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걍 Apr 10. 2020

벽보가 훼손된 후보자와 절대 당선 못 시키는 유권자

제가 던지는 표는 사표가 아니고요, 벽보는 훼손하지 맙시다:)

#1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내가 사는 지역구의 선거 벽보 훼손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접했다. CCTV가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특정 후보의 벽보를 훼손했는데, 그 저의가 너무 명백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군소정당의 어린 여성 후보자.

그 후보자를 수식하는 모든 수식어들이, 벽보를 훼손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적의를 품었는지 알게 해주는 단어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훼손된 벽보의 후보자가 지하철 역 앞에서 선거 명함을 나눠주며 유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선거 전단지나 명함은 절대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은 일부러 그 후보자가 나에게 쉽게 명함을 건넬 수 있도록 천천히, 휴대폰을 보지 않고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감사합니다.”

후보자가 공손하게 건네는 명함을 나도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 그가 씩씩하게 웃고 있길래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마스크에 가려서 잘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후보자가 씩씩하게 웃고 있어서 좋았다. 그는 SNS 채널을 통해 훼손당한 벽보에 대한 화를 표현했지만, 주눅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옆에서 표가 갈라진다느니, 왜 나왔냐느니 눈 흘기며 보는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후보자와 똑같이 씩씩하게 웃는 유세자들도 좋았다.

이런 꿋꿋함이 작은 목소리들을 크게 만들어 역사에 등장시키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후보자 이름 앞에 붙는 모든 수식어들이 지금은 벽보를 훼손할 정도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만, 미래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읽히는 수식어가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훅 밀려오는 희망찬 감동에 살짝 코끝이 찡했다가, 훼손된 벽보에 대한 분노보다 연민을 먼저 느꼈던 것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2
누군가는 군소정당에게 투표하는 것이 ‘사표(죽은 표)’라고, 그러니 전략적으로 비슷한 노선의 큰 당을 뽑자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던지는 어떤 표도 절대 ‘사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A라는 당의 노선을 막기 위해 나와 비슷한 노선의 B에 투표하여 B를 제1당으로 만든다고 한들,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C가 실현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미약하게나마 C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어필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내가 투표한 정당은 의석을 하나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정당이 주요하게 다뤘던 논제가 이번 총선에서 꽤 심도 있게 다뤄졌다. 여러 당에서 그 부분과 관련 있는 비례대표 후보자를 내보였다.

아마 이번에 내가 마음에 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는 기적이 아닌 한 당선될 일이 없을 거고, 내가 마음에 둔 정당 역시 의석을 하나도 차지하지 못할 거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내가 마음에 둔 후보자의 정당과 내가 투표하려는 정당은 다른 곳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후보자의 공약이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정당이 주로 다루는 영역이 우리 사회가 꼭 다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사표’가 된다고 해도 소신껏 투표하고 여기에 내 목소리가 있다고 보여줄 거다. 그러면 아마 4년 뒤에는 누구의 벽보도 훼손되지 않고, 내가 투표한 정당에서 의석 하나쯤은 차지하거나 적어도 여러 정당이 그 영역을 꽤 중요하게 다룰 거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부활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