는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내 아이와 같은 경우에는, 힘들 때 석식 시간에 잠깐 달려가서 20분 정도 이야기 나누고 위로와 응원받으면서 지낼 수 있는 지금 이 여자고등학교가 최고의 학교다.

내신은 둘째치고 우선 학교 생활을 건강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지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결국엔 승자가 되지 않겠나!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웃으며 잠들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희(喜)!



*사진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일단, 울고 시작할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