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아껴 쓰고 눈도 좀 아껴 써라.
니은으로 시작하는 주제어로 무엇을 고를지 꽤 오래 고민했다. 나태, 나, 놀이……. 이렇다할 글감이 없어서 쥐어짜기를 해야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쓸거리가 알아서 굴러오는 걸 보면 일복은 분명히, 꽤 좋다.
눈이 많이 나쁘다. 다섯 살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해 나안일 때의 기억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시력교정기구를 착용한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안경이 특별히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다. 안경은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꽤 로맨틱하다.)
좌측 고도근시, 우측 고도난시에 양쪽의 시력차이가 심한 부등시로 약시가 되기 쉬운 눈이었기에 반년에서 일 년마다 안경을 교체했다. 렌즈 가격이 상당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안경테를 반년마다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니 개이득인 부분이 아닌지?
안경이 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안경은 마치 손발과 온몸의 터럭처럼 내 몸에 붙어있는 후천적 수지발부나 다름없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학입학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입학식과 첫 번째 전공수업을 들어가고 나서 안경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 중 안경을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친구들이나 교수님들이 안경을 쓴 나에게 무어라고 한 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며 안경을 쓴 젊은 여자……가 왜 보이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지적으로 굉장히 냉철하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고. 콘택트렌즈와의 인연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콘택트렌즈가 난시를 제대로 교정해주지 못했고, 난시 축이라는 것이 있어 표시된 방향으로 렌즈를 착용하지 않으면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제대로 착용을 한들 교정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어 판서도 두 겹, 세 겹으로 보였다. 그런데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나니 그제야 안경 벗은 모습이 훨씬 낫다는 다소 직설적인 평가가 돌아왔다. 다들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안경이 못나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안경을 끼고 있을 때 내 모습은 거리감을 느끼기 쉬울 것 같았다. 콘택트렌즈는 내 시야를 불확실하게 교정했고, 화장을 할 때도 거울에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가지 않으면 아이라이너를 제대로 그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분명 안경을 쓸 때보다 더 나아진 거다.
3.11 대지진으로 귀국을 결정한 후에도 안경과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약 1년 정도 난시 교정을 위해 하드렌즈를 착용하기도 했다. 남들 다 고생한다는 이물감도 별로 느끼지 않았으며 하드렌즈는 소프트렌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선명도로 나를 유혹했으나 물건 험하게 다루는 습관 때문에 그 비싼 렌즈를 두 번쯤 깨먹고 나니(바삭! 하고 깨질 때 소리가 상당히 맛깔난다.) 이 친구와 한 해 더 지내다간 파산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난시용 소프트렌즈도 점점 질이 좋아졌다. 이젠 넣기만 하면 렌즈가 자동으로 축을 찾아 회전하게 되었고, 앞도 예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오륙 일 가량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게 되었다. 매일 착용하기도 하고, 한 번 착용하면 오래 쓴다. 각막에 상처가 난 적이 있어 렌즈를 빼다 각막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응급실에 가야 한다. (농담이면 좋겠지만 한 번 상처가 난 각막은 이후에도 쉽게 상처입는다. 응급실도 이 년 사이 세 번을 갔다.)
이 주 전쯤 또 렌즈를 빼다가 상처난 자리가 잘못 건들렸는지, 여섯 시간 동안 렌즈를 못 빼고 질질 울었다.
이젠 렌즈조차도 열이 받아서 목돈이 모인 김에 시력교정수술까지 욕심이 미쳤다.
그리고 조셉은 큰맘 먹고 낸 반차일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두 시간 검사하는 동안 검사관 선생님들 다섯 명이 하나 같이 “눈이 많이…….”로 운을 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시야각 검사를 하는 도중 검사관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같은 검사를 두 번 더 하고도 “스으읍.” 쓰르라미 우는 소리를 내시더니 후다닥 원장실로 가서 무어라 말을 하시다가, “검사를 바꾸어볼게요.”, 다른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이어진 예의 ‘다른 검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녹내장 의심 소견이 있어서 도중에 녹내장 정밀검사로 바꾸었는데, 녹내장 조기 증상이 보입니다.
요컨대 시야각 검사를 하던 도중 검사를 세 번, 네 번 반복해도 특정 부분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 눈 CT 사진을 같이 보자며 여기저기 짚어주는데 봐도 잘은 모르겠고, 시신경이 많이 죽은 상태란다.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발견하는 건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한다. 보통은 실제로 앞을 보는 데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찾아오게 되고, 그때는 소위 ‘이미 늦은’ 때인데 이렇게 얻어서 발견하면 초반에 잡을 수 있으니 오히려 낫다고.
당연하지만 시력교정수술은 “제가 괜찮다고 판단하고 말씀드릴 때까지는 보류하셔야” 한단다.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는데, <링딩동> 한 곡이 끝날 만한 시간이 지나니 점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더럽게 혹사시키기는 했으니까. 이렇게 찾아내는 건 차라리 복이 아닌가.
처음 넣어본 안약은 꽤 쓰라렸지만 각막 손상을 겪어본 조셉에게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낮밤할 것 없이 어두운 데서 책을 읽고 화면을 들여다보았으니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들고…….
한동안 내외했던 안경을 다시 맞추며 근 육십만원 돈을 긁고 나니 비로소 안경이 애틋해진다. 이 간사한 마음을 참 어쩔 셈인가. 나의 못난이 안경아. 잘 보고 싶다. 나와 평생을 함께 살며 어려운 나의 눈을 지켜준 안경이 적어도 회복세에 오르기까지는 간사한 주인의 심보를 모른척 해주기를 바란다.