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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혼삶 Jun 18. 2021

에세이 :: 스마트 스피커로 입주민들을 연결하다

Intro: 가깝고도 먼 우리, 물어보고 싶은 건 많고

코리빙 스페이스에서처럼 혼자인 사람들이 여럿이서 살면, ‘혼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어느정도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여름, 우리는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면서 ‘남이 필요한 순간’을 언제 느끼는지 물어본 바 있다. 여러 가지 상황 중에 아래처럼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상황들이 종종 언급되었다. 


주변 슈퍼 중
어디가 더 싼지 알고 싶을 때.

_워크숍 당시, '남이 필요한 순간'을 언급한 포스트잇 중

혼자 살면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를 떠올려 보자. 궁금한 것이 많은데, 너무 사소해서 옆집 사람들에게 묻기는 민망하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오지도 않고, 아무런 해결 방안 없이 넘어가기엔 내겐 소소하게 필요한 정보이 고… 이런 ‘궁금증 모멘트’들은 혼삶 라이프에서 종종 찾아오기 마련이다.

작년 하반기, 혼잘살 연구소는 다소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이 상황을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해결해 보고자 노력했다. 이번 호에서는 1인 가구의 ‘궁금증 해결 모멘트’에 대한 기술적 고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서비스 이름 짓기

‘쉐어원 위키’. 유쾌한 어감의 귀여운 이름이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쉐어원’과 ‘위키백과’의 위키를 합성해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쉐어원 위키’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 쉐어원 위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해당 챗봇은 앞서 워크숍에서 언급되었다던 ‘정보에 대한 니즈'를 해결해야 하기에, 입주민들이 궁금해할 법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주민이 말을 거는 데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의도했던 서비스의 느낌과 능력은 이렇다: 정보의 집배원 같은, 검색으로 찾기 어려운 경험 정보를 사람들에게 얻어내는, 잡학 박사처럼 정보들을 모조리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친절한 톤을 유지하는. 입주민들의 지식을 친근하고 똑똑하게 전달했으면 했다.

또한 연구원들은 쉐어원 위키가 어떤 모습으로 입주민에게 다가가야 할지도 고민했다. 우리는 이를 ‘스피커’로 전달하기로 했다. 집 안에서 혼자 부스럭거리며 생활하는 1인 가구에게 불현듯 궁금증이 생기면, 스피커가 이를 거리낌 없이 들어주고 답을 해주길 바랐다. 과거 아파트에서 사용되던 인터폰을 생각하면 쉐어원 위키를 연상하기 쉽다. 가볍게 입주민 간의 연결을 매개했던 인터폰처럼, 쉐어원위키를 통해 입주민들이 정보를 주고 받으며 연결되었으면 했다.




서비스 꾸미기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다

쉐어원 위키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어떤 정보를 전달할지 정해야 했다. 입주민들이 실제로 어떤 정보를 궁금해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에, 일단은 그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인 ‘1인가구와 쉐어원, 신림동’ 정보를 담기로 했다. 이후에는 연구원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시범 서비스를 진행해 보면서 정보 범위를 다잡아갔다.

그 결과 쉐어원 위키가 담을 정보는 세 범위로 좁혀졌다: 1인 가구 생활 팁, 쉐어원 신림점의 건물 정보팁, 신림동지역 정보 팁.

1인 가구 관련 팁은 혼삶 중에 생기는 일상적인 정보를 말한다. 초보 자취러들에겐 궁금한 것도 많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끼니를 어떻게 지혜롭게 때우는지, 청소 꿀템은 없는지, 청바지는 어떻게 세탁해야 하는지, 등 이런 궁금증들을 알려주고자 했다. 

쉐어원 팁은 이들이 함께 머무는 쉐어원 신림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쉐어하우스는 나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기에 남들과 맞춰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층마다 나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공용 공간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을 방에서 스피커를 통해 손쉽게 얻는 것도 중요하다. 그 외에도 갑자기 구급상자가 필요하거나, 1층 물건을 도대체 써도 되는지 등의 쉐어원 사람들만이 아는 이런 정보들을 담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신림동 팁은 동네 거주 선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로컬 정보를 말한다. 인터넷에서는 찾기 어려운—어디 야채가 싱싱하고, 어느 길이 더 안전하고, 지름길은 어디고, …—직접 사는 사람들만이 아는 정보를 모았다.



이런 대화를 진행하고자 했다

챗봇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대화가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가?’이다. 쉐어원 위키는 일반적인 챗봇이 아니다. 어느 정도 안면을 터 놓고 사는 사람들끼리 쓰는 챗봇이다. 따라서 대화 톤이 너무 딱딱한 것보다는 발랄하고 친근한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쉐어원 위키가 대화를 할 때, 최대한 옆집 윗집 아랫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층 입주민이 말합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기계음을 통해 그대로 인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성공적인 팁 공유를 위해서는 정보가 잘 쌓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물어보기와 답하기를 한 흐름에 녹였다. 자연스럽게 정보를 주고받도록 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입주민이 질문을 하나 하면, 챗봇은 똑똑똑 문을 두드리며 다른 사람의 질문을 전달해 주도록 했다. 대화 흐름의 예시는 아래와 같다. 




천천히 사용해 보기

스마트 스피커랑 친해지기

이로써 쉐어원 위키는 출발 준비를 완료했다. 하지만 이대로 출발한다면 입주민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애당초 쉐어원 위키는 스마트 스피커 중 하나인 '구글 홈(Google Home)’에 탑재되기 위해 설계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근에 스마트 스피커가 보편화되었다지만, 무턱대고 스피커 서비스를 사용해 주십사 부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구글 홈을 배포하기 이전에 약식으로 받았던 설문을 보니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해 본 입주민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혼잘살에서는 스피커 체험단에 신청한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구글 홈과 IoT 기기를 제공하여 새로운 삶의 경험을 맘껏 경험해 볼 시간을 드렸다. 혹여나 입주민들이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한 온보딩을 돕는 두 가지 방안 역시 마련했다. ‘슬기로운 스피커 생활 가이드’와 ‘구글 홈 집들이’가 바로 그것이다.

 ‘슬기로운 스피커 생활 가이드’는 총 10장으로 구성된 미니 안내북이다. 스피커 및 IoT 기기 연동 방법, 다양한 서비스 이용 방법, 기타 문의 방법 등이 수록되어 있다. 스마트 스피커에 대한 숙련도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도전해 볼 수 있게끔 단계적 레벨로 구성했다.


(왼쪽 사진) ‘구글 홈 집들이’를 위해 연구원들은 신림 쉐어원 1층의 모델 하우스를 꾸몄다. 책상 앞에는 “Youtube에서 공부할 때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 창문에는 “미세미세에게 말하기”, 스탠드에는 “스탠드 꺼줘” 등의 말풍선을 붙여 놓았다. 이후 스피커를 사용하게 될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한 기능씩 시연해 보이는 과정을 거쳤다. 방 안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이 어느 상황에 무엇을 위해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할 수 있는지 보다 실질적인 팁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두 가지의 성공적인 온보딩을 마치고, 입주민들은 약 한 달 남짓 자유롭게 구글 홈을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한 서비스 연동이나 IoT 기기 사용을 넘어, 자신만의 루틴을 설정해 스피커를 일상에 녹여낸 입주민들이 꽤 많았다. 능숙한 사용자가 된 이들에게 우리의 서비스를 선보일 때가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쉐어원 위키 만나기

새로운 기기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니만큼, 이 프로젝트에서는 입주민들에게 사용 방법을 차근차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따라서 스마트 스피커뿐만 아니라 우리의 서비스에 있어서도 ‘안전한 탑승’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비스에게 물어볼 수 있는 다양한 예시 정보들을 담은 카드를 제작해 입주민들이 서비스의 기능을 가늠할 수 있도록 나눠 주었다.




서비스 회고하기

입주민의 후기

많이 사용되지는 못했지만, 약 한 달 여 기간 동안 쉐어원 위키는 입주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입주민들은 이 쉐어원 위키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먼저 경험이 담긴 정보들이 잘 공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들은,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도 했다. 특히 ‘맛집 추천’에 대한 팁을 얻은 경우, 실제 방문으로 이어져 만족을 준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광고 글이 많아서 맛집을 찾기 어려운데
입주민에게 직접 들으니
더 믿음이 갔어요.

_쉐어원 위키 사용자 A

어떤 입주민은 정보 공유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동네를 탐색하면서 알게 된 ‘혼자만 알기 아까운 장소’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음을 재미 포인트로 꼽았다. 실제로 검색을 위해 서비스를 실행해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까지 한 경우가 약 64%로 나타났다. 정보를 얻는 목적이 서비스 이용의 대부분일 것이라는 연구원들의 예상을 깨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서비스는 입주민들을 간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입주민들이 쉐어원 위키를 통해 다른 입주민을 떠올리거나, 일종의 공동체성을 느끼기도 했다. ‘오고가면서 인사도 안 해봤을 텐데’, ‘누가 이 질문을 했을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어색하거나 연락 방법을 몰랐는데 해결됐다’ 등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보자면, 쉐어원 위키가 입주민 간 가벼운 소통 창구로서 작동했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같이 거주하는 분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친밀한 공동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_쉐어원 위키 사용자 B

한편, 서비스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 준 이야기들도 많았다. 쉐어원 위키의 사용 횟수가 적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생각보다 질문에 대한 답이 쉽게 떠올랐다’, ‘아직은 쌓인 데이터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와 같은 의견도 모였다. 서비스의 완성도가 높지 않고, 새로운 입주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원의 후기

연구원들 역시 쉐어원 위키의 운영이 마무리된 후 그 과정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아쉬운 부분들이 줄줄 떠올랐다. 앞서 입주민들이 언급한 대로, 해당 서비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정보들은 일정 부분 이미 해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스마트 스피커가 아무리 새롭고 신박한 기기라지만, 음성으로 묻고 답하는 것이 아직은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음성은 한 번 입력한 내용을 수정하기가 어려우며 인식의 오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피커의 고정적(stationary)이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자신의 방 안에서만 쉐어원 위키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궁금증, 동네에 관한 궁금증 등은 집 밖에서나 이동 중에도 충분히 떠오를 수 있다. 어쩌면 쉐어원 위키에 수집된 질문들은, 입주민들이 하루에 갖게 되는 전체 호기심 중 절반도 안 되는 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쉐어원 위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정보 니즈’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은 서먹서먹할 수 있는 입주민들 사이의 관계를 아주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게 매개할 수 있었다. 쉐어원 위키를 만들기 전—워크숍을 진행하기도 이전에, 쉐어원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는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지는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모두가 바쁘게 생활하는 탓에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친해질 계기가 많이 없을뿐더러, 쉐어원 측에서 기획했던 정기 모임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모두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사적인 소통은 물론, 공간 인스트럭션과 같이 필요한 정보조차 원활히 공유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쉐어원 위키는, 각종 꿀팁을 모아 놓으면서도 입주민들의 존재감을 서로에게 전달해 주는 ‘배달원’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지 않았을까?

작년에 운영된 쉐어원 위키가 그러했던 것처럼, 혼잘살 연구소는 올해에도 ‘어떠한 인공지능 서비스가 1인가구를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려 한다. 




필자   ∣   박상아,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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