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페홀로 Apr 14. 2024

이데올로기론 2편: 루카치

최진석/불가능성의 인문학/문학동네

저자 최진석님의 [불가능성의 인문학]중 4장: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유물론 편을 참고했습니다.


3. 루카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루카치(1885-1971)는 근대 문화를 중심으로 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정신적 각성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삶인 육체의 피폐와 정신의 빈곤에서 벗어나 풍부한 정신적 교양을 누리는 길로 인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저서 [역사와 계급의식](1992)를 통해서 살펴봐야할 중요한 2가지 포인트는 '계급의식'과 '사물화'이다. 

 만년의 엥겔스가 과학을 통한 이데올로기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던 그 지점을 루카치는 이어받았다. 다만 이데올로기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이데올로기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물었다는 점에 차별화가 있다. 즉 주체가 진보적이면 그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긍정적이나, 주체가 반동적이면 그 이데올로기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진보와 반동 여부는 역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데올로기의 단순 선용과 악용의 이분법을 벗어나 있다.  다시말해 이데올로기의 긍부정은 주체화하는 계급의 역사적 자각과 역할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띠고 나타나게 되는 원리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급의식'이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의식을 깨달아야 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숩을 자본가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과업을 받아들일때 혁명이 순식간에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계급적 주체화가 실현될때 노동해방 또한 기대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사회 일반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계급으로서의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과 일치할 수밖에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과 실천의 점점 더 긴밀한 통일로 향할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그들이 투쟁하면서 내세우는 기치도 아니고, 본래의 목적 설정을 가리는 가면도 아니며, 오히려 목적 설정 자체이고 무기 자체이다' (루카치,1993b:137)

 레닌에 의하면 계급적 자각은 결코 노동자 '내부'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었다. 자본가들에게 매일 매일 고통당하는 생활 속에서 노동자들이 전체사회의 혁명이라는 거대 규모의 정치적 과업을 제대로 성찰하고 조직화할 수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큰 사회적 해방의 시야를 갖는 것은 그들의 '외부'에서 사태를 직시하고 개입하는 행위자에게 주어진 몫이라고 보았다. 이 집단을 전위적 혁명가 조직('당')이라 불렀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었다. 루카치 역시 이 구도를 이어받아 작업현장 바깥에 있는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에게 침투해 그들을 의식화하고, 계급의식의 각성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노동자 계급이 지식인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사명을 깨달으면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결되고 노동해방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런데 혁명은 왜 일어나지 않는가?? 

 결국 그 이유는 루카치에 의하면 '사물화'에 있다. 사물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현상인데, 상품생산양식이 발생시킨 인간의식의 구조적 착란이다. 정작 주체인 인간이 객체인 상품과의 관계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노동자가 돈을 벌지 못함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도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이 노동시장의 상품으로 거래되며, 비인간화되는 것이다. 자신이 제작한 물건으로부터도,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나온다. 이러한 분열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무력감을 낳고, 상품에 의해 인간이 지배받는 사태로 귀결된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사물화인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물신화라고 불렀던 현상과 연관된다. 화폐가 만능의 수단으로 신처럼 숭배되는 자본주의 사회, 여기서 사람들은 화폐에 대한 애초기능을 망각하며, 화폐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사물화는 그와 같은 전도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병리현상이나 이데올로기적 환각이다. 

 그럼에도 루카치는 노동계급에 희망을 건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사물화를 극복할 잠재력이 있다고 단언하였다. 부르주아는 소비적이고 착취적 활동밖에 하지 못하지만, 노동자계급은 생산을 통해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루카치의 태도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나친 기대이자 신화화라고 볼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에 충실한 해석이자 이론적 실천의 전개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리고 레닌에 의해 과잉 의미부여되었던 객관적 실재로서의 물질적 자연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대상으로 파악하고, 인간의 주체적 실천에 의해 변용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은 근대 변증법 사상가로서 루카치가 이룬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