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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정 Feb 10. 2023

요리계 칼체

동그라미에도 모서리가 있겠지




집 근처 김밥 집.     

포근한 분위기와 두건 앞치마, 조리용 마스크.

빠른 손 또한 마음에 들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으니

먹을 때마다 끝까지 자르지 않은 김밥의 모서리가 주욱 당겨진다는 것.

테이프처럼 김에 다닥다닥 붙은 쌀알을 보며

그래, 동그라미에도 모서리가 있겠지- 생각해본다.

기어코 발견해달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김밥의 김이 열에 의해 눌어붙으면 탄성이 생기는데

그게 그다음 김밥, 그다음 김밥까지 기차처럼 연결되어

결국엔 왼손에 숟가락을,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고

찢어가며 떼어가며 먹는 내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아. 김밥은 한 손 젓가락으로 먹어야 맛있는데.

싸우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싫다.

너무 크게 잘린 김치, 한 입에 먹을 수 없어 볼이 터질 것 같은 쌈,

내용물 크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투머치한 소스들로 원치 않게

질질 흘려 꼭 휴지를 써야 하는 음식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는 식감의 고기 등.

먹는 사람을 끝끝내 배려하지 않은 듯한 음식들.

다른 의미로 주인장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과정들.    

이 김밥 집은 내가 갈 때마다 기차를 만들어준다.

1년은 넘은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맛은 있어서 또 찾아오게 만든다.

일본의 한 초밥 장인은 몇 십 년 내내 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오픈 전 꼭 그날 판매할 생선을 한 점 썰어 먹어본다던데.

뭐 장인까진 아니어도, 그게 기본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귀여운 퍼포먼스쯤으로 기억해주라는 표식인 걸까.

아리랑 부채처럼 연속적으로 풀어져 버린 김밥 안으로

우엉과 볶은 당근과 단무지가 가지런히 영롱한 색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다 한 줌 집어 먹고는

당근과 밥알에서 나오는 옅은 단 맛을 느낄 때까지

단무지와 우엉의 좁은 즙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꼭꼭 씹어 삼켰다.

의도라면 그것도 쉽지 않겠다 생각하면서.      

색깔 참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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