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불가능성의 인문학/문학동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과 철학에 대한 구상을 통해
유기적 지식인과 헤게모니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지배
유물론적 사유에서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의 한 요소이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상부구조는 기계처럼 토대(경제적 관계)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왔다. 즉 상부구조와 토대 사이의 관계를 밝혀 계급지배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이러한 단순한 상응논리에 선을 긋고,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거울 '이상'임을 주장했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태도와 행위에 실재적 힘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고, 인간 사유와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힘'이란 이를 가리킨다. 따라서 상부구조와 토대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특정 시대마다 특정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역사적 블록으로 나타난다. 이 블록안에서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어떤 결합관계가 이뤄지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과 지향에 변화가 생기고,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이 조직될 수도 있다. 즉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는 대중을 조직해주고 투쟁을 견인해가는 실제적 힘을 갖는다.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는 시대마다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 만큼 이데올로기가 그 투쟁의 양상을 결정짓는 주요 계기가 된다.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내부'에서 ,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적 변혁의 가능성이 구체화된다. 그만큼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중요성을 민감하게 파악한 이론가였다.
한편 '헤게모니'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투쟁과정을 주도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람시는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욕망의 고리란 점을 통찰했다. 구체적 역사적 블록으로부터 추출된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의 대중심리와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헤게모니는 이러한 욕망을 격발시켜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견인장치다. 이데올로기는 강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자기의지가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욕망을 움직여 나의 의지대로 행동하게끔 설득하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능력인 셈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의 역사에 있어서 폭력과 허위의식만이 문제라면, 레닌이나 루카치의 말대로 몇몇 지적인 전위, 지식인이 나서서 그것을 깨우쳐주기만 하면 모든게 진작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대해 정작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의식적으로 동조한다는 점, 동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깨뜨리지 않으면 혁명 또한 묘연한 것이다.
*유기적 지식인과 새로운 혁명전략
유기적 이데올로기로서의 헤게모니에 입각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레닌과 루카치의 경우 지식인을 전위적 혁명가 집단으로 두었다. 노동자계급 '외부'에서 침투하여 계급의식을 심어주는 주체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생활환경과 지적 배경이 다른 지식인들에게 선뜻 동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혁명적 지식인들은 동지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도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덕적이고, 지적인 지도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노동자계급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 낼수가 없다. 즉 지식인들은 노동자와 유기적으로 얽혀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람시의 주장이다. 노동자와의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어야 부르주아지가 심어놓은 선동에서 노동자계급이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혁명의 전위에 선 지식인들은 지배계급에 빌붙어 지배를 정당화는 데 이바지하던 전통 지식인과는 다르다. 새로운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의 심리,정서적 동의를 통해 혁명의 진입로를 개척해야 한다. 두 집단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합일이 언젠가 이루어지리라는 낙관을 그람시는 하고 있다.
그람시에 이르러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머릿속 관념에 머물지 않고, 물질적인 힘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갈등을 빚는 구체적인 사회적 장소가 중요했는데, 교육,종교,출판, 언론 등이 바로 그 곳이다. 헤게모니적 무대들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첫번째 장소가 '시민사회'이고 그 다음이 국가다. 결국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시민사회와 국가에서 벌어져야 한다.
기존까지의 마르크스주의는 시민사회라 하면 부르주아지의 본거지였고, 결코 투쟁의 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적들의 무대'였다. 그래서 총파업처럼 일거에 힘을 모아 타도하자는 논리가 팽배했었는데, 그람시는 이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헤게모니가 이데올로기적 투쟁과정에서 발취되는 정치적 주도능력이라 간주했고, 그 대결의 주무대는 시민사회와 국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장소를 경홀히 여기거나 적대해서만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혁명을 향해 신속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기동전과 잠복한 상태에서 봉기하는 진지전의 구분이 있는데, 그람시가 바로 진지전을 구상한 셈이다. 즉 부르주아지의 일상생활과 정치행위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혁명적인 파열의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적 전략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