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불가능성의 인문학/문학동네
1] 이데올로기의 탄생
진리의 상대성: 어떤 사물의 진리를 결정짓는 것은 그 사물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 즉 사물이 관련된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믿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진리에 관한 모든 관념은 실상 진리에 관한 담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거기서 이데올로기가 나온다.
1789 프랑스혁명 이후 봉건왕정을 타도하고 세워진 혁명정부 입장에서 구체제의 '미신'을 혁파하고 과학에 입각한 새로운 진리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진리의 올바른 인식을 위한 원리를 궁리했는데 이를 '관념에 대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자유,평등,우애라는 혁명적 이데올로기들은 현실의 진리로 정당화되었던 시기이며,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 또한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비난했고, 그 이념을 주장하는 자들을 탄압했다.
이제는 철학적,종교적 문제부터 이상적 사회상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근대성의 징표로 자리잡았다. 진리에 대한 욕망이자 진리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19세기에 들어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열린다.
2]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서 발전된 개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단일한 정의를 내린 적은 없으나, 필요에 따라 여러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모든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사진용 어둠상자에서처럼 거꾸로 뒤집어져 나타난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들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왕조시대에 신분적 위계질서를 모두가 당연시 했던 것 처럼, 각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의문자체가 '문제'로 던져질 수가 없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의 모습이 거꾸로 세워져 있는 상황. 현실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믿음과 관습이 사실은 전도된 진리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상의 믿음과 관습들은 비판을 통해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이었다. 이데올로기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유발하는 거짓 지식인 셈이다.
그리고 당시 청년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관념철학인 헤겔을 비판대상으로 삼았다.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추상적 관념은 당시 군주제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태초에 절대정신이 이 세계에 나타나 성장해가는 것을 역사라고 보았고, 그 역사의 완성 과정에서 전쟁,공포,억압,폭력,차별등은 역사 발전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정당화했었다. 국가를 절대정신의 완성단계로 보면서 국가의 완성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러한 헤겔의 절대정신론이야말로 전도된 인식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에 절대정신이 우선했다는 헤겔식의 전제는 입증불가능하다. 오히려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이후 국가가 건설되고, 절대정신 개념도 그 이후에 생겼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유물론에 기초해있다. 이데올로기 비판은 유물론적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관념에 근거하는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의식으로 보고, 진정한 의식은 두 발이 딛고 서있는 '이 땅' 이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물질적 생산에 입각해야 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이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법,정치,사회문화 양식들이 '상부구조'는 생활을 근거로 하는(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현실적 운동) '토대'라는 운동에 의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즉 역사의 진리는 토대에 의한 것이며, 그 다음이 상부구조로서의 관념의 체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론을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 했는데 이때 허위의식은 두가지 방향으로 해석된다. 첫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릇된 지식이나 그 지식에 대한 왜곡된 믿음, 둘째, 떤 지식이나 믿음을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묵인하거나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법은 자본가를 보호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회적 규범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종교적 믿음은 사회적 불의를 억지로 견디게 하는 빌미가 되고, 학문은 객관적 과학의 이름으로 현실의 불공정을 정당화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의 주요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비판을 전적으로 따르면 문제점도 생긴다. 현실의 모든 상부구조들을 허위로 규정하고 폐기처분해야 하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철학,정치,종교,문학 등이 모두 올바른 진리인식에 적대적인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긍정적이고 적극적 측면을 해명했었다. 이데올로기를 혁명을 위한 적극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의 여러 형태들은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려 할 때도 동원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사회혁명을 견인하는 긍정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체계화할때 '변증법'이라는 철학적 세계관(이론)이자 방법론(실천)을 사용했는데, 변증법은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올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철학'이면서도, 사변에 머물지 않고 객관적으로도 기능한다. 즉 실천적으로 현실 개입적 특징을 가진 이데올로기는 '과학'이라 명명된다. 이론과 실천이 종합된 과학화된 이데올로기를 유물론의 진리로 내세우며 관념론에 대항하였다.
변증법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역사적 상대성을 발판 삼아 현재를 구성해가는 주체적 입장을 수용한다.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란 없다고 레닌은 말했다. 결국,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명백히 배적하고, 과학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